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지적이고, 조금 더 가까운 우리를 위해

트레바리

조윤|

매일 해가 저물 무렵, 압구정 어느 건물 지하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어두침침한 계단을 지나 어딘가 수상쩍은 방으로 향하는 이들이 손에 든 것은 다름 아닌 책이다. 3년 전 압구정의 한 룸살롱 건물에서 시작한 독서 모임 트레바리는 어느새 회원 4,000여 명을 갖춘 서비스로 성장했다. 그리고 커뮤니티 서비스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기 훨씬 이전부터, 그들은 꾸준히 물어왔다. “우리 같이 읽고, 쓰고, 대화하고, 친해지지 않겠냐”고. 그 달콤한 제안에 넘어가 초창기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가, 어느새 트레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인물이 된 정영훈 이사를 만났다.




창업 당시 독서 모임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

독서 모임을 해야 하는 이유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관련이 있다. 세상이 빨리 변하는 만큼 개인도 그에 발맞춰 변화해야 하는데, 기회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성인에게는 그런 교육 기회가 더욱 적다. 그렇다면 꾸준히 성인을 교육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독서다. 책을 혼자 읽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읽을 때, 꾸준히 독서를 이어가기가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독서 모임 자체는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소를 섭외하고, 공지 사항을 전달하고, 책을 선정하는 일 등 행정적인 부분이 생각보다 무척 번거롭다. 이런 재미없고 귀찮은 부분을 누군가 돈을 받고 해결해주고, 독서 모임을 하는 사람들은 편하고 재미있는 것만 누리게 하면 매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트레바리라는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데에는 공간의 힘이 컸다고 본다. 현재 압구정, 안국 그리고 성수에서 아지트를 운영 중인데, 세 동네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첫 번째 아지트로 압구정을 선택한 이유는 그곳이 서울의 중심점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트레바리가 로컬 비즈니스다 보니, 최대한 많은 사람, 특히 우리가 타깃으로 삼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직장인이 오기에 좋아야 한다. 안국 아지트는 강북, 특히 광화문 일대에서 일하는 직장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성수에는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자리 잡긴 했지만, 잠실 등 서울 동쪽 지역의 수요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음 지점을 낼 곳으로는 스타트업, IT 업계 종사자 등이 모여 있는 판교나, 교통이 편리한 강남과 홍대 등을 고려 중이다.



창밖으로 야트막한 한옥이 펼쳐지는 안국 아지트

트레바리 제공



룸살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압구정 아지트에는 술병 대신 책이 가득하다

트레바리 제공


‘클럽’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한다. 클럽 멤버 외에도 ‘클럽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기업 대표, 유명 작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들인데, 클럽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독서 모임을 대학에 빗댔을 때 클럽장은 교수와 같은 역할이다. 클럽장을 두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로, 선하고 지혜로운 어른과 젊은이를 연결하고 싶었다. 그런 어른들을 아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특별한 인연 없이 그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 자본을 상향 평준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세상에는 정답이 있는 문제가 꽤 많다. 과학, 주식 투자, 사회, 경제 같은 분야가 특히 그런데, 이런 주제에 대해 비전문가들끼리 이야기한다면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화 도중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풀어줄 사람이 없으면 그 역시 어떤 갈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클럽장이다.


독서 모임 외에도 북토크, 시음회, 스포츠 모임 등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우리는 이벤트 또한 멤버십의 혜택이자 서비스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책이나 독서 모임 외에도 개인의 생각과 취향, 견문을 넓혀주는 요소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벤트로는 위스키 시음회가 있다. 위스키가 비싸고 어려운 술이라는 선입견이 있는지라,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들이 직접 위스키를 경험해보고, 자신에게 맞는지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음회를 기획했다. 다른 모든 분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접해보지 못한 취향과 생각을 직접 체험해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주는 것이 이벤트의 주된 목표다.


트레바리를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라고 정의한 기사를 봤는데, ‘커뮤니티 서비스’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이고, 그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말 그대로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서로 이어주는 서비스다. 최근 이런 커뮤니티 서비스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돈 내고 독서 모임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남녀 간의 만남을 위해 모인다는 오해도 받았다. 이제는 커뮤니티 서비스 자체가 하나의 산업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트레바리

트레바리 제공


이런 서비스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일상에서 채울 수 없는 외로움과 상실감을 채워주기 때문이 아닐까. 평소 우리는 ‘지금의 나’를 공유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 외에도 내가 지금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일종의 ‘느슨한 연대’가 필요하다. 다만 인간관계를 다루는 일인 만큼 ‘어느 정도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관계 형성에 얼마나 관여할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까지 나서서 도울지 그 균형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트레바리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트레바리는 팔리면 팔릴수록 세상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다. 그래서 지금처럼 서울에서 지점을 늘려가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지방, 가능하면 외국에도 아지트를 내고 싶다. 사업 영역 확장과 관련해서는 지금의 커뮤니티 서비스를 발전시켜 집단 상담 서비스를 해보려는 아이디어도 있다. 독서 모임을 통해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집단 상담도 해낼 역량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아주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트레바리를 통해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책을 더 읽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평소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을 만나 연대감을 느끼기도 하고. 결국에는 이곳을 찾는 모든 이가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1: 로컬전성시대>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interviewee

정영훈 운영 총괄

서울대학교 경영대를 졸업한 후 대기업에 입사했다. 해외 투자 관련 일을 하던 중 우연히 트레바리를 접하고 첫 시즌의 멤버가 되었다. 1년간 멤버로 활동하다 트레바리로 이직한 이후 더욱 완벽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다. 이 생경한 비즈니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항상 궁금하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조윤

yjo@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