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보고 가세요!

사러가 쇼핑센터 잡동사니 코너

진혜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반면 모든 오래된 맛집은 연희맛로로 통한다. 한식부터 중식, 양식까지 음식의 종류를 막론하고 정말 다양한 먹거리가 앞다투어 연희맛로 곳곳을 알차게 채우고 있다. 대부분의 식당이 맛집인 연희맛로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곳은 조금은 의외일 수도 있지만 바로 ‘사러가 쇼핑센터(통칭 사러가마트)’다.



맛집 타령 끝에 갑작스레 등장한 마트? 사러가 쇼핑센터는 단순한 대형 마트가 아니다. 1965년 신길동 신풍시장에서 시작된 전통시장과 쇼핑센터가 결합한 이곳은, 생활 밀착형 쇼핑센터를 표방하고 있는 뿌리 깊은 전통을 지닌 명소다.

연희점은 1969년 개점 이래 지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을 취급하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안전한 먹거리, 안전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재래시장에서 시작된 시장인 만큼 전통시장의 장점과 쇼핑센터의 장점을 잘 어우르고 있다.



사러가 쇼핑센터에서는 사실 유기농 판매대, 주류 판매대 등이 유명하다지만, 사실 방문객이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 구역은 바로 잡동사니 코너다. 이는 연희점의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볼 수 있는,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 판매대들이 빼곡한 구역을 지칭한다.

처음 봤을 때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외관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두서없이 쌓여있는 물건들은 내 정신을 쏙 빼놓았다. 입을 떡 벌리고서 잡동사니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추억의 불량식품부터 외국에서 물 건너온 과자, 손수건, 가재도구, 카펫에 이르기까지 정말 없는 게 없어 보였다.


"산처럼 쌓여 있는 추억과 향수"



물건들이 현란하게 정신을 현혹하는 판매대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있자니, 어릴 적에 코 흘리며 뛰어놀던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때, 큰엄마가 사주셨던 미니마우스 도시락이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며칠 내내 도시락을 꼭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눈에 선한 그 도시락이 지금 내 앞에 운명처럼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야! 너 오랜만이다!”를 외칠 뻔했을 정도로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다. 빨간 미니마우스 도시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아가씨, 도시락통 사려고?”라며 말을 거셨다. 어릴 적 큰엄마께서 사주신 미니마우스 도시락 이야기를 슬쩍 했더니 이곳에서 추억에 빠진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대답을 해주셨다.

이름부터 정겨운 ‘사러가 쇼핑센터’.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사실 모든 물건이 다 있다는 천 원 샵과 맞먹는 듯한 작명 센스에 한참을 웃었지만, 나는 이제 그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며 더는 웃지 않는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 기억을 상기시키는 물건들을 판매하는 이곳은 당당하게 무엇이든 ‘사러가’는 명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잡동사니 코너에 진열된 물건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인기있는 품목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먼지가 내려앉은 물건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동사니 코너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던 걸음을 멈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 것 아닌 사소한 물건에서 사람들은 추억을 마주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큰엄마의 사랑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어떤 에피소드나 의미가 되어 다가올 것이다. 추억을 팔고 있으니, 먼지 정도는 쌓여도 괜찮다.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를 피어나게 하는 이곳에서 또 어떤 날을 생각해볼까?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진혜란

연기를 합니다, 종종 글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