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책이 되기까지

을지로 인쇄 골목

이지현|

인쇄는 책, 달력, 비닐 백 등 일상 속 다양한 물건에 활용된다. 하나의 인쇄물은 여러 업체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책 한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면 인쇄 골목의 구성원들이 보인다.



종이가 가득 쌓인 지업사


STEP 1. 지업사

언제나 많은 물량의 종이가 건물의 높은 벽까지 빽빽이 쌓인 지업사는 인쇄에 필요한 다양한 종이를 인쇄소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제지회사에서 종이를 받아와 거래처로 배달하는데, 업체 규모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중소 업체의 경우 대략 100여 개 업체와 거래한다. 모든 지업사는 숙련된 재단사와 재단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거래처가 원하는 종이 규격에 맞게 재단해 배달한다. 일반적으로 인쇄소에서는 하루 전 필요한 종이를 주문하고, 매일 필요한 종이를 받는다. 하지만 하루 동안 필요한 종이가 수시로 생기므로 이후에도 지업사와 인쇄소 간 몇십 번의 연락이 오가는 게 일반적이다. 적어도 1명의 배달 기사가 지업사에 소속되어 배달 업무를 도맡으며(규모가 큰 곳은 2~3명이 소속되어 있다), 그 외에도 용달과 퀵서비스처럼 소속 없이 움직이는 100명 이상의 운송 인력이 종이를 골목 곳곳으로 옮긴다. 일반적으로 1톤 이상은 지게차, 1톤 이하는 삼발이로 배달하는 등 종이의 물량에 따라 사용하는 운송 수단이 다르다.




대국전 인쇄기와 잉크를 보충하는 조수의 모습


STEP 2. 인쇄소

디자인된 작업물을 인쇄하는 곳이다. 인쇄소에 따라 기획과 디자인, 인쇄 인력까지 모두 갖춰 기획부터 도맡아 하는 경우와 인쇄 작업만 전담하는 경우로 나뉜다. 의뢰가 들어오면 종이를 발주하고, CTP(Computer To Plate) 출력 작업을 거쳐 인쇄할 내용대로 알루미늄 재질의 인쇄판을 만든다.(옵셋 인쇄 기준) 청·적·황·먹(CMYK)에 해당하는 4개의 인쇄판을 기계에 걸고 해당 잉크를 각각 채워 넣으면 인쇄 준비가 끝난다.(4도 인쇄 기준) 이때 인쇄기 한 대마다 기장과 조수가 각각 필요하다. 조수는 종이를 끊임없이 기계에 공급하고 잉크 상태를 체크하며, 한 판이 끝나면 다음 인쇄물에 묻어나오지 않도록 기계마다 부착된 잉크 롤러를 닦는다. 총감독자인 기장은 인쇄 중인 종이를 중간중간 한 장씩 뽑아 인쇄 상태를 확인한다. 이때 예민한 눈썰미로 원하는 농도와 색감의 미묘한 부분까지 조절한다. 인쇄물은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후가공 업체에 보낸다. 인쇄소 대부분이 일주일 단위로 주야 2교대 업무를 하기 때문에 인쇄소 기계는 24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다양한 후가공

인현동을 필두로 한 을지로 인쇄 골목의 강점은 다양한 기술을 보유한 후가공 업체가 한데 모여 있다는 점이다. 2교대 방식으로 24시간 돌아가는 인쇄소와 달리 후가공 업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건식 라미네이팅 작업 모습


건식 코팅기



STEP 3. 코팅 전문 업체

인쇄가 완료된 종이는 코팅 전문 업체로 넘겨진다. 코팅을 거치면 종이의 내구성과 내습성이 강화되고 잉크의 변색이 방지되며 인쇄물의 발색이 돋보이는 효과가 있다. 또한 인쇄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질감 표현이 가능하고 용지의 두께감을 높일 수 있다. 주로 표지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코팅한다. 우선 필름 원단을 기계에 걸고, 필름 뒤쪽에 접착제를 바른 후 흡착이 잘되도록 건조시킨다. 그다음 필름과 종이가 100℃가 넘는 열롤러 사이를 통과하며 열과 압력이 가해지면 코팅이 되는데, 이를 ‘건식 라미네이팅’이라 한다. 이전에는 압력만으로 코팅하는 ‘습식 라미네이팅’이 주로 쓰였으나 작업 시간이 가장 길다. 최근 도입된 ‘열 라미네이팅’ 방식은 별도의 접착제나 압력 없이 고온으로만 코팅한다. 기포가 생기지 않고 품질이 좋으며 건조 시간이 필요없어 신속하게 많은 물량을 뽑아낼 수 있다. 표면의 광택 유무에 따라 ‘유광’, ‘무광’으로 나뉜다. 전자가 인쇄물의 색감을 선명하게 한다면 후자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다양한 코팅 과정 이후 필요에 따라 제본, 접지, 도무송 작업을 진행한다.




실린더 금박기


STEP 4. 박, 형압 전문 업체(금박집)

박이란 금, 은, 동 같은 다양한 색박을 열과 압력으로 종이에 부착하는 후가공이다. 별도의 색박 없이 동판의 모양대로 입체적인 효과를 주는 것은 ‘형압’이다. 색 원단 유무의 차이일 뿐, 가공 방식은 동일하다. 대개 표지나 책등에 디자인을 가미할 때 사용한다. 인쇄소에서 박 디자인이 인쇄된 필름을 금박집에 건네면 동판집에 제작을 의뢰하고, 인쇄가 진행되는 동안 필름 디자인대로 동판이 만들어진다. 박 기계에 원하는 색 원단을 걸고, 만들어진 동판을 프레스 상단에 부착한 후 압력을 가하면 열판의 열과 압력에 의해 동판 모양대로 박이 찍혀 나온다. 색 원단의 앞면은 비닐이고 뒷면은 점막이라 열을 가해 누르면 점막이 종이에 밀착되는 원리다. 종이가 두껍거나 물량이 적을 때는 프레스 금박기를 이용해 수동으로 찍어내야 한다. 하지만 많은 물량을 뽑아낼 때는 자동으로 금박을 찍어낼 수 있는 커다란 실린더 금박기를 사용한다. 보통 실린더 금박기와 도무송 기계는 오래된 인쇄기를 개조해서 만든다.




제본을 위해 접지 과정을 거치는 모습


STEP 5. 제본소

제본은 인쇄물을 순서대로 접고 한데 엮어 책 형태로 완성하는 마무리 단계다. 이 과정을 ‘제책’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본이라는 말이 더 널리 쓰이는 이유는 책뿐 아니라 카탈로그, 리플렛 등 책 외의 다양한 인쇄물을 다루기 때문이다. 우선 가제본을 만들어 틀린 부분이나 빠진 페이지가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그다음 인쇄물을 재단하고, 접지 공정 후 정합기에 추려 넣어 페이지 순서를 맞춘다. 순서대로 모은 종이의 책등 부분을 2mm 정도 갈아낸 후 본드를 묻혀 고정한다. 이러한 제본 방식을 ‘무선 제본’이라 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중철기로 종이 정중앙에 철심을 박아 고정하는 방법은 ‘중철 제본’이라 부르는데, 얇은 카탈로그 제작 시 주로 사용하며 무선 제본보다 저렴하다. 고급스러운 제본의 대표 격인 ‘양장 제본’은 책등을 실로 꿰매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연결하는 방식이다. 제작 단가가 높아 최근 을지로에서 양장 제본이 가능한 업체는 손에 꼽힌다. 제본이 완료된 인쇄물은 재단을 거쳐 ‘책’으로 완성된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을지로》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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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