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에 필요한 정성

출판도시 활판공방

윤여준|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생산하는 엄청난 양의 문자를 매개로 타인과 소통하고, 컴퓨터를 활용하여 순식간에 문서를 작성한다. 또한 이를 프린터로 전송하여 곧 바로 인쇄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빠르게 문장을 만드는 것에 익숙한 현대인은 문장 속 하나의 단어, 글자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오타나 비문이 활용되는 경우는 일상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구나 손쉽게 말하고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심사숙고를 통해 정제된 언어의 아름다움은 점점 발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출판도시 ‘활판공방’ 방문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곳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 원하는 글자를 모아 하나의 판을 만들고, 그것을 종이에 찍어낸다. 최신 인쇄술에 비하면 느리고 복잡하지만 원하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활자들을 고르는 과정이 일종의 경건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한 글자 한 글자를 곱씹어 볼 수 있는 과정을 오랜만에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파주 출판도시에 위치한 출판도시 활판공방은 여느 출판사와는 다르게 납 활자 인쇄를 이용하여 책을 만들고 있다. 활판공방은 시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공방으로, 한동안 사라졌었던 활판인쇄술을 이용하여 국내 유명 시인의 시집과 다양한 인쇄물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동시에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활판공방의 체험 프로그램은 활판 공장에서 준비한 시 활판을 직접 찍어보는 간단한 체험부터, 참여자가 직접 30자 내외의 원고를 준비하여 문선과 조판을 거쳐 인쇄까지 활판의 전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수업까지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


 



활판공방의 내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조체, 고딕체 등 글씨체와 크기에 따라 한 글자, 한 글자 구분되어 꽂혀 있는 빼곡한 활자들의 모습은 전통적으로 인쇄를 통한 지식의 전승이 얼마나 큰 정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하였다. 그러한 각각의 활자를 활용한 인쇄 과정 속에서는 나름의 숭고미까지도 느껴볼 수 있었다.



구경만으로 아쉬운 마음은 낱개로 판매하고 있는 활자를 구매하며 달래볼 수 있다. 활자들은 납을 재료로 하여 직접 공방에서 만들어지며, 이는 도장과 생김새가 비슷하여 도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활판공방에는 없는 글자 빼고 모든 글자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까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원하는 단어, 문장의 활자를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한 활자는 한글 외에도 영문, 한문 등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며, 특수 기호들도 크기 별로 갖춰져 있다. 게다가 가격도 기본 활자 한 개 당 1,000원 내외로 저렴한 편이니 글과 말, 기록의 의미를 생각하며 뿌듯하게 남길 수 있는 좋은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활판공방에서 글자는 어디론가 ‘보내지지’ 않는다.

그저 묵직하게 새겨질 뿐이다."


활판인쇄는 디지털 인쇄에 비하여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음을 물론이고, 타자기 보다도 가독성이 뛰어나며 오프셋 인쇄보다는 무게가 있다. 그 깊이 있는 과정만큼이나 복잡한 노력을 요하지만, 그만큼 정성을 들여 글을 벼려내는 작업은 한 번쯤 꼭 체험해보고 싶은 매력을 갖추고 있다.

좋은 시구를 발견한다면 잘 메모해 두었다가 출판도시 활판공방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나만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보고 싶다. 넘쳐나는 문서들 속에서, 버튼 하나에 몇 십장이 순식간에 인쇄되어 나오는 빠른 세상 속에서, 글자만 보아도 피로를 느끼는 나날 속에 만난 활자가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전했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윤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