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시장,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다

숭의평화시장

범유진|


전통시장, 재래시장의 전형적인 외관은 바로 아케이드다. 천장을 덮은 기다란 아케이드를 따라 가게들이 쭉 늘어선 모습 말이다. 그러나 숭의평화시장은 조금 다르다. 익숙한 아케이드가 아닌 주상복합건물이 손님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성문을 연상케 하는 같은 입구를 지나야 비로소 시장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건물 1층에는 가게들이 영업 중이지만, 2층과 3층은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거 공간이다.



숭의평화시장은 1970년대 초, 상가 건물을 중심으로 좌판이 퍼져 나가며 형성된 재래시장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외형이 지금까지 이어져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재래시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시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100여 개의 점포가 성업하고 시장 안마당에는 좌판이 가득 차 있던 활기찬 시장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제 활동 중심지가 연수구, 남동구, 송도 등 신도시로 옮겨가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도로와 맞닿아 있는 길가에 위치한 가게 몇 군데만 문을 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숭의평화시장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13년, 숭의평화시장은 ‘숭의평화시장 창작공간 조성 및 운영사업’에 선정되었고 그 결과 2015년에는 숭의평화시장 창작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작가들이 숭의평화시장에 자리 잡게 되었다.

활기를 잃었던 작은 광장인 ‘중정’도 새롭게 꾸며졌다. 광장으로 들어서는 입구 쪽 벽에는 그래피티가 그려졌고, 작은 화분도 앙증맞은 모습으로 방문객을 반긴다. 광장 안쪽의 건물 외벽은 다양한 색으로 칠해졌다. 광장 가운데에는 무대가 설치되었고, 곳곳에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도 배치되었다.



창작공간에 입주한 작가들은 도예 공방, 꽃차 카페, 갤러리 카페,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담근 술)를 연구하는 문화 단체, 작은 술집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시장을 기반으로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는 플리마켓을 열고, 문화가 있는 날에는 ‘숭의평화시장 대모험’이라는 주제로 공연과 아트마켓을 선보인다. 지난여름 밤에는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음악회가 열렸고, 어린이 건축 교실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강좌도 개최하고 있다. 이는 창작 공간의 활동을 기반으로 지역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내가 처음 숭의평화시장을 찾은 건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곱게 물들인 천들이 바람에 너울거리고 있는 사진. 아름답고도 정감이 가는 그 장소가 궁금해져 한참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일요일에 갔더니 상가 대부분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내가 가고자 했던 염색공방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기웃거리다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한 번 헛걸음한 곳을 두 번 찾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다시 숭의평화시장을 찾았던 건, 처음 방문했을 때 마주했던 상인들의 친절함 때문이다. 허탕을 치고 뒤돌아서는 그때, 옆 공방에서 나온 주인장께서 내게 말을 걸었다.


" 공방이다 보니 일요일에는 쉬는 때가 많아서. 잠깐만 기다려요. 이거 한 장 가지고 가세요. "


공방장님은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는 전단 한 장을 가지고 나오셨다. 종이에는 그 주에 시장에서 열릴 예정인 프리마켓 정보가 적혀 있었다. 공방장님은 시장 내에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도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손님이 아닌데도 친절하게 신경 써주는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프리마켓을 찾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프리마켓 현장, 가게 앞에 자리 잡은 임시 가판대에는 다양한 생필품, 먹거리들이 놓여 있다. 각 공방에서 선보이는 앙증맞은 도예품도 눈에 띈다. 작은 광장을 둘러보는 내내 음악과 웃음소리에 행복해진다.



인천의 신도심과 구도심 사이 균형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구도심의 마을 공동화 현상은 이러한 균형 발전의 일부로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인천 구도심의 마을과 시장은 유독 역사가 깊은 곳이 많다. 그러한 장소들이 특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더욱 진보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범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