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남아 있는 오래된 기억

위대한 유산

양혜은|

매끈한 외관을 자랑하는 빌딩 사이로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낡은 건물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서로 다른 시대의 건물들이 붙어 있는 모습은 을지로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일제강점기, ‘황금정’이라 불리던 을지로는 대형 은행과 기업이 들어와 거대 상업지구를 이룬 번화가였다. 시대를 풍미했던 중심 거리로서 이곳에는 지금도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건물들이 오롯이 남아 있다. 을지로와 남대문로가 교차했던 핫플레이스, 을지로1가를 중심으로 무심코 지나쳤을 위대한 유산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광통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은행 건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광통관 앞입니다. 근처에 청계천 다리 중 하나인 광통교가 있어 붙인 이름이에요. 1909년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은행 건물입니다. 붉은 벽돌로 꾸민 외관과 기둥 형태가 서구식 건축을 표방하고 있죠. 현재는 우리은행 종로지점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렇게 최초 용도가 유지되는 근대 건축물은 매우 드뭅니다. 광통관은 현대 건축물에서 찾기 힘든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한번 구석구석 자세히 들여다볼게요. 먼저 서양식 기둥이 눈에 띄죠? 보통 기둥은 한 층에 하나씩 들어서는데, 여기서는 두 층을 관통하고 있어요. 바로크 시대에는 모범적인 규칙을 깨뜨리는 큰 기둥 양식이 나타나요. 광통관에 세운 기둥은 크기가 작아 귀여운, 네오바로크 양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이 외에도 메달 모양을 닮은 타원형의 메달리온 장식, 아치형의 창, 지붕 위 돔도 바로크풍의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붉은 색감과 서구식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광통관은 건축적 의미 말고도 ‘민족 자본은행’ 본점으로 사용된 역사적 의의까지 지녔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자국의 은행을 내세워 경제 침략을 본격화했고, 광통관은 우리나라의 지배층과 실업가들이 힘을 모아 만든 ‘대한천일은행’의 본점으로 사용되었어요. 원래 탁지부(조선 말기에 국가 재정 전반을 담당한 중앙 관청)는 금융 관련 집회소로 쓰기 위해 광통관을 만들었는데, 1층은 대한천일은행에 사옥을 대여해주고 2층에는 집회실, 흡연실을 마련해 본래 기능을 하게 했어요. 경제 중심지였던 남대문로 거리에 우리나라 은행 점포로서 자랑스럽게 첫발을 내딛은 장소입니다.




남대문로 한국전력공사 사옥

경성 거리의 불을 밝히다


주변 건물들과 달리 네모반듯한 이 근대식 건물은 ‘남대문로 한국전력공사 사옥’입니다. 1928 년에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옥으로 세워졌는데, 근대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줘 등록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어요. 당시 철근 콘크리트가 굉장히 비싼 재료였기 때문에 이곳이 돈이 많은 회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지금은 투박하게 보이지만, 당대에는 튼튼한 설계 구조 덕에 획기적인 건물로 꼽혔어요.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내진, 내화 설계가 적용되었고요. 전기 회사임을 자랑하는 580개의 전등과 과거 흔하지 않았던 엘리베이터 2대가 설치되었답니다. 원래는 지상 5층 건물이었지만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3곳의 전기 회사를 통합하면서 2개 층을 더 증축했고 현재는 한국전력공사의 서울지역본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경성 거리를 환하게 밝혀준 근대식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에요. 또한 외관을 살펴보면 독특한 건축 양식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건물 구조는 모더니즘 근대 건축 양식을 따른 반면 장식적인 요소는 르네상스풍으로 꾸몄어요. 평평한 지붕 형태와 기둥 윗부분을 지칭하는 주두에 여러 무늬가 장식되어 있고요. 하단부에는 ‘러스티케이션’이라고 면을 거칠게 다듬는 방식으로 마감 처리를 하고 상단부는 타일로 외관을 꾸몄습니다. 곳곳에 신경 쓴 부분이 보이죠? 그럼 다음 장소로 가볼까요?




구 미국 문화원(그레뱅 뮤지엄)

박제된 시간 속 밀랍인형박물관


그레뱅 뮤지엄에 도착했네요. 관광객들이 계속 들어가고 있는 이 건물은 밀랍인형박물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동안 미국 문화원으로 쓰였어요. 1938년에 지은 오래된 건물에서 밀랍인형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네요. 일제강점기, 조선에 들어왔던 일본 재벌 기업 미쓰이 물산의 경성지점으로 지은 근대식 건물로 광복 이후 미국 행정부의 소유가 되어 1990년까지 미국 문화원으로 사용되었죠.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철근 콘크리트로 이뤄졌는데, 겉보기에는 단순하고 장식이 없어 심심해 보이기도 해요. 고딕이나 르네상스와 같은 고전적인 건축 양식이 아닌 합리적인 건물의 기능에 중점을 둔 모더니즘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입구에는 각진 프레임이 돌출되어 현관을 강조하고 창 사이의 주름 장식, 타일로 외관을 장식한 형태가 건물의 주요 특징이에요. 건축 당시 7층까지 증축을 예상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죠. 1985년에는 미국 문화원이 뜨거운 감자가 된 사건이 있었어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해 대학생 73명이 72시간 동안 미국 문화원을 점거하고 농성을 전개했는데, 이는 1980년대 반미 운동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유네스코 회관

명동의 랜드마크, 힘든 길을 걸어오다


명동에 오니 무척 북적이네요. 지금부터는 현대 건축물을 살펴볼 거예요. 눈앞에 있는 건물은 ‘유네스코 회관’입니다. 1966년에 지은 건물로 명동의 랜드마크이자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뛰어난 디자인을 보여주는 건축가 배기형의 작품입니다. 한국 전쟁 이후,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는 세계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 문화 예술을 보급시키려고 애썼어요. 그 과정에서 유네스코 회관은 1959년 기공식을 했으나 재정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참 어려운 길을 걸어왔어요. 완성된 건축물 안에는 극장, 유네스코 본부, 백화점 등이 들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였고 이곳의 스카이 라운지를 다녀온 일은 큰 자랑거리가 되었죠. 유네스코 회관은 무엇보다 건축물 자체의 아름다움이 볼거리예요. 지상 13층 규모의 고층 건물로 곡선형 모서리나 외벽 전체를 유리로 감싸는 커튼월 방식이 도입된, 당시로는 획기적인 건물이었습니다. 현재는 유네스코 사무실과 다른 상업 시설이 함께 들어서 있습니다. 2010년에는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60주년을 맞아 건물 앞으로 유네스코길이 만들어지기도 했죠. 쇼핑을 하느라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명동 거리에 이렇게 빼어난 건축물이 남아 있으니 꼭 둘러보시길 바랄게요.



본 내용은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안창모 교수님의 자문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참고 자료

이현정(2007), 1960년대 서울 도심건축물의 가치와 보존요소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
tbs 영상기록 <서울, 시간을 품다> 홈페이지.
이완건(2009), 근대건축 보존 그리고 역사도시 서울, 한국학술정보.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을지로》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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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양혜은

heyang@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