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책을 팝니다

북극서점

범유진|

버스를 잘못 탔다. 목적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한참 간 후에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허둥지둥 내려 주위를 살피니 이차선 도로 양옆으로 좁은 길이 나 있다. 위쪽으로는 아파트가 보였고, 아래쪽으로는 목공소가 늘어서 있다. 어떻게 봐도 번화가는 아니다.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해서 터덜터덜 아래를 향해 걸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북극서점"



서점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분명 서점이다. ‘책’이라는 글씨도 선명하게 적혀있다. 게다가 북극서점이라니, 왜 북극인 걸까? 호기심이 일어 견딜 수가 없었다.



작은 서점 안에 들어서자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 꽃이다. 말린 꽃은 드문드문 천장을 장식하고 있다. 진열된 책을 한 권씩 살펴보았다. 제목은 들어보았지만, 일반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독립출판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책들은 자본에 의해 선택되지 않는다. 작가가 자신의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결심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에 독립출판물은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다. 확실한 건 일반적인 출판 경로를 거친 책에 비해 작가의 생각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또렷한 개성은 책에 선명한 색을 입힌다. 이러한 책은 대형 서점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다. 종종 온라인 판매를 하는 곳도 있지만,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서점에 직접 가는 것이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언제부턴가 책을 만지고, 읽어보고 고르는 일이 줄어들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면 편리한 데다 사은품까지 덤으로 오는 시대다. 온라인 대형 서점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온통 베스트셀러뿐이다. 설령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도, 온라인 서점의 메인 화면에 걸리기 위해서는 일단 온라인 서점 MD의 손을 거쳐야만 한다. 그렇기에 온라인에서 책을 사는 것은, 이미 한 차례 타인의 취향으로 선별된 책을 고를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개인의 독서 취향은 점점 좁아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내가 독립서점을 방문하기 시작한 이유이다. 이처럼 느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지 많은 이가 독립서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독립서점의 숫자 또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구글 동네 책방 지도에 등록된 서점은 160개 정도이다. 등록되지 않은 곳과 생겨나고 있는 곳을 포함하면 조만간 그 숫자는 200여 개를 넘보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대에 늘어나는 서점이라니, 신기한 일이다.

책을 사는 게 아니라도 독립서점을 즐길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어떤 독립서점에서는 맥주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고, 또 어떤 독립서점에서는 책을 만드는 강좌를 열기도 한다. 서점이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닌 문화 살롱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북극서점은 2017년 초에 문을 열었다. 5평 남짓한 공간은 독립출판물과 시집,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고 서적, 빈티지 옷, 그림과 소품으로 가득 차 있다. 소품은 서점 주인이 여기저기 여행하며 벼룩시장에서 구입해 온 것이다. 책을 둘러보다가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발견하여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 계산을 하며 내 궁금증도 해결해본다.


"너무 궁금해서 그런데요. 여기 이름이 왜 북극 서점이에요?"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요. 마음이 북극처럼 아무것도 없고, 춥게 느껴질 때요.

그럴 때 작은 모닥불이 되어 줄 수 있는 게 책과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북극에서 만난 작은 따뜻함 같은, 그런 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에요."


하얀 눈으로 뒤덮인 북극에서 모닥불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건 어쩐지, 아주 마음에 드는 풍경이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범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