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리얼을 찾고 싶은 당신에게

WYCN

이지현|

어린 시절 TV에 방영되는 외국 영화를 볼 때면 시리얼을 먹는 모습이 유독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밥과 국을 고수하는 한국 식문화의 틈새를 비집고 점차 간편한 서양식 아침 식사가 퍼져 나가던 시절, 시리얼을 그릇에 붓고 우유를 부어 숟가락으로 퍼먹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그렇게도 쿨해 보일 수 없었다. 어느 마트 매대 앞에서 TV 속 모습과 비슷한 시리얼 박스를 발견하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는 이거!’라며 보물이라도 되는 양 부둥켜안았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의 관점에서는 식사 같지도 않은 한 그릇처럼 보였겠지만, 시리얼은 분명 간편하고 맛있는 데다가 든든하게 나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즐기는 식품인 만큼 오늘날, 정말 다양한 종류의 시리얼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라마다 인기 있는 시리얼이 존재하고, 나는 여행 중에 각국에서 판매되는 독특한 시리얼을 맛보고 구입하는 것을 즐긴다. 연남동 미로길에 위치한 WYCN(What’s Your Cereal Number?)는 시리얼이란 시리얼은 모두 맛보길 꿈꾸는 나에게 딱 맞는 아지트다. 이곳은 전 세계 다양한 시리얼을 직접 골라 먹을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시리얼 카페다.



골목 안쪽에 숨어있는 카페 외관은 전반적으로 하얗지만, 핑크색 네온사인이 톡톡 튀는 매력을 뽐내며 입구 한쪽에 귀엽게 붙어있다. 대량으로 생산된 하드웨어 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붙은 일련번호를 의미하는 ‘시리얼 넘버(Serial number)’를 ‘시리얼 넘버(Cereal number)’라 바꿔 적은 언어 유희가 참신하면서도 유쾌하다. 다양한 시리얼과 토핑으로 저마다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게의 특징을 센스 있게 드러낸 문구다.



가게 내부에는 시리얼이 가득하다. 흰 타일 벽에 나란히 매달려 있는 수십 개의 시리얼 디스펜서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주는 동시에 다양한 시리얼을 맛볼 수 있다는 문구가 지닌 신뢰도를 높인다. 한쪽 벽면에 진열된 각양각색 수입 시리얼도 눈을 즐겁게 하는데, 영화 ‘스타워즈’나 ‘겨울왕국’ 등 유명 작품이 그려진 패키지 시리얼은 독일에 살고 있다는 사장님의 친동생이 직접 보내준 한정판 제품이라고 한다.



주문하기 위해 수십 종의 시리얼과 토핑들을 적어 놓은 메뉴판이자 가이드북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시리얼의 종류가 너무 많다 보니 정작 어떤 조합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메뉴 고민을 즐기는 손님이라면 30분이 훌쩍 넘더라도 진지하게 자신만의 시리얼 조합을 만들어 나가지만, 때때로 손님들은 다양한 선택지를 앞에 두고 결정 장애가 도져 버벅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사장님은 나만의 시리얼 조합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장난감처럼 알록달록한 펜으로 선택사항을 체크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내가 고른 ‘나만의 시리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내국인 손님들은 대부분 생소한 해외제품을 많이 찾고요, 일본에서 오신 분들이나 서양분들은 오히려 우리나라 시리얼을 궁금해하면서 주문해요."


쉽사리 찾기 힘든 골목 구석에 있음에도 이곳은 연남동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이미 입소문을 타고 많이 알려져 주말에는 작은 가게가 손님으로 붐빈다. 한 번 찾더라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동네 안쪽 미로길에 자리를 잡았으나, 길을 헤매는 손님들이 종종 있어 사장님이 마중 나가는 일도 생기곤 한다. 게스트하우스가 밀집된 연남동의 특성상 시리얼을 즐겨 먹는 영국, 미국, 일본 등 외국 손님들도 많이 찾는데, 이들에게도 시리얼 카페라는 형태는 흔히 접할 수 없던 것이었는지 큰 흥미를 드러내 보인다고 한다.




WYCN의 모티브는 2년 전 영국에 최초로 생긴 ‘시리얼 킬러 카페(Cereal Killer Cafe)’다. 그곳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은 120종이 넘는 시리얼을 맛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수입통관 문제로 인해 더욱 다양한 시리얼을 선보이기 어려워 사장님은 아쉬움을 표한다. 시리얼을 팔기 때문에 아침 일찍 오픈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가게의 일상은 다소 여유롭게 12시쯤 시작한다. 작년 9월에 오픈하고 처음 두 달간은 아침 일찍 운영을 해보았지만, 아침에는 손님이 많이 찾지 않아 결국에는 오픈 시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시리얼에 대한 국내 인식 자체가 식사 대용품보다는 다이어트 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하지만 현재 찾아주시는 손님들은 시리얼을 좋아하는 동시에 시리얼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더욱 변화해 나가지 않을까요?"



익히지 않고 납작하게 누른 통귀리와 기타 곡류, 생과일이나 말린 과일, 견과류를 혼합해 가공을 최소화한 뮤즐리는 특히 유럽권에서 건강한 한 끼로 즐겨 먹는 시리얼 종류다. 시리얼이 든든한 식사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은 크나큰 오해이다. 아직도 세상에는 내가 먹어보지 못한 시리얼이 무궁무진하고, 우리가 아는 시리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시리얼과 사랑에 빠졌던 꼬마는 온 세상의 시리얼을 향한 탐험을 계속할 생각이다. 이를 위한 하나의 질문이 여기 있다.


"What’s Your Cereal Number?"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