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YOUNG, FREAK 세 사람을 만나다 #2

경리단길에서 보낸 나날들 - 장진우

이지현|

HOT, YOUNG, FREAK 세 사람을 만나다

하나의 동네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사람이다. 특히 이태원은 생각과 취향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든 곳이다. ‘마이’ 시리즈의 홍석천, 경리단길의 장진우, ‘음레코드’의 전우치까지. 이들은 어떻게 이태원에 정착해 이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을까?



모두가 궁금해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작은 식당을 시작으로 경리단길에서 가게를 연달아 성공시킨 청년 사업가. 신선한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그의 가게가 한데 모인 길을 ‘장진우 거리’라 불렀고,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 속에서 평범한 언덕길은 ‘경리단길’이란 이름 아래 유명세를 얻었다. 장진우는 큰 성공 앞에서 부러 겸손을 떨지도, 자신을 향한 수군거림에 고개 숙이지도 않는다. 그가 관심을 두는 건 언제나 꿈을 꾸고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일, 그뿐이다.




스물네 살에 경리단길로 왔다고 들었다. 이 동네에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다른 지역과 월세 차이는 거의 없었고, 그냥 이 동네가 좋았다. 외국인도 섞여 살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유일한 동네였다. 그때는 한적하기보다 낙후된 환경에 우범 지대처럼 어두운 분위기였다. 유독 나이지리아와 콩고 출신 친구가 많이 살았다. 일반 주택가였고 가게라곤 세탁소 3개, 책방 1개, 슈퍼 2개가 전부였다. 대신 이곳에는 ‘집 문화’가 있었다. 월셋집인데도 인테리어를 예쁘게 하고, 서로 집에 초대해서 밥 해주고, 음악 듣고. 이런 생활양식을 즐기는 재미난 친구들이 많이 살았다.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던 개인 서재를 활용해 ‘장진우식당’으로 문을 연 2011년 이후, 차례대로 10개가 넘는 가게를 열었다. 그 이유를 동네에 부족한 게 있었기 때문이라 말하던데.

식당에 오려고 이 골목을 찾는 손님에게 미안했다. 식사 후 이곳에서 할 게 없는 거다. 그래서 카페도 만들고 꽃집도 만들고 소줏집도 만들었다. 내가 빵을 안 먹는데도 빵집인 ‘프랭크 Frank’를 열었던 건 디저트를 원하는 손님들을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그때 나는 젊었고, 좀 더 재미있는 골목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장사가 잘되는 걸 보고 경리단길에 개성도 정체성도 없는 가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사라지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길에 수많은 사람이 모이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예를 들어 이런 건데, OB랑 MAX만 먹었는데 갑자기 ‘맥파이 Magpie’란 게 생겼다. 일단 맛있는지 맛없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맥주가 생긴 게 좋은 거지. 한마디로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던 골목에 원 테이블 식당이 생기고, 그곳에서 공연도 한다 하니 이곳이 궁금했던 거다. 천편일률적인 공간과 아이템은 지겨웠고, 밥 먹는 행위가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인식하면서 새로운 취향이 만들어진 거다.


공간 디렉터답게 가게마다 색다른 공감각적 경험을 전달하려는 게 느껴졌다.

종종 재즈 공연이 열리는 ‘그랑블루 Grand Bleu’는 돈도 없고 연주할 데도 없는 친한 음악가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바로 옆 ‘마틸다 Mathilda’는 누구든 화려하고 싶을 때 올 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선 드레스 업 Dress Up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끼더라. 서로 튀지 않도록 비슷하게 입고 다니고, 오히려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이 어떤 공간에서 이질적인 존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마틸다는 중년 아주머니가 빨간 하이힐을 신고 와도, 아저씨가 나비넥타이를 매고 와도 좋다. 그리고 처음 이곳에서 친한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던 그때처럼, 친구네 집에 온 듯 편하게 먹고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장진우식당이고.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마틸다(좌), 그랑블루(우)


2015년에 “경리단길을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는 인터뷰를 했다. 을지로, 광주, 인천 등 점차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행보가 의외였다.

경리단길에 계속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가게는 여전히 잘되지만, 집착하지도 않는다. 이곳은 난개발되고 경쟁도 심해졌다. 더 재미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새롭게 찾은 장소들의 공통점이 있다. 낙후지라서 내버려둘 수만은 없고,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여수에 이주 여성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식당을 내고, 광주에서 청년 창업 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사회적 이익을 위해 본인의 영향력을 활용하려는 건가?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내가 착하고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게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돈만 버는 사업가였다면 지금쯤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을 거다. 8년 정도 되었으니 얼마나 지겹겠나. 하지만 이러한 활동을 계속해나가니까 꾸준하다는 점이 증명되는 것 같다. 대중들은 은근히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역에서의 행보를 일부에선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한다고 오해한다.

상인 한 명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나라의 정책과 부동산 논리, 국민성 모든 게 얽혀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되면 임대료를 올려주는 것도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게 주인이 적게 버는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그에 비해 많이 받는 게 문제다.


몇 년 전과 달리 이제 경리단길이 죽었다고들 하는데, 장진우의 힘이 다시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많은 사람이 그걸 원한다. 하지만 내 역할은 아니다. 솔직히 경리단길에 가게를 많이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 가게 절반은 권리금 장사하는 가게들이 너무 무분별하게 생겨나 그걸 막기 위해 공간을 선점하고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거다. 그리고 권리금 장사하러 들어왔던 어중이떠중이들이 망했다는 거지 이곳에서 잘되는 곳은 여전하다. 이 길은 절대 죽지 않았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이태원>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