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대표 자재 7선

만물 탐방 일지

이지현, 양혜은|

을지로는 만물萬物로 가득하다. 넓은 지역에 분포된 여러 특화 거리에선 상점마다 자신의 주력 물건을 경쟁하듯 판매한다. 없는 물건이 없고, 없는 기술이 없는 이곳을 한 달 동안 여러 번 찾았다. 이유는 매번 달랐다. 원룸의 낡은 방문을 수리하기 위해, 원하는 가구를 직접 제작하기 위해, 때로는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할 물건을 정성껏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만물 탐방을 마치고 남은 건 집 안에 생긴 몇 가지 작은 변화와 다음의 7가지 기록이다.



※ 문화예술 기획사 에이플래닛의 도움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탐나는 길路이 생기다

세상 모든 잡다한 물건은 을지로로 통한다. 조명, 타일 도기, 금속, 목재, 벽지, 페인트, 포장재 등 그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다. 이 일대가 제대로 된 상공업 지역으로 발돋움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였다. 황금정(현 을지로) 이남에 일본인 거주지가 생겼고, 체계적인 도로망이 갖춰지면서 을지로는 상업의 중심지이자 대표 거리가 되었다. 자연스레 대로를 따라 일본인을 상대하는 영세한 공업지대가 자리 잡았다. 6·25 전쟁 직후엔 청계천을 중심으로 공구 상가가 생겼고, 1967년 세운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하며 주변부로 공구 상가와 제조업 공장이 모여 끈끈한 산업지대를 형성했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는 박정희 정부의 정책 또한 제조업 단지가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외에도 강남 개발로 인한 건설 붐을 타고 건축자재업도 호황기를 누렸다. 목재, 벽지, 타일 등 모든 자재를 구할 수 있는 집적 효과로 전국의 건축업자가 이곳을 찾았다. 도로가 반듯하게 닦여 있어 편리한 교통과 서울의 중심부라는 지리적 이점도 이 지역의 부흥에 일조했다. 어느덧 을지로는 수많은 이가 이름만 믿고 찾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다양한 자재를 구하는 예술가,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학생, 건설업자들이 꾸준히 찾는다. 셀프 인테리어나 DIY가 보편화되면서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 방문도 점차 늘고 있다. 무엇보다 수많은 가게의 물건을 직접 보고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고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발품을 팔아서라도 내 집과 물건이 자신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를 바라는 시대. 오늘날에도 을지로는 변함없이 탐나는 길이다.




목재

나만의 가구를 만들 수 있는 곳


중부시장 근처엔 가공되지 않은 목재가 벽에 기대어 서 있거나 구석에 가지런히 쌓여 있다. 을지로 목재 골목은 건축 시장의 부흥과 함께 1980~199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며 ‘목재의 메카’로 불렸다. 지금은 저렴한 지대를 찾아 외곽으로 자리를 옮긴 목재소가 많다. 상점 몇십 곳이 늘어섰던 과거의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목재소에는 DIY 가구 제작을 위해 많은 이가 방문한다. 직접 스케치한 도면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구를 즉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재소에서 목재를 사고 바로 옆 목공소를 찾아가면 가공할 수 있다. 건축업자뿐 아니라 조소과나 건축과 학생도 과제나 전시 준비를 위해 많이 찾는다. 목재소 사장들은 수십 년 노하우를 바탕으로 어떤 종류의 목재가 적합한지, 가공성이 좋은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목공소에서 절단하고 남은 부분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도 장점이다. 온라인 구매와 달리 나무의 실제 질감을 느껴보고 구입할 수 있기에 목재소는 오랜 세월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페인트

준비된 물감과 팔레트로 색칠하기


을지로3가에서 4가까지 이어지는 대로변에는 10여 곳의 페인트점이 있다. 어느 곳을 가든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친절한 가게는 따로 있다. 페인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상담도 해주는 매장을 찾아가는 게 낫다. 기초적인 상담부터 원하는 색상을 만들어주는 조색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냄새와 독성이 없는 친환경 페인트를 주로 추천해주며, 기본적으로 페인트칠을 두 번씩 하므로 넉넉한 용량을 구매해야 한다. 페인트칠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도구도 알아두면 좋다. 마스킹 테이프는 종이테이프로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 경계 부분에 붙여준다. 커버링 테이프는 가구나 벽면에 페인트가 묻지 않도록 펼쳐 덮는 비닐이다. 페인트를 부을 트레이와 붓, 롤러는 각각 1만 원 이내에 저렴하게 판매한다. 이 외에도 금속, 나무, 화이트보드 등 특수한 재질의 느낌을 내주는 스프레이도 판매해 가구나 소품을 꾸며볼 수도 있다.




