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당신을 위한 작은 영화관

헵시바 극장

김준민|


특색 있는 장소가 상당히 많은 이태원이지만 그중에서도 헵시바극장은 여느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늦은 밤, 셔터가 내려진 이태원 시장의 골목을 지나 내려가다 보면 커다랗게 헵시바라고 적힌 창문을 만나게 된다. 형형색색 랜턴으로 밝혀진 계단을 찬찬히 오르면, 곳곳에 손글씨가 남아 있는 연극 ‘보이체크’의 대본이 입구에서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아준다. 각각 무대디자인과 연기를 전공한 자매가 함께 운영하는 헵시바는 무대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만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다.



"연극 무대 같은 공간, 그 속에 작은 영화관"


화려하면서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퇴색된 듯한 붉은색 공간은 소품과 조명, 가구, 떨어질 것만 같은 벽지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놓인 것이 없다. 유럽 어딘가에 있을 법한 오래된 공연장에 들어선 기분이 들 정도로 독특하면서도 매혹적인 공간이다. 낮에는 커피를, 저녁에는 와인 그리고 맥주와 함께 간단한 안주를 판매하는 이곳은 소수의 관객을 위한 영화관이기도 하다.



헵시바 공간 한쪽에는 푹신한 소파 아홉 개가 놓인 작은 영화관이 있다. 한 주 동안 상영할 영화는 매주 미리 정하는데, 대부분 독립영화나 고전 영화처럼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를 선정할 때가 많다. 주인장과 나의 영화 취향이 잘 맞는지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던 영화나 영화관에서 보려다가 시기를 놓친 영화도 상영 리스트에 올라 있어 반갑다. 매일 영화를 하루에 세 번씩 상영하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편한 시간에 방문해서 볼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로 와인 한 잔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즐기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을 것이다. 특히 생각이 많아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오히려 모든 고민을 덮어 놓고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편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아지트 같은 비밀스런 공간에서 영화를 통해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헵시바는 당신에게 언제고 부드러운 위로를 건넬 것이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김준민

정리정돈에 민감한 리뷰 수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