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붙이가 갈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뒤이어 쇠 냄새가 코에 닿는다. 대장간 한쪽에서 전종렬 한밭대장간 대표가 얼굴 절반을 마스크로 가린 채 칼 한 자루를 정밀 연마 중이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대장장이인 전 대표는 45년 경력을 지닌 아버지 전만배 사장의 뒤를 이어 5년째 노량진에서 한밭대장간을 운영 중이다. 칼을 갈던 숫돌을 멈추자 숫돌에 남아있던 열기가 하얀 김이 되어 이내 공중으로 흩어진다.
처음에는 온라인판매만 담당하시다가 갑작스럽게 일손이 필요해서 3주 배우고 바로 실전에 투입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 무대뽀로 배웠죠. 한 달 정도 아버지께 속성으로 배우고 나머지는 다 직접 몸으로 체득했어요. 천재라서. 하하!
하루 일과는 대략 어떻게 흘러가나요?
출근하면 오전 3시 반 정도거든요. 손님이 오시면 칼을 갈아드리고 전날 밀린 칼 작업이나 온라인 판매를 새벽에 다 끝내요. 그렇게 5시 반까지 하다가 6시에 밥을 먹고, 밥 먹으면 졸리니까 한 시간 정도 자고요. 자다가도 작업이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서 칼을 갈아드리고 바로 또 자고 그러죠. 예전 자리는 옆에 창고가 있었는데 지금은 창고가 따로 없으니까 차에서 자요. (*현재 한밭대장간은 신 노량진수산시장 3층 주차장에 있다)
그러다가 11시 반이나 12시부터 본격적으로 한꺼번에 칼 갈아 달라는 주문이 열댓 개씩 들어와요. 저희 가게 손님 대부분이 외부 셰프들이고, 칼을 구매하려는 요리 분야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요. 3시쯤에 또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편인데,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생기지 않으려면 칼같이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라고 끊을 수밖에 없어요. 퇴근 후에 작업을 마친 칼을 배송하는 일까지 끝내고 저녁 먹고 7시 반에 자요. 일의 패턴상 술도 다 끊었어요. 저녁에 퇴근하고 혼자 맥주 한 캔 하는 정도? 하지만 꼭 먹어야 하는 날일 때는 아예 날 잡고 마시죠.
좋은 칼을 써야 좋은 재료가 상하지 않고 제대로 손질이 된다고 하던데, 칼의 가치를 정말 아는 분들이 이곳에 찾아오는 셈이네요.
칼을 잘 가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곳에 찾아와서 맡기시는 분들도 있어요. 대부분 만족하고 가시죠. 직접 써보면 다른 곳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와는 질이 다르다는 걸 아니까요. 아버지께서는 워낙 오래 하셨기 때문에 원하는 부분을 툭 던지면 알았다 하시고 바로 완성하세요. 저 같은 경우는 작업 전에 우선 칼날 라인이나 여러 부분에 대해서 대화를 해요. 손님이 원하는 점을 포착하여 초벌 작업에 들어가고 한 번 보여드린 후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마무리하죠.
종종 자부심이 강한 분들은 자기 기준에 충족이 안 되면 칼이 잘 갈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그런 분들을 달래는 게 아니라 그냥 싸워요. 맞는 말을 해주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당신은 나랑 안 맞으니까 내가 갈아준 대로 쓰든지 아니면 당신이 직접 갈아 쓰든지, 나는 상관없다”고 말해요. 칼에 대해서만큼은 지금까지 아버지께 배우고 직접 갈아오며 터득한 게 정석이죠. 그 사람들은 요리 전문가고, 칼 전문가는 저니까요. 그들의 요리 경력이 십 년, 이십 년 되었다 해도 그들은 칼을 쓰는 사람이고 저는 여기서 칼 수백 개를 직접 보고, 만지고, 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칼을 보면 그 사람이 칼을 어떻게 쓰는지 다 알아봐요.
칼 쓰는 방식에 따라 주인의 성격이나 습관 같은 게 다 드러나는 건가요?
그렇죠. 그래서 자주 오시는 분들은 굳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칼만 보고도 누구인지 알아요. 마구잡이로 쓰는 사람은 일도 바쁜데 공들여서 갈 시간이 어디 있나, 날만 대충 든다 싶으면 막 써요. 하지만 칼을 잘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칼을 아껴서 갈아 쓰겠다는 마음이 보일 정도예요. 그러나 아껴 쓴다 해도 결국 칼은 조금씩 닳는 법이라 한계점까지 본인이 조심조심 갈아 쓰다가 저한테 오는 거죠. 저는 칼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고 길을 잘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나머지는 본인 몫이고요. 자신의 손에 맞게 칼을 직접 갈아 쓰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고 칼 팔 때마다 학생들에게 늘 말해줘요.
2016년 2월 말에 새롭게 지어진 건물로 가게를 옮기셨어요. 바뀐 게 있을까요?
건물만 신식으로 바뀌었지 달라진 것은 그다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전에는 건물 1층에 있어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쉬웠는데,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난 이후 처음에는 손님들이 헤매는 것 같더라고요. “3층 주차장 A19 번 기둥 앞이요”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찾아오는데, 할머니들은 “A가 뭐여? 나는 그런 거 몰러~” 이러시면서 못 찾겠다고 계속 전화하세요.
