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의 과거와 현재, 앞으로 나아갈 미래

Close-up, 을지로

이지현|

한때 제조업의 중심지이자 활발한 상업지역이었던 을지로는 서울의 경제·공간 구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위태롭게 놓여 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서 지금의 서울을 만들어온 권력, 자본, 제도, 욕망을 짚어낸 임동근 교수를 만나 이 지역의 과거와 현재, 앞으로 나아갈 미래에 관해 물었다.



임동근 교수 (서울대 지리학과) ⓒ 서울문화재단 제공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보이는 을지로에 젊은 층이 매력을 느끼고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조업이 쇠락하기 시작하고 도심의 미화 운동이 이루어지면서 낡은 모습의 건물들과 비어 있는 사무실 등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 빈자리를 젊은 예술가들이 메웠다. 동네 자체가 처음 들어가기는 힘들어도 한번 들어가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잠시 저평가되어 있지만, 이곳은 서울의 ‘진짜 중심’이다. 교통 환경과 기반시설이 풍부하게 깔려 있기 때문에 사람이 모이는 게 당연하다. 조건이 워낙 좋으니 곧 뜰 거다. 재개발이 멈춘 상황일 뿐, 그 흐름은 계속 밀려들고 있다.


젊은 층이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곳은 오래된 빌딩의 낡은 공간뿐이다.

낡은 고층이 아니더라도 저렴한 공간이 있다면 어디든 들어갈 거다. 공간을 점거하는 건 언제나 젊은이들의 꿈이었지만,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이전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취직을 했다. 하지만 취직이 힘들어지면서 공간을 임대해 사업체를 직접 차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본인이 알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환경으로 내몰린 점에서는 안타깝지만, 과거보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상황이 그렇게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


핫플레이스가 들어설 만한 공간이 낡은 빌딩의 고층 자리에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5~6층의 낡은 고층은 이곳이 활발했던 당시 제조업자의 서비스 업종인 회계사나 전당포 등이 몰려 있던 자리다. 과거에는 하나의 제조업에도 여러 업종이 달라붙어야 했는데, 지금은 많은 일을 인터넷으로 해결하고, 대부분 작업이 기계화되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살아남긴 했지만 쇠락해가는 제조업과 함께 관련 생태계도 변하는 거다. 게다가 이 일대 건물주들은 보통 건물 10채, 20채를 가지고 있는 부자다. 건물을 비워놓는다는 것은 엄청난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타격이 없다. 재개발을 안 해도 먹고살기에는 충분하니 별로 관심이 없다. 청계천 일대가 재개발이 안 되었던 것도 대부분 이러한 이유다.


‘뜨는 동네’의 수순을 밟고 있는 을지로에서는 유독 새로운 외부인의 진입을 불편해하는 태도가 강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연남동이나 연희동, 상수동은 커피나 물을 파는 서비스업에 가깝다. 이런 경우 SNS에 올리든 뭐를 하든 간에 고객이 와야만 한다. 하지만 이곳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젊은 친구들의 아지트다. 내 물건이 좋으면 그만인 거지 굳이 이곳으로 외부인을 불러 모을 필요가 없다. 10년 전만 해도 을지로나 청계천 뒤쪽으로 한 달 임대료가 20만~25만 원인 작업실이 많았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했을 거다.


서울시는 최근 장교12지구를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이곳의 젊은이들과 도시재생사업을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 서울시 행정 사이의 괴리는 불가피한 건가? 

그 비싼 땅에서 지금의 임대료를 내고 지낼 수 있는 건 정말 잠깐일 거다. 을지로는 개발되고 있는 동대문과 광화문의 양쪽 틈에 끼어있다. 작은 펍이나 카페 등을 차리는 건 일시적인 활동이 될 거다. 이때 임대료가 올라 쫓겨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임대료 상한제와 같은 여러 제도적 보호가 작용한다 해도 개인의 영역에서 관행처럼 벌어지는 폐해가 많아 시나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강한 힘을 갖기는 힘들다. 특히 이 지역은 1960년대부터 공간을 점유한 전통적인 지주가 많아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울 거다.


앞으로 기대하는 을지로는 어떤 모습인가?

공공이 예술가의 활동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외에는 답이 거의 없을 거다. 아주 작은 곳이라도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데, 수혜는 후속 세대들이 받을 거다. 이때 이익은 개인화될 수 없다. 만약 나이가 들어도 쫓겨나지 않도록 요구한다면, 그들이 늙어가면서 계속 점유하는 공간에 젊은 친구들이 새로 들어올 수 없게 되는 큰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작은 제조업들이 나이 들어가면서도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시나 정부가 나서서 챙겨주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에, 이를 제도화하는 수밖에 없다. 젊은 층이 적은 임대료로 기반시설의 혜택 속에서 뭔가 해보려고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건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어렵지만 작은 과정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나가며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는 여전히 고민해야 할 문제다.



* 임동근 교수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학석사 학위 수료
프랑스 파리7대학 지리학 박사 학위 수료
공간연구집단 연구원
맵핑 및 모델링 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BK교수 겸임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