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성수> 미리보기 #2

성수연방

심영규|


성수연방


변화의 시대, 유니언을 모으다


지난 1월 24일, 색색의 옷을 한껏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줄지어 낡은 공장을 방문해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댔다.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이 문을 연 날이었다. 새로운 재화와 문화를 생산하는 공장이라 할 수 있는 성수연방에는 존쿡델리미트, 창화당, 피자시즌, 자파브루어리, 인덱스카라멜 등 F&B 상점과 함께 띵굴스토어, 아크앤북, 천상가옥 같은 문화공간도 입점했다. 또한 제품 생산 공장과 성수포럼을 운영하며 문화와 소규모 제품의 신생산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오티디코퍼레이션(OTD Corp.)은 식음료 편집숍을 기획・운영하는 셀렉트 다이닝과 라이프스타일숍을 운영하는 공간 플랫폼 기업이다. F&B에서 라이프스타일숍까지 영역을 확장하다 이제는 직접 식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연 것이다.

이는 시대 변화에 따라 시장이 바뀌고, 소비자들의 요구가 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기업이나 가맹점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개성이 없다. 대량 생산 제품은 객단가를 낮춰야 하고 가성비가 중요하다 보니 까다롭게 변한 소비자의 요구에 일일이 대응하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과 기술 개발에 따라 입점 위치나 동선이 불리해도 개성 있는 브랜드라면 소비자가 찾는다. 이에 오티디코퍼레이션은 품질이 우수하고 브랜딩이 잘된 작은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이들을 한 공간에 모으고 공장을 두어 원가를 줄일 뿐 아니라 행정적・물리적 지원을 통해 상생하는 모델인 것이다. 이진욱 개발팀장은 “최근 사람들이 진정성을 찾아 떠나는 모험가로 바뀌었다. 식료품도 본질이 드러나는 공간을 보여주면 소비자가 직접 만들고 맛보며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즉, 모든 상품 자체가 ‘본질에 대한 속살’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대중매체를 통한 단순 광고나 SNS만으로는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없다. 그는 “제품 자체가 훌륭하면 아예 위탁 생산한 뒤 포장해 우리의 판매 채널에서 유통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한다.



천상가옥


오티디코퍼레이션은 성수연방을 통해 작은 실험의 결과를 보여줬다. ‘오버 더 드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조리법 개발, 매장 디자인, 브랜딩, 개점까지 도왔다. 그 결과로 <마스터셰프코리아>(Olive) 출신 김태형 셰프의 피자시즌을 1층에 런칭했다. 또한 1층의 수제 맥주 전문점 자파브루어리 대표는 아버지 대부터 인도에서 소형 양조장을 운영한 경력과 상품성을 갖췄다. 이 팀장은 “로컬 브랜드는 개성과 독특함뿐 아니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상품성이 중요하다. 우리는 경력보다 실력을 검증하는 정성적 평가를 한다”고 말한다. 창화당은 만두라는 콘텐츠 하나에만 집중한 브랜드이며, 인덱스카라멜은 캐러멜에 집중하되 포장을 색다르게 했다. 다품종시대에 특정 상품에 대한 집중성의 가치를 본 것이다. 이제 개성과 자기 철학을 가지고 만드는 브랜드와 알려지지 않은 로컬크리에이터를 한자리에 모아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연방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진욱 개발팀장


진정성을 찾아 여행하는 힙스터를 위한 안내서

- 이진욱(오티디코퍼레이션 개발팀장)


성수연방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새로운 문화적 코드를 주입할 수 있는 지역이 필요했다. 소비자에게 단순히 F&B나 라이프스타일숍을 제안하려 했다면 이곳보다는 중심상권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새로운 문화 코드나 가치를 찾는 사람들과 젊은이들이 성수동을 원한다. 게다가 기존의 중심상권은 특색이 없는 반면 성수동은 물리적 공간의 특징이 뚜렷하다. 또한 최근의 공간 트렌드를 고려할 때, 일단 사람들이 외부에서 전체 형태를 인식하기 쉬워야 하고 동시에 개방되어야 한다. 실내뿐 아니라 야외에서 행사가 열려야 스펙터클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건축적으로 야외 중정을 고민했고 자연스레 준공업지역을 찾게 됐다. 현재 성수연방은 대칭을 이루는 두 동과 중정이 있어 매력적이다. 원래 이곳은 대명케미컬이라는 화학 회사의 물류창고였고 일부에는 신발공장도 있었다.



띵굴스토어


2층 공장에서 존쿡델리미트의 육가공식품, 샤오짠의 만두, 인덱스카라멜의 캐러멜 등을 생산한다. 식품업체마다 필요한 요구와 면적, 컨디션이 다를 것이다.

