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에 있을 따뜻한 을지로를 담은 다방

솔다방

윤여준|

을지로 작업실에 있을 때 친구가 을지로에 놀러 오면 꼭 솔다방에 가서 차를 마셨다. 바로 옆에 프렌차이즈 카페가 있지만, 을지로까지 온 친구를 프렌차이즈 카페로 데려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대부분은 다방을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고, 나 역시도 솔다방 이전에는 다방을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데리고 다방을 함께 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쩌면 다방을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괜한 오지랖이 발현된 것일 수도 있겠다.

심지어 한 친구는 ‘다방’이란 뭔가 야한 이미지를 지닌 공간이라고 이야기했고, 다른 친구는 다방이 아직도 존재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나의 단골 다방인 솔다방은 야하지 않고, 물론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솔다방은 청계상가 3층에서 만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솔다방에 대한 추억이 참 많기도 하다. 처음 솔다방을 방문한 날 먹어본 미숫가루의 시원함, 쌍화차를 처음 경험한 날의 충격, 우연히 얻어먹은 부침개, 잠시 솔다방을 지켰던 귀여운 고양이, 배고플 때 생각나는 솔다방 라면까지! 솔다방은 내게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있는 공간이다.



현재 솔다방은 주인아주머니께서 혼자 운영하고 계신다. 아주머니는 1998년 12월 8일에 일을 시작하셨는데, 당시 아주머니의 나이는 대략 29세~30세 정도였고 당시 솔다방은 항상 손님으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지금은 아주머니 혼자 솔다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98년도의 솔다방에는 배달하는 사람만 4~5명이 있었으며, 주방을 보는 분, 그리고 수금하는 분들이 각각 별도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쁘고 정신없던 옛 시절은 사라지고, 점차 줄어드는 손님에 종업원도 한 명씩 줄어들었다. 그렇게 몇 년 전부터는 다방을 혼자 운영하게 되었지만, 아주머니는 지금이 참 편하고 좋다고 이야기한다. 종종 배달 주문이 들어오면 슬슬 가게를 나가 커피를 전해주고 오기도 하며, 자신만의 공간인 솔다방에 나오는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것이다. 집에서 쉬면 뭐하냐며, 이렇게 나의 공간이 있고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이 있어 좋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솔다방 앞을 지나가던 고가도로를 기억하시나요?"


솔다방은 원래 아주머니 소유의 가게가 아니었다. 29살에 솔다방에 들어온 아주머니는 긴 생머리의 동글동글한 눈을 가진 똑 부러진 아가씨였고, 솔다방을 운영하셨던 주인 할머니는 아주머니를 어여삐 보시고 솔다방을 1년간 맡기셨다. 아주머니는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친했고, 두 분의 끈끈한 인연이 지금 솔다방을 만들게 되었다.

청계천이 복원되기 이전에는 고가도로가 솔다방 앞을 지나갔다고 한다. 청계천이 복원된 이후로 변한 것이 있다면 신기하게도 가게의 실내 온도가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고가도로가 있을 때보다 공기가 맑아진 것은 물론 온도도 낮아져서 여름을 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사람은 훨씬 줄었지만 공기는 훨씬 상쾌하다며 소녀 같은 웃음을 지으시는 아주머니를 보고 있으니 나에게도 미소가 번진다.



예전에는 인스턴트커피도 없었을뿐더러 지금처럼 카페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세운상가와 청계상가에 오신 손님들은 솔다방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상인들 역시 가게에서 직접 커피를 타 먹거나,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방은 많이 한적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쌍화차를 먹으러 수원에서 손님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오디 주스를 먹고 싶다며 멀리서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어 솔다방 아주머니는 자부심을 느끼고, 꿋꿋이 을지로의 어제와 오늘을 지키고 있다.



"사소한 추억들, 일상에서 희망을 주는 에너지"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방문한 솔다방에서 아주머니는 맛있게 부침개를 부치고 계셨다. 고소한 냄새에 흘려 아주머니 곁에 다가가니 흔쾌히 부침개 한 접시를 내어 주셨다. 푹 익은 파김치와 함께 말이다. 또 어느 날은 감기가 들려 훌쩍이니, 쌍화차를 추천해주셨다. 호두, 잣, 그리고 땅콩과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계란 노른자까지 어김없이 들어간 쌍화차는 눈을 번뜩 뜨이게 해주는 동시에 감기 기운을 가시게 해주었다.

배고픈 날이면 아주머니에게 라면을 주문하기도 하는데 조금 남아있는 찬밥도 함께 꺼내주셨다. 라면 국물에 말은 밥을 쓱쓱 비우고 고양이와 놀고 있으면, 아주머니가 인절미를 구워 꿀과 함께 가져오신다. 간단한 식사를 하러 왔지만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먹고 가게 된 것이다. 솔다방에서 느껴지는 크나큰 온정은 팍팍한 세상 속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다. 그래서인지 솔다방에서의 작은 추억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희망을 주는 에너지로 내게 다가온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이진솔

윤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