타일 도기

낡은 화장실과 부엌의 변신은 무죄


을지로3가역 1번 출구부터 3번 출구까지 약 250m 구간은 140여 개의 타일 도기 업체 중 80여 개가 몰려 있는 타일 도기 특화 거리다. 도매업자나 인테리어 전문 업체와 주로 거래하는 가게도 있으나 을지로4가역 대로변에 일반 고객들이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찾는 몇몇 유명 업체가 있으니 참고하자. 업체명에는 대개 ‘타일 도기’ 혹은 ‘세라믹’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돌가루 재질을 배합해 만든 재료를 세라믹으로 통칭하며 생겨난 결과다. 엄밀히 따지면 세라믹은 타일 도기의 일부다. 타일은 화장실, 부엌, 거실, 현관 등의 실내 공사와 외부 벽 시공 등 인테리어 영역 전반에 쓰이는 마감 재료로 각 용도에 따라 저마다 다른 고온에서 점토와 도토 등을 구워 생산한다. 크게 분류하면 무엇을 떨어뜨려도 잘 깨지지 않아 바닥에 주로 쓰이는 단단한 자기 타일(포슬린 타일), 강도는 낮지만 규격이 정확하고 미관상 아름다워 벽에 쓰이는 도기 타일(세라믹 타일)이 있다. 이 외에 작은 타일 조각들을 붙인 모자이크 타일, 대리석 등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자연석 타일도 있다. 특히 을지로에서는 타일과 함께 주로 세면대, 변기, 욕조 등의 위생 도기를 취급한다. 국내에서 생산된 타일은 물론이고 스페인, 이탈리아, 인도 등 각국에서 수입한 수백 가지의 타일, 세련된 디자인의 세면대와 욕조 등을 직접 비교하고 자신의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수전, 샤워기, 수건걸이, 휴지걸이 및 여러 화장실 소품까지 갖춰져 있어 욕실 인테리어에 관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조명

방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자, 나야 나


을지로4가역에서 을지로3가역으로 이어지는 대로변, 눈부신 조명이 밤낮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일대가 바로 조명 업체 200여 개가 모여 있는 조명 특화 거리다. 전기, 전자 물품을 다루는 대림상가와 청계상가 일대 250m 구간에도 LED 조명 제작 업체와 특수 조명 업체가 늘어서 있다. 다양한 건축자재 업종이 을지로에 순차적으로 자리 잡던 시절 끝자락에 생겨난 조명상가는 1990년대 전자상가의 붐과 궤를 함께하며 발전했다. 현재도 전자상가 밀집 지역과 가까이 붙어 있어 각종 전선과 어댑터, 케이블 등을 살 수 있다. 조명뿐만 아니라 스위치, 전선, 조명을 고정하는 비스, 전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해주는 클램프 등을 함께 살 수 있다. 몇 년 새 조명시장의 주력 상품은 백열전구에서 상대적으로 수명이 길고, 전기가 절약되는 LED 전구로 흐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백열전구 특유의 필라멘트 형태가 주는 미적 요소를 좋아하는 고객이 많아 최근에는 LED 전구지만 필라멘트 모양을 그대로 모사하는 제품이 많다. 또한 이곳의 조명 업체들은 각자 주력하는 조명 스타일이 다르다. 평일 오후나 주말은 고객이 몰리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평일 오전 10시쯤 방문하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원하는 조명의 형태와 가격을 미리 알아보고, 조명이 들어갈 공간을 파악해 필요한 수량을 정확하게 정하고 방문하는 게 좋다. 도면이 있다면 상담을 받을 때 설치에 관한 조언이나 고려해야 할 사항을 들을 수 있다. 을지로의 여러 업체가 전시용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살펴보고 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보이지 않는 별도의 쇼룸이나 창고에 독특한 조명을 보관한 가게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제 집안 곳곳에 달린 촌스러운 형광등과 작별할 시간이다.




