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전통문화를 되짚어보면 부엌과 식탁은 언제나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한국에서는 부뚜막과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집안의 풍요를 함께 지켜준다 믿었고, 성경에서는 식사를 함께 나누는 행위를 매우 중요한 의미로 해석한다. 작년, 강동구 성안마을 골목길에 문을 연 소소부엌은 이처럼 소중한 공간인 부엌을 공유하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다란 테이블과 함께 넓은 공간을 빼곡히 채운 다양한 주방용품과 소품이 눈에 들어온다. 일주일 중 금요일과 일요일은 요리공방이나 공유부엌으로 활용되는 공간인 만큼, 커다란 테이블은 요리 테이블 또는 식사 테이블로 활용되며 목적에 따라 그 쓰임을 달리한다. 유명 레스토랑의 주방처럼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은 아니지만 마치 친구네 부엌에 들어선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이 기분 좋게 다가온다.
소소부엌은 화요일과 수요일, 목요일, 그리고 토요일 저녁에만 식사를 판매하고 점심은 예약제로 운영한다. 요일이 제한된 데다가 자그마한 공간이기에 금방 자리가 차고, 매우 붐비는 편이다. 소소부엌은 요일별로 각기 다른 주제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매주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로 구성하는데, 화요일은 가정식, 수요일은 면 요리, 목요일은 카레, 그리고 토요일은 그 외 색다른 밥상을 준비하는 등 형식은 정해져 있다.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원하는 메뉴를 맛볼 수 없고, 늦은 저녁에는 술상만 판매하기 때문에 시간 계획을 잘 세운 이후 방문해야 한다. 나 역시도 너무 늦게 들른 탓인지 밥상은 맛보지 못하고, 와인과 감바스 알 아히요로 아쉬움을 달랬다.
밀린 주문 때문에 요리가 늦을 거라는 사장님의 말에 책을 읽으며 요리를 기다렸고, 오래 지나지 않아 약간의 강황을 더해 독특한 향이 느껴지는 감바스 알 아히요가 차려졌다. 함께 나온 빵을 찍어 먹으며 와인 한 잔과 여유를 만끽하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다.
"모두를 위한 부엌"
술을 마셨기 때문인지, 아니면 공간의 푸근한 분위기 때문인지, 노곤노곤한 기분에 긴장이 풀어진다. 느슨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 집을 구경하듯 구석구석 공간을 살펴보며, 소품에 스며들어 있는 나름의 취향을 간파해 본다. 소소한 행동이지만, 소소한 즐거움에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