아는도시 Insight

골목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발견하다

모종린|

문화 자원이 풍부한 골목에 사람이 모이고 있다. 개성 있는 상인과 창작자 그리고 그들의 제품을 소비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골목은 시간이 지나며 하나의 골목상권으로 자리매김한다. 모종린 교수는 이런 곳들을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커뮤니티 기반 골목 산업 생태계 구축'이 그 골자다. 전국에 홍대와 이태원 같은 골목을 50곳 만드는 것이 요즘 모 교수의 최대 화두다. '골목 덕후' 경제학자가 말하는 도시와 로컬의 미래를 들어보자. 



『골목길 자본론』이 출간된 후 1년이 지났다. 책 내용에서 좀 더 발전시킨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논문을 준비하며 주장을 좀 다듬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변한 것은 없다. 골목상권을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성 있는 가게와 창작자가 많이 들어선 골목은 ‘문화 산업 발전소’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모든 골목상권이 그렇지는 않지만, 최소한 홍대, 이태원, 성수동, 삼청동 등 강북 네 개 골목은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 산업 중심지로 키워야 한다. ‘로컬 창업’도 중요하다. 지난 1년간 가시적으로 부상한 트렌드가 바로 로컬 창업이다. 지방 인재가 서울에 올라오는 경우는 줄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서울에 머물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늘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도 있지 않나. 기존에는 로컬을 이야기할 때 귀촌・귀농으로만 접근했는데, 요즘은 지역에서 창업하는 경향이 늘며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됐다. 이것을 종합해서 젊은 층에게 로컬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조사할 예정이다. 



최근 SNS에서 ‘장소 기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언급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커뮤니티 베이스’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컬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활동가다. 오랫동안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사람들로,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하거나 생활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이들이다. 둘째는 지역 혁신가다. 마을 기업을 운영하면서, 관과 마을 주민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셋째가 내가 강조하는 사람들, 로컬 창업가다. 지방에서 자신의 가게를 시작한 이들은 동네와 상생하며 사업과 골목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한다. 이들의 세력이 커져야 한다.



커뮤니티 베이스 창업가가 세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인프라 구축과 인재 육성이다.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는 문화 예술 성격이 강한 앵커스토어를 골목 곳곳에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골목의 특색을 반영하고 강화하면서 간접적으로는 마을의 커뮤니티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시작한 ‘에어리어 매니지먼트 기업’◼이 대표적인 예다. 건물주는 임대사업권을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넘기고, 회사가 쇼핑몰을 운영하듯이 골목상권(에어리어) 전체를 운영한다. 이렇게 되면 상인, 건물주, 크리에이터, 주민 모두가 골목상권을 발전시키는 데 참여하게 된다. 골목상권을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각 주체가 동업하는 것이다. 각 지역의 소규모 코워킹 스페이스가 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앵커스토어가 늘면 그곳을 중심으로 활동할 인재도 함께 늘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스타트업, 예술가, 소상공인이 있다. 앞의 둘은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반면 소상공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장인대학’이 필요하다. 생활 브랜드라든가 관광 산업에 필요한 원천 기술을 가진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전국 226개 시군구가 각자 특성 분야에 맞게 세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인대학이 앵커스토어 역할까지 수행하면 더욱 좋다.


