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 페인트를 칠해볼까?

감천문화마을

최유진|

도시의 색(colour)


"도시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도시에 관한 강의를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저마다의 관점과 상상으로 학생들은 도시에 관한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이야기한다. 도시를 거의 환자 취급하고 있는 난 도시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길 바라지만 이 시대의 청년들은 도시를 긍정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도시에는 대형마트가 있어서 좋아요." 한 학생의 대답인데, 대형마트에서 얼마나 많이 '장'을 보는지 몰라도, 대형마트는 요즘 학생들에게 그렇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도시에는 영화 볼 곳도 많고 먹을 곳이 많아서 좋아요." 학생다운 대답이 아닐 수 없다. 결혼을 앞두고, 처가가 있는 안성으로 이사를 했다. 28세 무렵이니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즈음이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처음 접한 안성은 말 그대로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단 흔히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거의 없었다. L 햄버거 가게와 P 빵집이 있었다고는 들었는데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개봉관이 없었다. 영화를 보려면 천안이나 평택으로 가야 하는 데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안성에 정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로의 외출, 아니 탈출은 내 삶의 오아시스였다. 친구들의 연락을 한없이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도시의 분주함과 혼란스러움을 참 좋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복잡한 곳이 왜 좋았을까 의문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것을 '편리함'으로 느꼈던 것 같다. 요새 청년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다만 복잡함을 즐기던 곳이 명동에서 강남 혹은 홍대로 옮겨간 것일 뿐.

나는 지난 몇 년간 강의를 시작할 때면 항상 도시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주로 도시가 주는 편리함의 이미지, 문화, 부유함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학생의 대답은 많은 토론 거리를 떠오르게 하였다. 


"도시는 색이 똑같아요. 모두 회색."


왜 도시의 색은 모두 같을까? 그것도 어두운 색. 그래서 내 마음이 도시만 생각하면 어두워지는 것은 아닐까? 느낌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낙후된 도시는 어둡다


도시재생으로 학위 논문을 쓰려다 보니, 슬럼 지역을 살며시 다녀오곤 했다. 무서워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그런데 슬럼화가 많이 진행된 도시일수록 주거지의 색이 어두운 느낌을 받았다. 반면 대형 쇼핑몰이 몰려 있거나 부촌인 교외 지역(suburban)으로 갈수록 주택의 색이 밝아 전반적으로 생기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도시의 색이 어두울수록 도시의 쇠퇴 정도가 심하구나." 물론 이 역시 그저 느낌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이 가설의 역도 성립하는데, 가령 쇠퇴한 도시 내 지역일수록 그 색이 어두울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둘 사이에 분명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난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가설을 통계분석으로 검정해보면 어떨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어도 그때 난 열정이 충만한 청년이었다.

주택의 어두운 정도(명암)를 수치화하고 명암이 주택의 판매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수치화를 어떻게 하지? 혹시 포토샵에서 스포이트를 활용하면 '명암'이 수치화되어 나오나? 당연히도 적용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의욕이 넘쳤으나 주택의 '명암' 정도를 측정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난 이 주제를 포기할 수 없어, 사이먼스 교수님을 찾아갔다. 내 가설이 검정해볼 만한 가설이라는 말 정도는 듣고 싶었다.


"교수님, 슬럼 지역을 가보니 주택의 색이 다 어두웠어요. 혹시 주택의 어두운 정도가 주택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교수님께선 "글쎄, 그냥 집주인의 선호 아닐까?"라고 말하며 매우 심드렁하셨다. 어두운색 좋아하면 그런 집에 살고, 밝은색 좋아하면 열심히 하얀색으로 페인트칠하고. 뭐 그렇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난 한풀 꺾였다. 하지만 사이먼스 교수님은 한 마디 덧붙이셨다. "유진, 낙후된 도시의 주택이 어두운 것은 당연한 거란다. 집주인의 경제 상황이 넉넉하지 않으니 페인트값이라도 아껴야 하거든."

연구할 가치는 없었지만, 개인적인 느낌은 어느덧 심증으로 굳어졌다. 낙후된 도시는 어둡다. 도시를 구성하는 건물을 방치할 수밖에 없으니까.


도시의 재생은 색칠 놀이로부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도시재생은 색칠 놀이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도시의 매력을 비교적 이른 시간 안에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도시에 색을 입히는 것이다. 이런 색칠 놀이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예술인의 정착을 유도할 수 있다. 도시의 벽 곳곳에 벽화를 그리면 예술인을 위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물론 양질의 일자리가 마련되는 게 아니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기로 관광과 문화 도시로의 출발을 알릴 수는 있다.

또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 도시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어 현대인에게 그림으로 들려줄 수 있다. 도시의 역사를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진짜 도시를 만날 수 있다. 현대에 세워진 아파트, 상가, 학교 등의 건물이 들어서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도시의 이야기가 살아나는 순간 도시는 깨어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지면 우리는 추억할 것이 많아지고 추억할 것이 많아지면 먹고 싶은 것, 만들어 내거나 소유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그렇게 도시는 살아난다.



