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여길 모르면 간첩이라고!

도문집

윤여준|

어디를 가보아도, 그 지역의 가장 맛있는 식당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단연 택시기사님들이다. 서울에서도 종종 주차장에 택시들이 가득한 음식점을 발견할 때면, 아무런 의심 없이 들어가 식사를 한다. 그렇게 알게 된 식당은 열이면 열 성공적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있던 나는 꼬르륵- 신호를 보내며 아우성치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운이 좋게도 친절하신 기사님을 만나게 되어 속초 주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을 추천받을 수 있었다.

막힘없이 줄줄 읊어주신 목록 중에서도 나는 ‘속초의 유명한 칼국수 집 중 단연 1등으로 맛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음식점인 ‘도문집’에 관심이 갔다. 마침 도문집은 숙소와도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고, 저녁을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저녁 7시가 조금 넘었던 그 시간, 도문집의 불은 꺼진 채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작은 칼국수 집이었지만, 속초에서 가장 맛있는 칼국수 집이라는 택시 아저씨의 극찬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식사는 꼭 이곳에서 해결하겠노라 다짐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다음 날, 모든 일정을 마친 후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길. 나는 다시 도문집으로 향했다. 도문집은 어제와는 다르게 불이 켜져 있었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실내에는 속초로 단체 여행을 와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는 대가족과 잔뜩 들뜬 열기를 품고 있는 젊은 여행객들, 다정하게 식사하고 있는 부녀, 그리고 홀로 도문집을 찾아 칼국수 한 그릇에 몸과 마음을 녹이고 있는 어르신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홀로 도문집에서 점심을 드시는 시장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후루룩 빠르게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가지만,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편안한 곳에서 편안한 사람이 해주는 편안한 음식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그들의 식사 장면은 도문집에서의 점심을 더욱 기대하게 하였다.


"평일에는 속초 주민들을 대상으로 장사하고, 주말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장사해요.

우린 그래서 성수기와 비성수기의 구분이 없어요. 언제든 찾아주는 주민들이 계시니, 항상 꾸준해요."



도문집의 메뉴판에는 눈길을 끄는 특이한 메뉴가 하나 있다. 바로 ‘냉칼국수’. 냉면, 냉모밀, 냉우동은 들어봤지만, 냉칼국수는 처음이기에 호기심은 불같이 타올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냉칼국수는 여름철 메뉴였고, 이 추운 겨울날에는 따듯한 칼국수 국물이 더욱 잘 어울린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뜨끈한 칼국수를 주문하였다. 뜨끈한 칼국수 국물 한 모금에 얼어있던 몸을 녹인 나는, 계절별로 메뉴를 나누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어느덧 고개를 끄덕였다.



칼국수는 처음에는 깔끔하고 투명한 맛으로 다가오지만, 점차 진하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느낌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실제 칼국수 국물의 점성 역시 먹으면 먹을수록 걸쭉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어보니, 도문집 칼국수 국물에는 으깬 감자가 들어간다고 한다. 국물의 양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으깬 감자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에 점차 국물의 질감은 진해진다고.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국물을 다시 먹어보니, 국물이 지나간 나의 입속에서 자잘한 감자 조각들이 재미난 식감을 선보이고 있었다.



칼국수의 맛에 감탄하며 허겁지겁 식사하다 보니,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더 많은 시장 어르신들이 점심을 해결하고 계신다. 실제 속초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애용하는 식당을 찾은 것 같은 뿌듯함에 택시기사 아저씨께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택시기사 아저씨의 소개로 오게 되었다고 사장님께 말씀드리니, 나의 말을 들은 한 어르신이 속초에서 도문집을 모르면 간첩이라며 이야기를 거드신다.


"우리가 70세 이상 어르신들께는 천원 할인을 해드리거든요.

그랬더니 어르신들께서 더욱 자주 찾아주셔요."



도문집은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칼국수 집이다. 현재 도문집을 지키고 있는 사장님은 어머니를 이어 2대째 운영하고 있지만, 사장님의 어머니 또한 누군가에게 가게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 사장님 모녀는 함께 슈퍼를 운영했다. 그 당시 도문집은 두 분이 운영하던 슈퍼 옆에 자리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당시 도문집 주인아주머니께서 건강이 안 좋아지셨고, 이웃인 사장님 모녀가 도문집의 일을 돕기 시작하다가 이렇게 업을 이어가게 되었다.

사장님은 그 옛날 주인아주머니가 운영하시던 도문집의 정취가 그대로 유지되길 원했다. 그래서 ‘도문집’이란 이름과 메뉴,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그대로 지켜가며 언제든 그 옛날의 도문집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옛날 도문집을 찾았던 손님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언제고 다시 이곳을 찾아올 수 있겠구나 싶어 안도했다. 그때는 반드시 따뜻할 때 들려 냉칼국수도 맛보겠노라 다짐해본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윤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