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우리 함께 지켜온 소극장

돌체 소극장

범유진|

스무 살에 내가 처음 갔던 소극장을 기억해보면 골목에서 줄을 서 기다리다가 공연 시간이 다 되어서야 문을 여는 그런 곳이었다. 자리 간격은 비좁았고 좌석은 딱딱했다.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몇 개월에 한 번씩은 소극장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는 친구 중 한 명이 연극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극단을 찾아가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자질구레한 일을 돕기 시작했다. 소극장은 그렇게 나의 이십 대 한쪽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좀처럼 극장을 방문하지 못했다. 바쁜 일상 때문인지 나는 소극장의 공기를 한동안 잊어버렸다. 하지만 한 번 소극장에 가 본 사람이 그 즐거움을 완전히 잊기란 쉽지 않다. “소극장 돌체” 버스를 타고 지나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하차 버튼을 눌렀다. 건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 너머를 엿보았다. 너무나도 짙은 어둠 탓에 극장 문이 닫혀 있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슬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본다.




아담한 로비 벽에는 액자들이 걸려 있다. 피에로 분장을 한 사람들의 사진 사이로 극장 연혁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돌체는 인천의 최장수 소극장이다. 그야말로 인천 연극계의 산증인인 셈이다. 연혁을 조금 더 자세히 읽다 보면 돌체가 1979년에 만들어졌다는 것, 원래는 인천 중구의 얼음 공장을 극장으로 썼다는 것, 1984년에는 극단 ‘마임’이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2007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는 사실 등을 되짚어 볼 수 있다.

극장에 대해 한참 동안 공부하고 있던 도중, 닫혀 있던 안쪽 사무실에서 누군가 나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지라 당황했지만, 우선은 우물쭈물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지금은 공연이 없어요. 격월로 정해진 날에 하거든요. 이왕 오셨으니, 위에 한 번 보실래요?"


강렬한 빨간 머리를 한 여자분이 갑작스레 찾은 방문객의 인사에 친절하게 답한다. 나는 그녀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소극장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오시면 기쁘죠. 우리나라 곳곳에 소극장이 더 많이 생기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으면 좋겠어요."



1980년대 후반, 인천에는 6개의 소극장이 있었다. 1990년에 한국 최초 시립 극단인 ‘인천시립극단’이 창단될 때까지, 이른바 ‘소극장 전성시대’가 이어졌다. 그 이후로도 인천 지역에서는 재공연 포함, 300회 이상의 연극과 뮤지컬이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공연 대부분은 공공기관 주도로 이뤄졌다. 이는 그만큼 지역 극단 유지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런 만큼 긴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돌체 소극장과 극단 마임이 갖는 의미가 크다. 지역 주민과 긴밀히 교류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체는 크라운 마임(Clown Mime) 중심의 소극장이다. 크라운 마임이란 피에로와 어릿광대가 몸짓이나 표정으로 표현하는 연극과 무언극이다. 조명이나 음향이 없어도 공연이 가능한 덕분에 외국에서는 길거리에서도 종종 선보여 스트리트 마임(Street Mime)이라 불리기도 한다.

크라운 마임은 보통의 연극과는 조금 다르다. 보통은 공연 중 배우의 대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이 무언의 약속처럼 여겨지지만, 크라운 마임은 그렇지 않다. 배우는 말하지 않지만, 그만큼 관객들은 자유롭게 웃고 극에 반응할 수 있다.

한국에서 크라운 마임을 처음 만들어 낸 것은 최규호 씨다. 1983년, 극단 마임을 만들어 소극장 돌체를 이끌어 온 한국 마임계의 대부인 그는 현재도 인천국제크라운마임축제를 주관하고 있다. 국제크라운마임축제에는 매회 스페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나라에서 활동 중인 극단이 초청된다. 근 20여 년 동안 꾸준한 민간 교류를 해 온 결과이다.



돌체의 프로그램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시민참여 프로젝트’다. 평범한 시민이 1년에 한 번, 배우가 되어 보는 프로그램.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눌러놓았던 감정을 연기로 승화시켜 분출해낸다. 2016년 제9기 프로젝트가 종료되어, 「하녀들」이라는 작품을 무사히 무대에 올렸다. 이러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은 공연장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직접 무대에 선 뒤로는 관람하는 마음도 남다르게 마련이다. 또한, 돌체는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내 어릴 적 꿈을 생각해 본다. 수많은 꿈을 꾸었지만 한 번도 연극배우라는 직업을 꿈꿔본 적 없다. 아무래도 연극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보니, ‘연극배우’란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요즘 아이들은 1순위 장래희망으로 연예인을 꼽는다. 어쩌면 많은 아이가 꿈꾸는 세상이 그저 TV와 컴퓨터 모니터 속에만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는 아닐까?



어둡던 무대에 불이 켜졌다. 텅 빈 무대 위를 보며 배우와 관객이 들어찬 모습을 함께 상상해본다. 모두가 함께 자리를 지킬 때만이 이 극장도 제구실을 다하는구나. 그처럼 관객, 배우, 직원이 함께 어울려 극장을 만들어나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돌체 소극장의 벗들은 한결같은 꾸준함으로 이곳을 지탱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범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