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앞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의자처럼

불광대장간

이지현|


불광대장간의 부자(父子)는 오늘도 정겹다. 동네 사람들은 사이좋은 대장간 부자의 부지런한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대장간 일을 열세 살 때부터 시작한 박경원 1대 사장님은 올해 79세다. 일요일을 제외한 요일은 매일같이 출근해 고된 대장간 일을 이어간다. 이제 가게는 아들인 박상남 사장님이 본격적으로 맡아 운영하고 있지만, 바쁜 일을 조금이라도 거들기 위함이다. 오랫동안 대장간 일을 해 온 탓인지 일을 안 하면 오히려 몸이 근질거린다. 내가 방문했을 때, 마침 두 분은 공장에서 제작 의뢰가 들어온 쇠 문고리를 작업 중이었다. 박상남 사장님은 가까이 와서 구경하라며 기꺼이 일터를 보여주셨다. 아들이 쥔 큰 망치와 아버지의 작은 망치가 지닌 차이점을 묻자 작업 내내 묵묵하게 일만 하시던 박경원 1대 사장님은 명쾌하게 한마디 꺼내셨다.


"두 손으로 치는 것은 메, 한 손으로 치는 것은 망치!"



부자(父子)의 작업 과정에는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다. 화덕의 열기로 달궈진 쇠막대를 양쪽으로 붙든 채, 힘을 제대로 받도록 단단히 고정하는 역할은 아버지의 몫이고 힘껏 힘을 주어 막대를 구부리는 역할은 아들의 몫이다. 구부린 쇠막대의 모양새가 반듯하게 균형이 맞도록 아버지의 망치질과 아들의 메질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두드릴 때마다 쇳덩이 표면에서 재가 껍질처럼 떨어진다. 사장님은 많이 두드릴수록 쇠에서 이러한 불순물들이 빠져나와 더욱 단단하고 좋은 물건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조(鍛造, 금속을 두들기거나 눌러서 필요한 형체로 만드는 일)로 만든 제품이 더욱 좋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단단하고 오래가는 불광대장간의 물건을 한 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다.


"옛날에는 다 같이 살았으니까 어떤 칼이 좋은지 어떻게 잘 쓰는지 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서 다 배웠단 말이야. 지금은 다 따로 사니까 예전만큼 잘 모르고 그냥 마트에서 파는 칼 사다 쓰게 되는 거지."



작업을 일단락하고 박경원 사장님은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린다. 60년 장인의 손을 직접 보고 싶어 손을 보여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오래전에는 모든 작업을 맨손으로 해서 손 곳곳이 굳은살투성이였지만, 지금은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해서 굳은살이 다 사라졌다는 손. 그런데도 여전히 쇠처럼 단단하다.

박상남 2대 사장님은 옛것을 보존하려는 마인드가 외국보다 한참 부족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옛날에는 대장장이를 위시한 기술자들이 사람들의 일상 가까이에 있었고 그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사회 변화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불광대장간은 뚝심 있게 버텨냈고, 60년 전통을 인정받아 2013년에는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되었다.



"먹고살기 바빴던 시절은 지나가고, 근래에 와서 어느 정도 기반도 잡히고 잘 살다 보니 이제 사람들이 옛날을 돌아보기 시작하는 거야."


대장간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못 쓰게 된 물건도 다시 쓸 수 있도록 새로이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공간이다. 물론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대장간을 찾아와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종종 물건을 사러 오시던 손님이 오랜만에 오셨는데 안색이 안 좋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보러 들렸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 세상에 좋은 곳,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곳 대장간까지 찾아와 주신 것이 ‘한 사람의 생을 마감하면서 기억나는 곳이었구나!’ 싶어 너무나도 감사하고 뭉클했다고.



박상남 사장님은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의 대장간 일을 조금씩 도와드렸지만, 본래 대장간 일을 물려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대장간 일은 워낙 힘들어 끈기 있게 일하는 후임자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대장간 일을 며칠 배우다가도 더는 나오지 않는 직원의 빈자리는 매번 아버지의 옆에서 어머니가 채우곤 했다. 제대 이후 함께 점심을 먹다 숟가락을 쥔 어머니의 손이 떨리는 모습을 본 사장님은 어머니를 위해 일단 자신이라도 대장간 일을 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세월이 훌쩍 흘러 이제는 사장님이 어느새 25년 차 대장장이가 되었다.



대장간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쉬고 계시던 박경원 사장님이 허허 웃음을 터트리신다. 웃음소리에 바라보니 어느새 사장님 옆에 사모님이 다정히 붙어 앉아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시는 듯하다. 아들인 박상남 사장님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일을 마저 마무리한다. 자식들은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어도 사는 게 바쁘다며 부모님과의 시간을 뒤로 미루게 마련이다. 하지만 박상남 사장님은 자주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가서 등을 밀어드리고 목욕이 끝나면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간다.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 생각하는 2대 사장님. 가게 앞뒤로 놓인 의자에는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는 아들의 배려가 담겨 있다.



"여기가 어르신들이 많이 지나가시는 길목이라 걸어가다 쉬었다 가실 수 있게 일부러 놓은 거야. 우리 아버지도 걸어가시다가 의자를 많이 찾으시거든. 가게 앞쪽에 놓은 의자 두 개는 나랑 아버지랑 일하다가 함께 쉬기도 하지."



하루 작업을 마무리할 때면 사장님은 화덕 안 무연탄을 안쪽으로 덮어 온종일 달궈졌던 열기를 식힌다. 내일 아침 출근하면 다시 불을 피워야 한다. 몇십 년 동안 매일 반복되는 일에 지쳐 한때 고비가 찾아왔던 시절도 있었다. 고민을 토로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신 또한 그런 시절이 있었노라며 그럴 때는 그저 쉬는 것이 답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들은 산을 오르고 쉬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다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대장간의 일을 묵묵히 도맡아 하고 계셨다. 자신을 기다려 준 아버지와 함께 아들은 다시 화덕에 불을 피웠다. 부자가 대장간을 지금껏 지켜올 수 있던 비결은 오직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것, 그뿐이었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