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염리동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이후로, 평범한 골목 구석구석에는 저마다의 컨셉과 개성을 가진 작은 독립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명확하고 남다른 컨셉이 가게의 운영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독특한 가게만의 개성이 주인장의 취향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뚝심이 제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염리동 골목에 조용히 자리한 ‘초원서점’은 음악전문서점으로서 뮤지션 저서, 음악 소설, 악보집을 포함한 다양한 음악관련도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곳이다. 60년대 음악을 특히 좋아한다는 주인장의 취향이 인테리어에도 반영되었는지, 9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물건들 하나하나마다 시간의 흐름이 묻어 있는 듯하다. 음악 관련 서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목재 책장과 더불어 턴테이블, 스피커, LP레코드, 테이프 음반들이 한가득 진열된 서랍장과 테이블이 고풍스럽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초원서점’은 무언가를 판매한다는 ‘상점’의 본질적인 특성보다는 예술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살롱’같다는 인상이 더욱 강하다. 이 공간 내에서는 음악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의 만남은 물론 음악 감상회를 열어 LP레코드로 재생된 음악을 함께 즐기고, ‘초원음악교실’이라는 이름 아래 직접 쓴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지난 8월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 관객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서점’답게 필사 모임도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서점 테이블 유리 안에 끼워진 필사의 흔적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함께 보낸 따뜻한 시간들을 그대로 전해준다.
"수고스럽게 음악을 들어야만 느낄 수 있는 낭만"
서점 안에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차분한 감성을 자연스럽게 한 겹 덧씌워주고 있다. 손 안에 들어오는 휴대폰 화면을 몇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이건만, ‘초원서점’은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음악 틀기를 고집한다.
가지런히 열을 맞추고 있는 다양한 LP레코드와 테이프 중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고심해서 추려낼 때의 기분 좋은 설렘, 한참을 음미하던 음악이 끝났을 때 찾아오는 정적. 이렇듯 소소하게 매력적인 시간은 손이 가고 수고스럽더라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때만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인 것이다.
가게 바로 앞에서는 재개발을 위해 건물을 철거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초원서점’은 그 모든 것들에 통달한 듯 초연한 모습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바깥 세상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이 말이다. 기존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염리동 골목 한 가운데에서 언제든 변함없는 모습으로 조용히 반겨줄 것 같은 이 차분한 초연함을 한없이 믿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