현재 공유공장 개념으로 운영하는 명동 디스트릭트M의 베이커리공장에서는 르뱅과 태극당의 빵을 생산한다. 공유공장도 기본 레이아웃은 비슷하다. 예를 들어 베이커리류와 육류 등 세부 설비가 다른 품목이 함께 있지만, 생산 과정에서 교차 오염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품목은 제한한다. 사실 생산보다는 관리나 유통이 더 어려운 문제다. 우선 생산 면적은 최소화했다. 디스트릭트M의 베이커리는 50평이고, 성수연방 공장 우측 2층은 100평, 좌측 50평 규모다. 주문이 많아지면 규모를 키울 예정이다.



인덱스카라멜


식품제조업인증과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 요건이 까다롭다.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당연히 행정상 복잡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해썹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오래 이야기해야 하고, 품목별 상세한 상품설명서 등 필요한 서류가 많다. 당장 영업하기 바쁘고 전문성 없는 소규모 제조업체가 컨설팅을 받아 진행하려면 1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물리적으로도 그 기준에 맞춰 위생실, 제조실, 포장실을 구획하기 어렵다. 대부분 임차인은 자가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설비를 마음대로 갖추기도 쉽지 않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성수연방2’를 기획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공유공장으로 식료품점이나 전시장, 스튜디오, 강연장도 운영할 예정이다. 대략 250평 규모로 생각하고 있다. 성수동을 조금 벗어나 다양한 지역을 조사・기획 중이다. 품목은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 간편식)을 고민 중이다. 우리는 아예 식품 제조 쪽으로 벨류 체인하려 한다. 그 방법으로 작은 브랜드와 협업하고 소량 다품종 생산으로 상품의 다른 가치를 전달하는 게 최종 목적이다. 판에 박힌 편의점의 반조리 식품이 아니라 ‘다품종 고감도’ 식품을 만들고자 한다.


최근 위쿡이나 심플키친 등 다양한 형태의 공유주방이 주목받고 있다.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단순히 F&B 인큐베이팅과 같은 공유주방의 개념과 다르다. 스타트업을 위한 ‘위워크’와 같다. 이미 어느 정도 상품성을 가진 작은 브랜드를 모으고 1차 선별 과정을 거친 업체가 다음 허들을 넘기 위한 곳이다. 국내엔 비슷한 사례가 없다. 어차피 공장이란 개념으로 접근하면 규모의 경제로 가야 한다. 규모와 생산량을 늘려 객단가를 낮춰 수익성을 만드는 개념이다. 그러다 보니 도심에 제조시설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제조의 시대가 끝났다고 본다. 대기업은 품질이 낮다. 소비자는 이런 뻔한 상품을 원하지 않는다. 기대 수익이 한정되어 있다면, 물류 환경이 좋은 도심에 콤팩트한 공장을 모아서 상품성 있는 제품을 유통하는 게 더 가치 있다. 좋은 제품이 수익성을 높여 생산까지 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 한다.



피자시즌


대량 생산 시스템의 한계로 대기업도 변하는 시대다.

대형마트 3사 중 하나와 ‘셀렉트 베이커리숍’ 입점을 논의하고 있는데, 우리 공유공장에서 생산한 빵을 판매하려 한다. 기존엔 대량 생산된 빵을 납품받아 팔았다면, 이제는 우리와 협업해 전문성 있는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바켄을 비롯한 유명 지역 제과 브랜드와 협업할 예정인데, 일종의 빵 편집숍이다. 대형마트 주변 상권에 맞는 브랜드만 선별해 큐레이션한다.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취향에 집중해 전통 있는 브랜드를 소개할 예정이다.



아크앤북 성수


오티디코퍼레이션은 공간 콘텐츠 베이스 사업자의 선두에 있다. 부담과 책임감이 클 것이다. 향후 이 시장을 어떻게 고도화할 계획인가.

두 가지 방향이 있다. 공유공장은 우리가 일종의 제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방향이다. 작은 브랜드와의 협업, 음식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 등 다른 가치를 추구하려 한다. 외연을 확장하는 방식도 고민 중이다. 책이나 상품을 큐레이션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 밖에도 정적인 공간에서 동적인 이벤트를 전개할 예정이다. 천상가옥에서 성수포럼과 같은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단순히 예쁘게 만든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강연자를 초빙해 동적인 콘텐츠를 만들 예정이고, 이는 스타트업 종사자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다. 프로그램은 대체로 디자인이나 예술 쪽으로 특화되어 있는데, 디자인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이 공간에 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강연만 듣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체험하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성수>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심영규

shim09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