도시가 우울해 보이면 색을 칠하자


마지막으로 도시가 알록달록해지면 쇠퇴한 도시를 바라보는 우울감이 조금은 줄어든다. 물론 이는 주관적인 생각이다.


감천문화마을, “벽화마을의 시조새”


부산시 사하구에 위치한 감천문화마을은 우리나라 도시재생의 역사에서 벽에 그림을 그리고 페인트를 칠한 벽화마을의 시조새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도시재생에 관심 있는 활동가뿐만 아니라 관광지로도 워낙 유명해 전국구 스타가 된 마을이다.

감천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부산으로 떠난 날, 부산은 하늘이 매우 흐렸고 빗방울이 흩뿌렸다. 파란 바다와 만나는 파란 하늘, 그리고 파랗고 붉은빛으로 물들인 주거지를 사진에 담고자 했는데, 안성 사람의 부산 나들이는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보는 곳곳,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실 사하구에 진입하기 전부터 부산에는 이런 그림의 마을이 적지 않게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감천마을은 파란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주거지에 칠한 색이 모두 파란색은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파란 느낌이 나서 바다와 하늘 그리고 마을의 만남이 서로 흥이 나는 듯했다. 하늘이 파랗지 않았던 것이 정말 아쉽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전체적으로 파란 질감이 시원한 느낌이다. 하늘이 흐려 아쉬울 뿐.


산이 뒤를 든든히 받치고, 앞은 바다를 향해 트여 있다. 가운데 우뚝 솟은 아파트의 불균형이 오히려 마을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감천마을은 태극도 신도의 신앙촌으로 시작했다. 태극도 신도들이 단체로 피난을 와 이곳에 정착한 것이 마을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마을의 집 사이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태극도의 발자취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태극도는 "도를 아십니까?"라 묻는 종교와는 명백히 다른 종교라 한다) 태극도 신도를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하자 한 때 3만 명 이상 되는 매우 큰 마을이었다는데,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1만 명 대로 인구가 급감했다고 한다. 청년층의 태극도 이탈과 IMF 이후 좋지 않은 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 아닐까 추측한다. 이에 2010년을 전후로 예술가와 지역 주민 그리고 정부(부산시와 중앙정부)가 힘을 합하여 "마을미술 프로젝트 사업"을 시작했고,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감천마을을 탄생시켰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출제된 감천문화마을. 전국구 스타가 아닐 수 없다.


평일임에도 적지 않은 관광객이 마을을 찾았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곳곳에서 들렸으며 한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마을을 멀리서 바라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부조화 속 조화로움, 복잡함 속 단조로움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랄까? 멀리서 바라보면 약간 현실 감각이 무뎌진다. 그냥 그림 안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주택과 상점 옆을 걸어보면 현실에서 깨어나게 된다. 사람이 숨 쉬는 곳. 여기는 그림 속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상점과 벽화 뒤편으로 주택이 보인다.


이 마을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주민협의회가 실질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곳곳에 주민협의회를 통한 사업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주민참여는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관주도의 도시재생은 행정의 관심이 떠나는 순간 재생의 선순환 구조가 깨져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행정이 마중물 역할로 스스로를 한정하고 주민참여를 통해 마을의 공동체를 가꾸기 시작하면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주민자치회의 손길이 묻어 있음을 증명하는 팻말


후기: 내일을 위한 오늘


감천마을을 다녀온 후 대학원 학생들과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회적 경제를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는데, 내가 방문 소감을 밝히자 감천마을을 두고 토론하는 자리가 열렸다. 마을의 전반적인 성공에는 동의하나 지나치게 많은 외지인이 들어와 이윤을 목적으로 마을을 가꾸고 있다는 점은 비판할 만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관련 속사정을 살펴보자. 감천마을은 태극도 신도를 중심으로 한때 3만 명의 주민들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했으나, 이후 1만 명까지 인구가 감소하며 빈집이 다수 생겨났다고 한다. 짐작하건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지속되면서 마을을 떠난 2만 명이 거주하던 빈집들은 자연스럽게 외지인의 소유로 바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리가 괜찮은 곳에 있는 어느 빈 상가의 주인이 임대를 구한다는 표시를 창문에 붙여 놓았는데, 좋은 위치를 고려해도 과하다 싶은 금액을 내세웠다. 집을 임대하여 거주하던 태극도 주민들이나, 새롭게 이주한 주민들의 삶이나 모두 녹록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방문객이 바라보고 즐기는 감천마을에는 겉모습과 전혀 다른 실질적인 삶이 존재한다. 그러한 삶과 일상에 대한 존중만이 주민들의 마음을 계속하여 이 마을에 붙들어 맬 수 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마을은 외지인의 상업 활동의 무대로 전락하며 '마을'이란 이름만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을 방문객을 위한 사족을 덧붙이자면, 작은 공방, 전시실, 체험관, 카페 등 즐길 거리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자세히 살펴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므로 계획을 잘 세워 방문할 것을 권한다.



원문 - https://brunch.co.kr/@echoi0816/2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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