◼에어리어 매니지먼트 
상업・업무 시설이 밀집된 지역이나 대형 복합 시설을 하나의 지역으로 간주하고 전문 기관이 종합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방법. 단순히 건물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마케팅 등 콘텐츠를 활용해 지역을 브랜드화하는 방법이다. 같은 말로 '타운 매니지먼트'가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삼청동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전통 공예에 특화한 장인대학을 설립해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이를 수료한 사람들이 서촌, 북촌에서 공예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 지원하는 방안이다. 카페나 식당도 필요하겠지만 정체성 강화 측면에서는 특색 있는 사업이 주축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우선 보조금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금은 정부 보조금이 개개인에게 가는데, 상권 단위로 지원금을 줘야 한다. 골목상권을 전통 시장처럼 하나의 단위로 묶어 지원하는 것이다. 그럼 공동체 문화를 강화하는 데 정부가 기여할 수 있다. 앵커스토어 역할을 하는 기업에 보조금이 들어가는 방향이면 더 좋다. 정부가 직접 공공 사업장을 마련하는 방안도 있겠다. 그리고 특색 있는 건축물을 보호해야 한다. 개성 있는 골목상권을 살펴보면 모두 한옥, 적산가옥, 1970년대 단독 주택 등이 밀집한 곳에 형성됐다. 이런 잠재적인 가치가 있는 곳을 재개발로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각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해 쉽게 허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는 195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지 않나.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개성 있는 가게가 모이고 골목상권이 활성화되면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하거나 임대차 갈등이 심하게 나타나곤 한다.

임대료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영업권을 10년까지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안정될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경기 불황이다. 지갑을 닫으면 가게 매출이 떨어지는데, 임대료는 고정 비용이라 매출 대비 임대료 비중이 상승한다.



일반적으로 골목상권은 외부인이 일시적으로 와서 소비하고 돌아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한 지역에서 여러 가게가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주민과 방문객의 비율이 중요하다. 주민이 70%, 외부인이 30% 정도가 좋다. 대표적인 사례로 연희동이 많이 언급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삼청동이 아쉽다. 한옥을 기반으로 한 전통문화가 상품화되지 못하고,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화장품 가게가 들어오면서 지역 특색이 망가졌다. 삼청동의 특색이 반영된 가게가 다양하게 들어서고 주민과 여행객이 이를 소비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다.



2018년 12월 첫째 주 기준으로 삼청동 일대 상가 공실률이 약 17%로 조사됐다  (출처: 인사이트코리아)



동네 특색에 맞는 상인을 들이는 데에는 건물주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압구정이나 청담동 사례가 보여주듯 골목상권도 다른 상권과 경쟁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골목이 조금만 개성을 잃어도 곧장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런 면에서 건물주의 역할이 중요하다. 월세만 받으면 장땡이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어떤 가게가 내 건물에 들어와야 가치가 올라가고 지속가능성이 생길지 고민해야 한다. 상인, 건물주, 주민, 크리에이터 모두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를 예방하는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요즘 장사는 혼자서만 잘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각 주체가 같은 배를 탔다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소상공인이다. 그들이 홍대, 이태원, 경주 황리단길 등 문화 자원이 풍부하고 매력적인 골목을 찾아내 개척했기에 골목상권이 현재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공공 기관이나 대기업 공장이 들어서야 동네가 발전한다는 것은 옛말이다.




위: 홍대앞 라이브클럽 터줏대감 클럽 빵(since 1994)
아래: 홍대 예술가들의 아지트 상수 이리카페(since 2004)

 홍대앞 예술가의 아지트들은 미술과 음악, 인디 문화 등이 홍대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




향후 연구 계획이 궁금하다. 

홍대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스트릿 패션, 출판, 독립 서점, 커피 등 홍대앞 문화를 기반으로 재미있는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산업이 들어서며 핫한 골목상권을 넘어 하나의 창업 단지로 발전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성수동, 이태원 사례까지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다른 지역에도 이런 골목 중심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기 위해 필요한 것과 정부가 해야 할 역할 등을 정리할 생각이다. 이를 상징하는 어젠다로 삼은 문구가 '홍대 50'이다. 홍대 같은 지역을 50곳 만든다는 목표다. 그렇게 해서 여러 골목이 브랜드 가치를 가질 정도로 발전하면 좋겠다. 내가 꿈꾸는 모습이 있다. 'made in 연희동', 'made in 성수동' 이런 식으로 여러 음식이나 상품에 생산한 동네를 표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골목이 모두 장인 공동체가 돼야 한다. 장인 공동체의 골목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1: 로컬전성시대》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자세히 보기

에디터

모종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