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맛

초이수제비

이수현|

이천에서 반나절을 보냈을 무렵 반가운 제보를 전해 들었다. 모르면 이천사람이 아니라는 수식어가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아주 오래된 수제비 전문점이란 표현에 입안에는 벌써 군침이 돌았다. 이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추천받은 식당이라면 믿고 방문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모든 예정을 취소하고 지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초이수제비는 이천 시내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어재연로에 있다. 아주 오랫동안 영업해온 수제비 집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주인 할머니께서 직접 반죽을 뜯어 손맛이 쫄깃하게 살아있는 낡고 허름한 식당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게가 가까워질수록 번화가 중심부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양옆으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당이 줄지어 서 있고, 시내로 놀러 나온 중고등학생들과 젊은 연인들로 거리는 북적였다.




"편견을 깨는 곳"


세월이 묻어나는 허름함을 기대했던 예상과는 반대로, 초이수제비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건물 2층에서 영업 중이다. 디저트 카페에서 봤음직한 은은한 주황빛 조명과 우아한 디자인의 철제 테이블, 그리고 최신 트렌드라 할 수 있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을 취한 공간은 터줏대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세련미를 풍긴다. 어느 누가 이곳에서 수제비를 팔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테이블 유리 아래에는 단출한 메뉴판이 끼워져 있지만, 모든 메뉴의 가격이 6,000원으로 깔끔하다. 평소 같으면 가게 이름을 내건 기본 메뉴인 초이정식 수제비를 시켰겠지만, 얼큰하고 칼칼한 국물이 먹고 싶은 나는 얼큰 수제비를 주문한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새 진득해 보이는 빨간 국물 수제비가 놓인다. 알싸한 후추향과 얼큰한 기운이 풍겨오는 수제비는 어떻게 보면 떡라면 같아 보이기도 한다. 달걀이 고루 퍼진 국물과 수제비 하나를 먹어보면 뜨거운 수제비를 식히는 와중에도 감동적인 국물 맛이 느껴진다. 흡사 고추장떡볶이 국물을 떠올리게 하는 맛은 친근해서인지 더욱 입에 감겼다. 레스토랑같이 고풍스러운 공간 안에서 맵고 뜨거움에 코를 훌쩍이며 열심히 먹는 내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고객 연령층은 학생부터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 세대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과연 지역에서 손꼽히는 ‘맛집’답다. 앞에 앉은 모자가 제육볶음과 초이정식을 주문하여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나도 다음에는 동행인을 데려와 다른 음식도 먹어보겠노라 다짐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더니 물 반, 수제비 반으로 찬 배가 아주 불룩하다. 비가 오는 날, 창가에 앉아 먹었던 얼큰한 국물은 언제고 기억에 되살아 날 것만 같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이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