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맛이 그리는 호시절

할머니순대국

양혜은|

건국대학교 일감문 근처에는 ‘3대 전통의 맛’, ‘항시 최선의 맛’이라는 투박한 홍보 문구가 눈에 띄는 할머니순대국이 있다. 인테리어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허름한 외관이 식당의 연륜을 넌지시 보여준다. 식당에서 변하지 않아야 할 유일한 것은 모름지기 맛이라고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제집 안방처럼 편하게 들어와 큰소리로 주문을 외치는 손님부터 소주와 국밥이라는 든든한 조합을 실천하는 사람까지, 식당 내부는 영업시간 내내 붐비는 편이다. 할머니순대국에서는 순대, 내장, 머리 등 원하는 부위를 선택하여 국밥을 주문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음식은 가리지 말고 다 먹어라’ 라는 할머니의 무서운 밥상 가르침을 받은 나는 골고루(순대, 내장, 머리) 섞어 시켰다.



"이것은 어둠의 맛이다 … 그대로는 독이기에 … 한꺼번에 많이 먹었다가는 죽는다 … 만드는 과정은 오로지 이 여사만 알고 있었다. - 명지현 <교군의 맛>"


할머니순대국은 먹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다음 방문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하는 어둠의 맛을 지녔다. 다대기를 푼 국물은 얼큰하니 속을 풀어주고,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양을 자랑하는 건더기가 화수분처럼 계속 나온다. 맞은편에 앉은 일행은 ‘배부르다’는 말을 하다가 곧 ‘죽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정은 가게 안에 앉은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국물에 밥을 말아 땀을 흘리며 식사에 열중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이어지는 3대의 맛깔나는 인생을 그린 소설이 자꾸만 떠올랐다.



우직한 인상의 아저씨는 서빙을 도맡고, 주인 할머니는 부엌을 지키며 불판 위로 뚝배기 그릇을 바삐 올린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에게 언제나 색다른 맛을 알려주던 우리 할머니를 떠올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손맛이 점차 변한다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정성을 들여 만들어주셨다. 그처럼 자양동 할머니가 맛으로 그려낸 호시절 또한 3대를 넘어 앞으로도 지속할 것 같다는 믿음직한 상상을 해본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양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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