원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부친이신 전만배 사장님께서도 대표님과 함께 노량진에서 작업하시다가 대전 공장은 나머지 요일에 내려가셔서 운영하셨잖아요. 요즘 전 사장님께서 대전에만 계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께서 무형문화재를 등재를 준비하고 계세요. 대장간에 관한 지역 인간문화재를 거쳐 국가가 지정하는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되면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활용하여 다양한 칼을 개발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요. 그 과정에서 한밭대장간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일종의 책을 만들어야 돼요. 아버지는 대장간 일을 열네 살 때부터 하셨는데 찾아보니 열네 살에 대장간에서 일하시던 사진이 딱 한 장이 남아있더래요.
예전에 독일의 요리 평가사가 아버지를 스카우트하는 조건으로 연 13억을 제시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나를 데려가려면 계약금 12억에 연 13억을 제시해라”라고 하셨대요. 지금은 술 드시다가 농담처럼 ‘그때 갈걸’ 하시지만, 그만큼 아버지께서는 본인께서 지닌 기술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신 거죠. 20년쯤 전에 아버지께서는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차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셨어요. 시장 동향도 파악하고 거래처도 뚫을 겸 전국 각지마다 다른 모양을 지닌 칼을 수집하러 다니셨죠. 아버지 성격 자체가 기왕 할 거면 최고가 되자, 그런 마음을 지니고 계세요.
" 세상에 다용도 칼은 없다! "
- 전 대표의 말에 따르면, 칼은 용도별로 저마다 다르므로 수많은 종류의 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칼은 그 종류에 따라 저마다 가는 방식 또한 다르다. 그동안 우리가 칼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전만배 사장님은 대장장이 경력이 올해로 45년 차, 전종렬 대표님은 5년 차시죠.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지금 대표님까지 4대째 운영 중이신데, 절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자부심도 있으실 것 같아요.
당연히 자부심이 있죠. 이 일은 너무 힘들어서 자부심이 없으면 못 해요. 남들보다 두세 배 힘들고 남들보다 두세 배 버는데, 단기적으로 돈만 보고 이 일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다 돌려보냈어요. 적어도 10년은 열심히 투자해서 이 일을 제대로 배울 분이 아니면 안 돼요. 그렇게 거쳐 간 100명 중에서 유일하게 뽑히신 게 지금 제 옆에서 일하고 계시는 저희 직원 아저씨예요. 지금 2년 정도 배우셨죠.
처음 증조할아버지께서 대장간을 시작했을 때는 농기구 등 잡다한 도구를 만들다가 아버지 대에서 칼만 다루는 것으로 정착되었다고 해요. 따로 독립한 아버지께서 대전에서 가게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한밭대장간이라는 이름을 썼고요. (*대전의 옛 지명이 한밭이다) 노량진에서 칼을 간 지는 10년 정도 되었고, 우리 가족의 본래 뿌리는 대전이에요.
전 대표님이 운영하는 노량진의 한밭대장간과 전 사장님이 운영하는 대전의 한밭대장간은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이곳은 칼을 가는 정밀 연마 과정만 맡고 있어요. 대전의 한밭대장간은 공장으로, 주요 목적은 칼을 만들고 연구•개발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고요. 저희 가게는 철저하게 기술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대체인력이 없어서 저와 아버지가 각자 맡은 셈이죠.
그러면 한 자루의 칼을 연마하거나 제작하는 작업은 보통 얼마 정도 시간이 걸리나요?
제가 맡는 정밀 연마 과정은 한 자루당 5분 내외에는 나와야 해요. 칼의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오분 정도 더 작업하고요. 하루에 많이 갈면 200개? 적어도 평균 100개는 가는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는 불 피워져 있고 가서 뚝딱뚝딱 만들 여건만 되어 있다면 한 시간 내에 한 자루를 만드세요. 예전에 기술자가 한 분 더 계셨을 때는 두 분이 하루에 1,000개까지도 뽑으셨대요. 요즘에는 다른 곳에 납품할 필요가 없고 우리가 팔 것만 조금씩 만들면 돼서 300~500개 정도를 만드시는 것 같아요.
대표님이 이 일을 시작하신 지 5년이 되어가지만 그래도 혹시 칼을 다룰 때 무섭지는 않으세요?
옛날부터 보고 자란 게 칼이니까 무섭지는 않아요. 남들이 구슬치기 같은 거 하고 놀 때 저는 심심하면 아버지 공장 가서 버려진 칼 던지고 놀고 그랬거든요. 집에 가면 어머니께서 항상 칼자루 박고 계시고. 옛날에는 아버지께서 칼을 만드시면 칼자루는 어머니께서 다 박으셨어요. 뚝-딱-빡! 하면 칼자루 하나 박는 게 끝났죠. (웃음)
아직 스물아홉 젊은 나이잖아요. 앞으로 대표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가능하면 해외로 나가고 싶어요. 외국에서는 손을 쓰는 기술자들을 존중하고 우대해주죠. 기술자를 귀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는데 국내 인식은 여전히 막노동이라는 편견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해외로 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원천기술인 칼을 만드는 기술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본인만의 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여전히 유효하신가요?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한칼’ 자체가 많이 알려져 있거든요. 이 좋은 칼을 제 것으로 흡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내면 좋을 것 같아요.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요. 아버지 세대의 한칼을 제 세대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더욱 체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게 지금의 목표인 것 같습니다.
내부에는 대전 한밭대장간에서 연마과정까지 끝내고 사용자의 용도에 맞춰 정밀 연마를 거칠 일만 남은 무쇠 칼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칼날 위에 박힌 ‘용’ 각인은 한밭대장간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손수 칼을 만들고 연마하는 대장장이가 사라지는 추세 속에서도 대장장이 부자의 삶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하고 더욱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