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연결고리, 추억의 맛

싸전

조혜원|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들이 있다. 탁 트인 바다, 따뜻한 라떼, 내 마음을 잘 아는 누군가의 온기 같은 것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번화한 거리에 마치 그 자리에서 난 이후로 움직인 적이 없는 듯한 나무 같이 오래된 빵집 역시도 그러한 존재 중 하나다. 내가 어릴 적부터 그 자리에 자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엄마가 어릴 적에도 똑같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전설 같은 그 곳. 강릉 성내동 광장 한 편에 위치해 있는 빵집, 싸전이다.



빛바랜 간판에는 “빵 Bakery 싸전”이라 쓰여 있다. 전화번호도 42-9056. 1998년에 전화번호 앞자리가 3자리로 바뀐 것을 고려하면, 간판이 겪어온 오랜 세월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글씨체에서부터 예스러움을 물씬 풍기지만 간판이 처음 걸리던 그 당시엔 아마 가장 세련된 것이었으리라.


"마카롱, 에클레르, 티라미수 이름부터 화려한 요즘 디저트들 사이에서 추억의 간식이 되어 버린 도너츠와 크로켓이지만, 싸전이 처음 생기던 그 때에는 아마 이국적인 맛의 대표주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단팥빵, 크림빵, 소보로빵이 대부분이던 시절 설탕을 듬뿍 묻힌 도너츠와 마요네즈에 버무린 채소가 아삭아삭 씹히는 사라다빵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만점 이었다. 아마도 이곳은 택시부광장에서 가장 핫한 소개팅 명소였을 것이다."



싸전은 부부 내외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1977년 (구)강릉슈퍼 앞 가게에서 영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1982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하니 어언 40년째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빵집 이름이 싸전이라고 하니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쌀가게였던 이전 가게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지금 말로 바꾸면 쌀집, 빵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지라도 어감이 참 좋다.



한창 전성기에는 하루에 두 번, 세 번도 빵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에 한번만 남편이 빵을 만들어 진열장을 채운다. 모자라도, 남아도 딱 하루치만큼만 만들어 내니 방부제가 가득 포함된 여느 빵들과는 그 맛과 정성을 비교한다면 서운할 정도다.

30년이 넘도록 여전한 맛의 비결은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재료를 받아오는 곳도, 그 재료를 가지고 빵을 만드는 이도, 빵을 먹는 사람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싸전에서는 슈크림 도너츠, 빵 도너츠, 고로케, 생크림 도너츠, 야채빵, 찹쌀 도너츠, 밤앙금빵, 꽈배기, 소보로빵이 여전히 가지런하게 이름표 앞에 놓인다.



가지고 갈 거라고 말씀드리면 싸전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힌 하얀 봉투에 담아주고, 먹고 갈 거라고 하면 듬성듬성 잘라 “스뎅쟁반”에 담아 내어준다.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예스러움이 덤으로 따라와 정겹게 느껴진다. 빵도 빵이지만 팥빙수 역시도 추억을 소환하는 인기메뉴이다. 얼음을 서걱서걱 굵게 갈아 연유, 팥, 미숫가루, 젤리, 떡을 넣은 옛날 팥빙수 위에는 계절에 따라 딸기나 수박이 얹혀진다.

싸전은 50대 엄마와 20대 딸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강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더라도 이곳의 맛은 옛 빵집의 그 맛 그대로이다. 이런 빵집이 지난 세월을 더해 오래도록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이 곳을 빵집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한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조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