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에 스며든 공간

웰콤시티

김정민|

서울시 중구 장충동

장충동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속한 동이다. 남산과 접해있어 동네 어디서든 남산타워를 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족발거리로 유명한 장충동은 구한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과 열사들을 위해 제를 올리던 장충단에서 동명이 유래했다.

장충동은 언덕과 경사로가 많은 동네다. 평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작은 필지에 작은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그 영향으로 큰 건물은 주변 풍경과 쉬이 어울리지 못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에 ‘웰콤시티’를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은 작은 필지 여러 개를 합쳐 건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어반 보이드(Urban void)’를 활용해 장충동의 경관과 정체성을 공간에 반영하였다.



어반 보이드와 웰콤시티 그리고 장충동

웰콤시티는 2000년 당시 광고대행사 ‘웰콤’의 사옥으로 설계되었지만, 2014년부터는 9개의 중소 광고 커뮤니케이션 회사들이 공간을 분리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웰콤시티를 설계한 전 서울시 총괄 건축가 승효상 씨는 채우는 것보다는 비우는 것을 중시하는 건축 철학을 수차례 밝혀왔다. 그는 자신의 건축관을 ‘어반 보이드 (Urban Void)’라는 개념을 통해 즐겨 설명하곤 한다.



‘어반 보이드’란 도시 안의 빈 공간을 일컫는데, 웰콤시티는 이 개념을 적용하여 2층 위 상층부를 네 개의 동으로 나누었다. 분리된 건물 사이의 빈 공간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하고, 주변 지역의 경관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언덕과 작은 건물이 많은 장충동에서 어반 보이드의 개념은 더욱 빛을 발한다. 웰콤시티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보이드(Void; 비워진 공간)는 계속 반복된다. 건물 내부의 보이드는 자연스럽게 공간을 분리하고, 공간과 공간 사이,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 사이를 그림처럼 연결해주는 프레임의 역할도 해낸다.




한편 웰콤시티를 밖에서 보면 건물 전체가 녹이 슬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웰콤시티의 외장재로는 ‘코르텐’이라는 내후성 강판을 사용했는데, 이 코르텐은 녹이 슬고 부식이 진행되면서 보호막을 형성하여 내부의 철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한다. 모름지기 가장 좋은 건축 재료는 시간이라고 했다. 웰콤시티 역시 별도의 관리 없이도 자연과 시간이 건물을 관리해준다.

‘웰콤시티’는 장충동의 세월을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장충동 앞 동네와 뒷동네를 연결해주는 윤리의 건물이다. 사람들은 어떤 도시를 연상할 때 그 도시를 한 단어로 정리하곤 한다. 혹자에게 장충동은 족발, 신라호텔, 장충체육관, 남산타워가 있는 동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장충동은 곧 ‘웰콤시티’다.




파라다이스 집

웰콤시티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온통 새하얀 빛을 내뿜는 주택이 한 채 나온다. 올해로 여든 살이 된 주택은 개인의 삶이 중첩된 집(home)을 넘어 문화와 예술이 쌓이는 집(zip)으로 활용되고 있다. 웰콤시티를 설계할 당시 승효상 씨는 뒷골목의 주택을 모두 가리게 될 것을 우려하여 건물을 네 개의 동으로 분리했는데, 바로 그 뒷골목 주택 중 하나가 지금의 ‘파라다이스 집’이다. 그는 이 집을 시간의 흔적을 담은 문화 공간으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재생 건축이야말로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존하고,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여겨 온 그의 철학 역시도 함께 스며들었다.



이 주택은 집 안의 벽을 허물고 외관과 내부를 온통 하얗게 칠했다. 실질적으로는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의 작은 오픈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는데, 멋진 전시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집 안에서는 멋진 작품들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부엌과 화장실에서 사용했던 타일 벽, 가스와 수도 연결을 위해 활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배관들, 그리고 지금은 하얗게 변해버린 나무계단은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켜온 가옥의 역사를 증명하는 징표다.




웰콤시티
서울 중구 동호로 272

파라다이스 집
서울 중구 동호로 268-8
월요일-토요일 10:00~18:00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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