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마을에 미칠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

R3028

윤여준|

최근 을지로만의 매력에 이끌린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고 창작활동을 전개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왜 을지로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을지로만의 지역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러한 지역성을 기반으로 예술활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R3028의 운영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R3028은 어떤 공간인가.

R3028은 ‘세상을 위한 예술’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창작과 예술 교육을 병행하는 예술 단체이다. 2015년, 교육학을 전공하는 예술가 8명이 뜻을 모아서 결성됐다. 현재 철공소 단지가 위치한 을지로 산림동 공간을 기반으로 ‘창작’, ‘전시’, ‘공연’, ‘예술교육’, ‘도심재생사업’등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떠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해 왔나.

지역을 기반으로 진행한 사업들로는 ‘산림동 역사길 조사 사업(이하 역사길 조사사업)’, ‘산림동 예술 골목 조성사업(이하 예술길 조성사업)’, ‘공동체 중심공간 마당 조성사업(이하 마당 조성사업)’ 등이 있다. 그중, 역사길 조사사업은 우리가 산림동에 둥지를 틀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으로, 산림동의 역사를 추적해 들어가는 작업이다. 내가 원래 어떠한 사물이나 공간, 존재 등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 개인적 성향과 더불어 2016년 1월, 오랜 시간 방치된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직접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계기로 길이 가진 역사를 조사하게 됐다.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공간 안에 쌓여온 세월을 목격하면서 자연스럽게 건물을 품고 있는 골목길에는 얼마나 많은 역사가 담겨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결국 그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



" 지역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사람들이 공유하게 만드는 것은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


또한 현대 한국사에 있어 중요한 지역이었던 옥바라지 마을이 경제 논리 속에서 사리지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두 번째 동기가 됐다. 정부 관료, 역사학자, 지역 주민 모두가 옥바라지 마을의 가치와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과거에 존재했던 마을로 사라졌다. 역사적 가치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 공감할 수 있는 핵심적인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가슴 아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들이 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 중 하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있는, 저를 품어준 낡은 골목에서부터 그 작업을 시작해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끝으로 많은 예술 사업들로 인하여 획일화되고 황폐해지는 지역의 모습과 주민들의 삶을 보면서, 외부에서 유입된 예술가들이 지역에 대한 이해 없이 심미적인 목적만을 지닌 채로 공간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 가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예술가와 원주민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지역이 기존에 가진 역할과 맥락으로부터 단절되는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 저희들의 생각과 욕심만으로 일을 진행하지 말자는 원칙을 가지게 됐고 지역에 대한 이해, 주민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과거의 이야기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산림동의 길은 1700년대 제작된 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지금도 산림동 골목길에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왔을 주춧돌들과 선돌이 곳곳에 남아 있다. 조선말의 건물들, 일제 강점기의 적산가옥, 현대의 건축물들까지 수백 년 동안 길이 담아온 역사와 이야기들을 보여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이야기가 살아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어떻게 이것들을 살려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을 있다.



‘예술길 조성 사업’과 ‘마당 조성 사업’은 ‘역사 조사 사업’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음(陰)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예술 감상, 예술 교육과 골목의 양(陽)적인 모습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시각예술작업을 병행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실행을 해나가고 있다. 예술교육은 ‘감상교육’과 ‘실습교육’을 병행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산림동의 장인들은 작가들의 의뢰를 받아 수많은 예술품 생산을 위한 노동을 하시지만 정작 감상의 주체로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 노동에 종사하신 분들을 예술 감상의 주체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작업을 시작했다.

‘예술길 조성 사업’은 창작과 공동체 중심의 미술교육을 근간으로 두고 진행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예술 교육자인 동시에 마을의 예술가로서 지역과 학습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선 각각의 공업소마다 사장님들께서 가지신 이야기들을 듣고 상의하며 어떤 시안으로 셔터에 그림을 그릴지를 결정한다. 그런 다음 아이들이 와서 안전하게 그림을 그리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마무리를 돕는 작업을 진행한다. 현재로써는 ‘셔터아트’와 ‘벽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차차 공업사들의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예술가들의 아이디어가 함께 녹아들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마당조성사업’은 앞 세대에 대한 보은(報恩)과 공동체 중심의 집합적 공간(collective space) 조성이라는 두 개의 모티브를 가지고 시작했다. 산림동은 6.25 이후로 도시 재건을 위해 철공소들이 입주하면서 현재 조각 특성화 지역이 됐다. 1960년대, 이 일대로부터 대한민국의 철공업이 시작 되었으며 경제 발전의 혜택은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청년들이 받고 자랄 수 있었다. 특히 우리는 이곳 선생님들이 내주신 세금을 통해 공간적 혜택을 직접 받고 있다. 그래서 산림동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보은하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프로젝트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라진 전통적인 집합적 공간(collective space)이었던 마당을 현대적으로 다시 만들고, 산림동 선생님들과 젊은 세대가 함께 모여서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통해 현재 산림동에서 철공소를 운영하시는 선생님들이 느끼는 소외, 옛 전성기에 대한 그리움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편, 젊은 세대들에게는 지금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 마을에 대한 인식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을지로에 자리를 잡고 계신 상인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있는 것 같다. 주변에 계신 상인 분들과 함께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




지역을 기반으로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을지로에 있는 분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진행한다. 최근에 진행한 ‘을지로 라이트 웨이’ 역시도 을지로4가 사거리 쪽에 위치한 ‘예술조명’ 등 많은 선생님들께 도움을 얻었따. 을지로에는 조명, 철공, 전자, 건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다.

한 예를 들면 중부 아크릴 같은 경우는 한국 아크릴 산업의 1세대이신 사장님이 현재까지 운영을 하고 있다. 사장님이 가지신 노하우들은 작품 창작에 더 없이 큰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창작에 필요한 재료들과 관련해서도 한 식구라는 말씀과 함께 도움을 많이 주시니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다.


앞으로 R3028이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창작과 예술 교육이라는 두 가지의 축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들을 보다 구체화하고 발전시키고자 한다. 을지로에서는 지속적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찾고 색을 입혀, 우리가 잊고 있던 공간을 다시 사람들이 알게 하고 싶다.

골목 안에서 진행한 작업들은 선순환이 되어 다시 골목이 가진 가치를 알리고, 도심의 근 현대사를 돌아보며 소통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나의 매개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예술을 통해 을지로를 생동감 있는 공간으로 남길 수 있기를 원한다. 서두르지 않고 ‘세상을 위한 예술’을 실험하고 실천해 나가고자 한다.



R3028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5나길 3 2층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윤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