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깊은 잠에서 깨워낼 혁신가를 위한 공간

서울혁신파크

이지현|

미끄럼틀을 역으로 오르는 아이에게 부모들은 “위험해” 또는 “제대로 타야지” 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이용할 때, 배운 대로 혹은 남들이 하는 대로 해야만 문제없이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자유를 의미하는 ‘놀이터’에서조차 아이들의 자율성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새로운 발상과 창의성은 과연 어디서 싹틀 수 있을까? 제멋대로 생각하는 장(場)이 부족한 사회, 불광동에는 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충북 오송으로 이전한 뒤 남겨진 커다란 부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놓고 서울시와 지역 사회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지어야 할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새로운 무언가를 짓지 않음으로써 사회에 활력을 더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리적인 질병을 치료하던 공간에서, 사회적-심리적 질병을 치료하는 곳으로 탈바꿈한 서울혁신파크는 2015년 6월에 문을 열었다.



서울혁신파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공감하고 의견을 나누며 사회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혁신파크는 뜻있는 혁신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에 마음껏 도전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32개 동에 이르는 오래된 건물 각각에는 사회 혁신을 꿈꾸는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 소셜 벤처, 협동조합 150여 개가 입주하여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야외에는 녹지공간과 함께 가변적인 복합 시설물을 조성하여 다채로운 생각과 실험을 자연과 일상 속에서 실천해볼 수 있도록 독려한다. 거창한 목적 없이도 동네 주민들은 자유롭게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곳에 놀러 올 수 있고, 시민 누구나 책을 읽고 배우고 생각하며 놀이하고 작업하는, 그런 새로운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창의 공원이라고 불리는 야외에는 골대가 여럿 달린 ‘멀티 농구대’, 시설을 접거나 펼쳐 다양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앞뒤 없는 운동장’ 등 고정관념을 깬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철골 구조로 이루어진 거대한 비닐하우스 ‘전봇대집’이다. 이용률이 저조한 테니스코트를 활용한 시설물로 기존 조명탑이 그대로 남아있어 이를 반영한 이름이 붙여졌다. 전봇대집은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여 다채로운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컨퍼런스나 공연, 마켓 등 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용도의 불분명성과 유동성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곳에서 이뤄지는 행위에 대한 자율적인 주체가 되도록 한다.



전봇대집 내부 공간에는 나무, 플라스틱 상자, 거대한 포대 등 잡동사니들이 가득 놓여 있다. 완성되지 않은 공사 현장 같기도 한 이 공간은 반대로 보면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놀이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오히려 새로운 생각과 상상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움트곤 했다. 그러나 아이의 손을 잡고 놀러 온 엄마들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창의적인 공간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론 공간들이 다소 정제되어 있지 않음을 걱정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입장에서는 안정성 확보 여부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위험이 숨어있을 듯한 시설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다.



"상상력을 축소시키거나 방해해 아이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타인의 상상력에 따라 놀아야 하는 놀이터는 겉으로는 근사하고 깨끗하고 안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놀이터는 놀이라는 그 자체의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건축도시 형태론>"


하지만 어른들의 지나친 보호 속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이 발현되기란 어렵다. 반듯하고 규격화된 방식일수록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차단한다. 아이들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공간보다는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공간을 좋아하고 필요로 한다. 이는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산만해 보이는 공간이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가 되는 이유이다.



생각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잘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문했던 당시에는 공간에 다소 정적인 기운이 드리워 있었다. 일부는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었는데, 추운 겨우내 사람들의 방문이 뜸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작품과도 같은 공간들이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차올랐다. 다시 찾아온 봄만큼이나 아이들의 생기와 웃음소리가 서울혁신파크에 울려 퍼지기를, 기지개를 켜고 활력을 찾길 기대한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