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YOUNG, FREAK 세 사람을 만나다 #1

사랑하기에 뜨겁다 - 홍석천

박혜주|

HOT, YOUNG, FREAK 세 사람을 만나다

하나의 동네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사람이다. 특히 이태원은 생각과 취향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든 곳이다. ‘마이’ 시리즈의 홍석천, 경리단길의 장진우, ‘음레코드’의 전우치까지. 이들은 어떻게 이태원에 정착해 이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을까?




홍석천이 이태원의 외식 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세계 음식 거리라 불리는 해밀톤 호텔 뒷골목의 성공은 곧 홍석천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영향이 컸다. 그런 그가 안주하지 않고 다시금 새로운 길에 눈을 돌렸다. 높은 임대료와 줄어든 유동인구 탓에 모두가 “경리단길은 죽었다”라며 자리를 떠날 때, 그는 이 길에 들어섰다. 손익만 따지자면 의아한 선택이지만, 그가 사업가이기 전에 이 동네의 오랜 주민이기에 이해가 된다. “어떻게 하면 이 길을 되살릴까”가 요즘 관심사라는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방법을 고민한다. 동네를 사랑하기에 그는 여전히 뜨겁다. 




처음 이태원에 온 계기가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중심을 짚은 거라고 들었다.

그렇다. 물론 집값이 저렴하기도 했다. 상경해서 누나의 신혼집에 살다가 대학 졸업 후 독립해서 나온 곳이 경리단길에 있는 반지하 방이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반지하에서 시작했고, 지금의 장진우 거리 초입 쪽으로 이사해서 몇 년 살았다. 이곳이 원래 내 생활권이었다. 그러다 ‘이태원을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해밀톤 호텔 뒷골목에 가게를 냈다.


당시 해밀톤 호텔 뒷골목은 어땠나?

음식점이라고 해봐야 삼겹살과 된장찌개 집 몇 개뿐이었다. 그곳에 나보다 반 발짝 정도 빠르게 외국 음식점을 낸 누나가 딱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더 방갈로 The Bungalow’를 운영했는데, 이태원에만 여섯 개의 가게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이 프랑스인이라 외국 문화를 더 빠르게 받아들였던 거 같다. 이곳에 크레페를 제일 먼저 가지고 들어온 사람도 그 누나다. 또 한 명은 독일 남자랑 결혼한 누나였는데, 그분이 차린 게 ‘개코스가든 Gecko’s Garden’이다. 지금은 ‘더 파운틴 The Fountain’으로 바뀌었다. 


왜 초기 세계 음식 상권을 형성한 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지 않고 이 일대에만 여러 개의 가게를 냈던 건가?

직접 관리하기가 편하다. 우리는 사업가라기보단 예술가에 가깝다. 우리가 차린 가게는 획일화된 프랜차이즈와는 거리가 멀다. 워낙 이태원에 외국인들이 자주 왕래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이국적인 문화를 먼저 접했고,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오고 싶어 했다. 또한 한국에 처음으로 그 국가의 음식과 문화를 소개한다는 자긍심이 강했다. 



브런치 및 디저트 전문점 마이스윗


허름했던 거리가 점차 바뀌는 걸 본 기분이 어떤가?

연예인이라 어린 나이에 해외로 나갈 기회가 많았는데,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풍경에 너무 놀랐다. 그곳에서 다양한 인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골목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했고, 서울에도 그런 골목을 만들고 싶었다. 해밀톤 호텔 뒷골목도 내 바람대로 독특한 콘셉트의 이국적인 바와 맛집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점차 골목에 활기가 도는 걸 보니 신났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대형 업체가 운영하는 클럽과 바가 골목을 점유했고, 이색적인 가게들은 이자카야나 소주 바로 바뀌었다. 과거에 이 골목을 함께 열심히 일군 사람들도 사라졌다. 특색을 잃고 변해가는 골목을 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 와중에 어느 순간부터 경리단길이 뜬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직접 둘러보니까 젊은 친구들이 재미있는 콘텐츠를 가지고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너무 귀엽고 대견했다. 그런데 그때 그 친구들도 다 떠나고 지금은 빈 가게투성이다. 그래서 최근 이 길을 다시 살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

일단 뜻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경리단길 프로젝트’라도 만들까 생각 중이다. ‘스트릿츄러스 Street Churros’부터 대성교회까지 좁은 골목에 조명을 달아 밤에도 산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그 밑에서 길거리 시장을 열어볼까 한다. 건물이 낮고 경사도 가파르지 않으며 경치까지 좋은 이런 길은 어디서도 보기 힘들다. 사실 한국에서 골목 상권이 뜬 첫 번째 사례가 이곳이다. 수제 맥주, 수제 버거, 피맥 등 활용 가능한 콘텐츠도 많다. 우선 구청의 제대로 된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이태원과 경리단길 상권이 쇠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차 문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밥을 먹다가도 일어나야 한다. 이곳은 주말에도 새벽 3시까지 주차 딱지를 끊는다. 반대로 한남동 상권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주차장과 발레파킹 시스템이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청은 도로 정비나 펜스 설치에 앞서 무엇이 지역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한다.


이태원에서 오래 거주하고 또 사업을 꾸려가면서 개인적으로 수많은 변화를 겪고 또 보았다. 앞으로 이곳에 일어날 변화는 무엇일까?

미군 부대가 오랫동안 이곳에 있다 보니 주민들은 딱히 동네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지 못했다. 다들 부대가 떠나면 오히려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침체되고 있는 상권도 공원이 들어서면 다시 활기를 띨 거다. 주차장 문제도 해결되고 사람도 몰리게 될 테니까. 그렇기에 앞으로 이 동네의 전망은 좋다. 문제는 공원이 언제 들어서느냐는 거다. 미군이 떠난다고 한 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연남동 경의선숲길이 그랬듯 공원 조성에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화사한 주황빛으로 이목을 사로잡는 마이첼시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이태원>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박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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