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YOUNG, FREAK 세 사람을 만나다 #3

언덕 위를 지키는 남자 - 전우치

박혜주|

HOT, YOUNG, FREAK 세 사람을 만나다

하나의 동네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사람이다. 특히 이태원은 생각과 취향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든 곳이다. ‘마이’ 시리즈의 홍석천, 경리단길의 장진우, ‘음레코드’의 전우치까지. 이들은 어떻게 이태원에 정착해 이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을까?



이슬람 성원을 지나 우사단로를 따라 걷는다. 쌀쌀한 날씨가 무색하게도 가파른 언덕길 탓에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다 보면 도깨비시장의 흔적 옆으로 레코드 가게 ‘음레코드’가 발길을 사로잡는다. 뒤이어 1980년대 오토매틱 필름카메라 가게이자 전시 공간인 ‘시티카메라’도 눈에 들어온다. 이 둘을 함께 운영하는 《엘로퀀스 Eloquence》 매거진의 편집장, 전우치를 만났다. 수많은 이가 가파른 언덕을 기꺼이 걸어 올라오게 만드는 그의 공간 프로젝트는 사실 자신의 동네를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이태원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합정 쪽에서 살다가 집을 옮기려고 장충동부터 경리단길, 후암동까지 다 뒤졌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공간은 딱 3,000만 원 정도가 모자랐다. 당시 한남동의 부동산에 갔는데 그곳 사장님이 전망 좋은 곳이 있다며 이곳 우사단로 꼭대기로 데려왔다. 그랬더니 360도 풀 뷰가 펼쳐지더라. 내가 언제 이런 곳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동안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만 살아온 터라 고민했다. 그래서 딱 1년만 살아보자고 마음먹고 정착했다. 그러다 동네 할머니들과 친해지고 같이 프로젝트도 하고, 공간도 열다 보니 어느덧 정착한 지 8년 정도가 됐다.


처음 들어왔을 때 이 동네는 어땠나?

대중적이기보다 이 동네만의 색깔이 짙었다. 특히 우사단로는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었다. 이곳엔 소수 계층이 많이 들어와 정착했다. 이슬람 혹은 아프리카계 외국인, 성소수자, 다문화가정, 독거노인, 유흥주점에 종사하던 이들이 모여 살았다. 그래서 당시 이곳에서는 상업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최근엔 저렴한 임대료와 1층 쇼룸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젊은 창작자가 많이 들어왔다. 서울의 골목 상권이 뜨면서 이곳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될 때 땅값이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현저히 싸다.


음레코드와 시티카메라도 젊은 창작자들과 같은 이유로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건가?

그건 아니다. 음레코드는 《엘로퀀스》의 전시 공간으로 우사단길이라는 이름이 생기기도 전에 자리 잡았다. 전시할 때 일시적으로 사용하고 평소엔 닫아놓았던 공간이다. 이곳을 기반으로 다른 기업과 작가, 건축가와 협업했고 동네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작년에 바이닐 펍으로 새롭게 꾸민 거다. 매거진이 음악, 건축, 미술, 아트, 디자인, 공간 등을 다양하게 다루다 보니 그동안의 활동과 이를 통해 축적된 콘텐츠들을 모을 수 있었다. 이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 공간이란 플랫폼을 통해 각각 구현했다. 음레코드는 음악, 시티카메라는 포토그라피, 디자인스쿨(을지로)은 그래픽 디자인, ‘랑빠스81 L'impasse 81’(연남동)은 푸드, 스테이크비디오는 영상을 다룬다. 공간을 운영하며 관련 분야 크리에이터들과 교류, 협업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친다.


그동안 많은 공간을 만들었다. 동네를 선정할 때 고민을 많이 하나?

사실 임대료가 저렴한 동네를 골랐다. 그러나 만들고자 하는 공간의 정체성을 고려하기도 한다. 예전엔 활동 기반을 이태원에서 을지로로 옮길까 하는 생각도 했다. 동네가 가진 콘텐츠가 워낙 많으니까. 시장부터 테크와 관련된 목조 거리, 철공소, 전기 거리, 충무로 영화, 인쇄 이런 게 다 있는 동네이지 않나.

그런데 우사단로가 뉴타운으로 묶이고 재개발이 된다, 안 된다는 말이 계속 도니 언제 내가 이런 과정을 목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담론을 형성하는 게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 남았다. 재개발 이야기뿐 아니라 이 동네가 가진 이야기, 역사, 기능이 있다. 이런 힘이 내가 만들고자 하는 공간에 더해지면 강력한 아이덴티티나 방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간을 기획할 때 동네와 동떨어지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음레코드의 LP 음반은 아날로그적인 동시에 트렌디하다


이태원은 ‘포용력이 높은 동네’라는 이미지와 반대로 직접 찾아와 보니 경계가 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동네와의 융합을 고민했기에 정착하는 데 수월했던 건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곳은 과거 소외되었던 계층이 모여서 만든 동네다. 일반인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모여 삶의 터전을 일궜다. 아마 이곳에서 밀려나면 갈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할 거다. 그래서 경계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나도 느꼈지만 운 좋게 그런 경계가 허물어질 때쯤 자리를 잡았다. 애초에 나는 상업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온 게 아니다. 어르신들 천막을 고쳐주거나 상인들을 인터뷰하는 등 비영리적인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그래서 주민들이 우호적이다. 음레코드는 가끔 시끄러울 때도 있는데 다 이해해주신다. 오히려 장사가 잘되는지 걱정하신다.


앞으로 이 공간들이 동네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기대하나?

요즘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도 모른다. 음레코드는 자리를 잘 잡았고 시티카메라도 작년 10월에 시작해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전망이 좋다. 그러나 아직 테스트 과정이다. 이 동네에서 이것저것 실험해보며 발전시킬 계획이다. 뉴타운으로 묶인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도 앞으로 어떨지 알 수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닌 사람이라 생각한다. 공간은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이태원>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박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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