포장

소중한 선물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마법


포장 관련 용품을 인터넷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시대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방산시장은 포장재의 대명사로 통할 만큼 전국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은 각종 포장재를 비롯해 종이, 비닐류 시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 소비자들은 주로 베이킹 관련 재료나 포장재와 박스 등을 사러 가는 경우가 많다. 밸런타인데이 같은 기념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시즌별로 다양한 물건을 갖춰둔다. 형태와 소재가 다양한 박스 및 용기, 봉투, 리본과 끈, 플라스틱 컵, 유리병, 틴케이스 등 일상 생활에서 자주 보던 물건부터 생전 처음 보는 특이한 물건까지 가게 선반 위아래로 빼곡하다. 가격마저 저렴하니 일단 잡히는 대로 집어 들기 일쑤다. 원하는 포장 방식이 있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품목을 미리 적어가는 게 좋다. 종류별로 분류된 가게 내부에서 원하는 물품 코너를 찾은 다음 수십 혹은 수백 가지 물건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보물찾기 하듯 샅샅이 뒤져야 한다. 방산시장의 영업시간은 일반적으로 평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은 3시까지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부터 문을 닫기 시작하므로 아침 일찍 방문하는 게 마음 편하다.




금속/정밀

강한 철의 골목을 누비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귀를 찌른다. 주변 소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철재를 옮기는 사람들은 이내 골목으로 사라진다. 모두가 바빠 보이는 이곳은 바로 입정동과 산림동에 위치한 금속 골목이다. 도로변에서는 금속 재료를 주로 판매하고 구부러진 골목길 안, 작은 작업 공간에서는 용접과 주물을 비롯해 정밀 제작이 이뤄진다. 한때는 공업사마다 서너 명이 꽉 차게 일을 했지만 요즘엔 대부분 가족 경영을 하거나 혼자서 일한다. 이 일대는 주로 인테리어 업자들이 찾는 곳이지만 젊은 예술가들도 작품 제작을 위해 찾는다. 제작 위주라 도소매의 경계가 없고 모든 맞춤 제작이 가능하다. 단가는 작업 방식과 인건비에 따라 가게마다 다르게 책정되기 때문에 제작 의뢰를 하려면 발품을 파는 것이 좋다. 한때는 단순하게 재료 원가의 세 배, 네 배 식으로 단가를 정했지만, 요즘은 다 옛말이라 한다. 조금은 낯선 이 골목길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조명 갓, 금속 그릇이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사장들은 오랫동안 철을 매만져 잔뼈가 굵다. 필요한 자재가 있으면 건너 소개받을 수도 있으니 잘 물어보도록 하자.




벽지

전에 알던 내 방이 아니야, Brand New Room


벽지 매장은 을지로4가역을 중심으로 방산시장 골목까지 포진해 있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매장이지만 친환경 벽지, 인테리어 필름, 단열 벽지 등 세부적으로 취급하는 품목이나 브랜드가 조금씩 다르다. 벽지는 워낙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원하는 색상이나 재질을 정하지 않고 가게 문을 열면 멘붕에 빠지기 쉽다. 브랜드별로 두꺼운 샘플북이 준비되어 있지만, 전부 둘러볼 시간은 결코 없다. 센스 있는 고객 몇몇은 집 도면을 가져와 견적 문의를 한다. 벽지는 재질에 따라 분류되는데, 종이 재질의 합지와 비닐 재질로 코팅된 실크지가 대중적이다. 벽면에 샘플로 진열되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벽지 대부분은 실크지이며, 합지보다 가격이 비싸다. 전세로 오래 머물 집에는 튼튼한 실크지, 잠시 머물 집이라면 합지를 추천한다. 수입 벽지는 가게 한쪽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꽃무늬나 호피무늬 등 화려한 색채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누가 이런 벽지를 사용하지 싶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저마다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 외에 뒷면에 접착제가 있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트지도 있는데, 싱크대나 가구에 주로 붙이며 오염되더라도 쉽게 닦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을지로 일대는 벽지 매장이 전부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가격 비교가 쉽고 업체 수만큼 다양한 샘플을 찾아볼 수 있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을지로》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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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

양혜은

heyang@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