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을 자처한 무형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김정민|

광화문 오른쪽으로 궁궐의 담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길 건너로 금호미술관, 학고재, 국제갤러리 등 전시 공간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2013년 11월, 이 거리에는 또 다른 예술 공간이 터를 잡았다. 과천관과 덕수궁관에 이어 세 번째로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사실 서울관은 기획 단계부터 논란이 많았는데, 이는 입지적인 맥락과 여러 제한으로 인해 발생한 논란이었다.


종친부, 기무사 그리고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을 지나는 삼청로 건너편에는 경복궁이 있는데, 사실 서울관이 들어선 부지에는 조선 시대만 해도 궁궐의 부속 기관인 종친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에는 종친부 건물 바로 앞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 건물이 들어섰고, 광복 이후인 1971년부터는 병원 건물이 국군기무사령부 청사로 활용되어왔다. 

삼청로에 접해 있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앞서 소개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고스란히 담긴 근현대 건축물이다.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건축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이 건물은 오늘날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병원 건축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지금은 서울관의 전시실과 사무동을 겸하는 공간으로, 흰 페인트를 벗겨내어 준공 당시의 붉은 벽돌을 되살렸다. 





한편 서울관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소격동 일대는 경복궁, 청와대와 가까워 건축물을 높이 12m 이상으로 지을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역시도 이런 법적 제약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설계 당시 지상에선 7개 건물이 섬처럼 무리를 이뤄 방문객을 응대할 수 있도록 하였고, 소장품을 전시하고 보관하는 미술관 핵심 공간은 지하에 배치했다. 그 결과 주변 도로 어디서든 전시실에 접근할 수 있는 개방적인 동선이 형성되었다. 또한,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마당을 조성해 공공성을 높였다. 일상적으로는 이웃 주민과 관람객들의 휴식처로 활용되며, 조각이 들어설 때면 이곳은 야외 전시장이 되기도 한다.




길이와 높이 모두 33m에 이르는 ‘서울박스’, 그리고 가로, 세로 24m 규모의 ‘전시마당’은 서울관의 핵심 공간이다. 이곳은 기존 국내 주요 미술관에선 전시하지 못했던 초대형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 의의가 남다르다. 전시 공간이 지하에 조성되면서 가장 중요했던 건 다름 아닌 채광이었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기하학적 디자인의 빛 우물을 통해 자연광을 아래로 끌어들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수직 공간 안에 펼쳐지는 은은한 빛은 전시 공간이 지하 공간이란 사실을 잊게 만든다. 그런 관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기본적으로 미술관이지만, 동시에 공원이자 광장이며 길이다.




배경음을 자처한 ‘무형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회복’과 ‘조화’란 덕목을 제대로 구현했기에, 많은 논란을 잠재우고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곳은 DDP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미술관이 아니다. 서울관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북촌 주변 경관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이곳을 설계한 홍익대 민현준 교수는 ‘무형의 미술관’을 지향했는데, 경복궁, 종친부, 북촌 한옥마을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배경음과 같이 은은하면서도 잔잔한 미술관을 연출하는 데 주력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조에 발맞춰 건물은 대체로 정직한 정사각 박스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외피의 재료와 색상도 미색 계열의 타일이기에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유리를 씌운 부분도 반짝거림이 도드라지지 않는 차분한 유리로 처리하여 유리 소재가 돋보이는 건물에 비해 은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열린 미술관이자 낮은 미술관, 튀지 않고 겸손하게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그렇게 완성될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관람하는 과정에서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중앙홀에서 벽 너머로 종친부 경근당이 보이는 모습이다. 단풍의 붉은색을 그대로 입은 처마의 모습을 관람객은 서울관이라는 액자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 계절을 이렇게나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건축물이 또 있을까. 서로 다른 세 가지 시대, 세 가지 유형의 건축물은 오늘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나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30(소격동 165) 

운영시간: 08:00 ~ 23:00

관람시간: 화, 목, 금, 일 10:00 – 18:00 / 수, 토 10:00 – 21:00 (정기휴관: 1월1일, 매주 월요일)

※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관람료: 상설전시 무료, 기획전시 전시별 별도 책정(홈페이지 참조)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김정민

bella94010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