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탈 때까지만 해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하 도로에 접어들 무렵,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만 배다리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모처럼 나선 일요일 나들이였는데 비라니! 허탈함에 다시 지하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배다리 마을 입구를 기웃거렸다.
" 잠깐 들어오세요. 비 오는데. "
앞에 있던 책방의 문이 불쑥 열렸다. 상냥한 목소리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자 책방 주인장은 내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었다. 주인은 자신을 ‘청산(청산별곡)’이라 소개했다. 그럼 대체 책방 이름인 달이는 누구일까.
" 달이는 배다리의 다리를 뜻하기도 하고요, 여기에 있는 고양이들 이름이 달하고 관련이 있기도 해요. "
책방 책장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편히 누워있는 고양이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생활문화공간 달이네가 들어선 공간은 예전 조흥상회 건물이다.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과 도원역 사이, 경인선 철길 아래에 있던 조흥상회는 과거에 쌀과 제수용품 등을 팔던 곳이었다. 건물이 지어진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48년에 미군 노릅 파이어(Norb-Faye)가 촬영한 사진이 남아 있다.
건물은 평생사변형 형태로 그 구조가 독특하다. 도로를 향해 정면으로 창을 낸 가게는 평범해 보이지만, 가게 안쪽으로 연결된 좁은 복도로 들어서면 안쪽에 비밀스레 숨겨진 정원과 방이 불쑥 튀어나온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이 층으로 향하고 있노라면, 마치 비밀 요새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때 인천의 번화가였던 동구는 80년대 이후 신도시 개발전략에 밀려 점차 상업 중심지에서 밀려났고, 조흥상회 또한 문을 닫았다. 방치되어 있던 건물에 ‘달이네’가 문을 연 것은 2012년이었다.
달이네 1층은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되고 있는 손님맞이 방, 나비날다 책방,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비가 새는 문제가 생겨 현재는 주인과 지인들이 머무는 공간 정도로 활용하고 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역시 나비날다 책방이다. 배다리 안내소를 겸하고 있는 이 책방에서는 인천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도서, 손으로 그린 엽서, 배다리 지도 등을 살 수 있다. 책방을 찾아갔는데 가게를 지키는 사람이 없더라도 당황해서는 안 된다. 책방 문은 활짝 열려 있는데 고롱고롱 자는 고양이 한 마리만이 공간을 지키고 있다면? 바로 옆 가죽 공방에서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웃으며 알려주었다.
" 원래 그래요. 커피 마시면 그냥 계산하고 가면 되고. "
그러니깐 말 그대로 달이네는 사랑채 같은 공간이다. 지나가는 손님을 불러 세우고, 때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그런 공간 말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지역 기반 예술 공동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해체되었던 마을 공동체의 필요성이 뒤늦게 조명받기 시작하면서, 그 대안 중 하나로 지역과 문화 예술 공동체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예술은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
달이네 또한 이를 잘 알고 있는지, 공간 2층을 생활사 전시관으로 꾸며두었다. 50년대 배다리의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는 당시 배다리를 촬영한 사진과 사용되었던 물건들이 방마다 다소곳하게 놓여 있다. 옛 건물 안에 예전 물건들이 그대로 들어차 있는 방 안에 들어선 순간, 그 시대 안으로 걸어 들어간 것만 같다.
‘달이네’는 책방이자 게스트하우스이고, 배다리 안내소이자 생활사 전시관이다. 때로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영화 모임과 우쿨렐레 수업 등 프로그램 내용도 다양하다. 때로는 마을 사람들이 도시락을 싸 들고 와서는 나누어 먹는 모임도 열린다.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는 건 달이네를 찾는 모든 사람이며, 덕분에 이곳에서는 언제나 마을과 이웃, 사람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