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지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음료

무등산 브루어리

강필호|

2011년을 전후로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시작된 수제 맥주 열풍은 어느덧 전국 방방곡곡 뿌리를 내렸다. 천편일률적인 기존 맥주와 다른 매력적인 풍미에 젊은 세대는 열광했고,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수제 맥주는 로컬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이제 맥주를 좋아하는 이라면 로컬 브루어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2017년 영업을 시작한 무등산 브루어리는 국내 로컬 브루어리 중에선 후발 주자다. 그러나 광주・전남 지역의 산업적, 문화적 자산을 재치 있게 재해석해 흥미로운 맥주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무등산 브루어리의 윤현석 대표는 마주 앉은 자리에서 로컬 생산품인 수제 맥주의 가치를 힘주어 강조했다.




무등산 브루어리 윤현석 대표


무등산 브루어리 대표인 동시에 지역 문화 기획사 컬쳐네트워크 대표 이사도 겸하고 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서 로컬 비즈니스를 운영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태어나서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줄곧 광주에서 살았다. 학부에선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문화경영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지역개발학 박사 과정을 이수하며 지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석사 과정을 마친 직후 관련 공공 기관에 입사했는데, 역할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민하던 차에 퇴사 후 설립한 회사가 바로 (주)컬쳐네트워크다. 처음에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런칭하고, 이후 지식 공유 플랫폼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업 경험이 적어 수익 모델을 구체적으로 설계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무등산 브루어리를 만든 것인가.

플랫폼 운영의 한계를 절감할 무렵 생긴 가장 큰 고민은 “왜 무형적인 콘텐츠를 통해서만 지역 문화를 기획해야 하는가”였다. 가치 지향적인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용역 사업에 몰두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그동안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보다 직관적인 사업을 고안하고자 노력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제조업이었다. 제조업은 서비스업과 콘텐츠업에 비해 가시적인 결과물이 있어 직관적이고, 사회적으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마침 현대카드와 함께 ‘1913 송정역시장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과정에서 시장에 있는 ‘밀밭양조장’이란 브루어리와 교류할 기회를 얻었고, 지역의 지리적, 문화적 성격을 온전히 반영한 생산물인 수제 맥주에 매료됐다. 광주 일대는 전국에서 우리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로컬 브루어리 런칭을 위한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기존에 우리밀을 활용한 로컬 푸드 상품은 라면, 빵 등이 전부였기 때문에, 수제 맥주를 통해 새로운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섰다. 그래서 2017년 무등산 브루어리를 설립한 뒤 수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무등산 브루어리에서 운영하는 펍, '애프터웍스'

ⓒ 무등산 브루어리


창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키는 과정이다. 무등산 브루어리의 초기 영업 전략은 무엇이었나.

로컬 콘텐츠 상품의 일종으로 수제 맥주를 택한 셈이었기에, 초기에는 아무래도 맥주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브루어리 운영자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나름의 고민을 거쳐 사업 방향을 정했다. 일단 맥주의 생산, 유통, 판매 과정이 모두 마을 내 특정 공간에서 이뤄지도록 했다. 이는 지역의 문화적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장소성과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광주 동명동 골목의 버려진 폐가를 재생해 첫 번째 공간을 차린 것에도 그런 의도가 담겨 있다. 또한, 주류 유통 전문 인력이 없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 공간을 매개로 판매하는 전략을 택했다.

상호를 정하는 과정에서는 시민뿐만 아니라 외부인도 공감할 수 있는 광주의 상징물이 무엇인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그때 무등산이 떠올랐다. 무등산은 광주 시민들에게 정신적인 지주와도 같은 데다, 외부인에게도 잘 알려진 명소다. 그래서 브루어리명을 ‘무등산’으로 정하고, ‘무등산 필스너’, ‘광산 바이젠’, ‘영산강 둔켈’ 등 고유 지명을 활용해 상품명을 지었다. 앞으로는 ‘워메 IPA’처럼 지역 방언도 제품 브랜딩에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생각이다.


 '워메2 IPA'는 광주 지역의 특산물인 무등산 수박을 활용하여 제조한 맥주다

ⓒ 무등산 브루어리


워메 IPA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무등산 브루어리가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온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달라.

무등산 수박은 광주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특산물 중 하나다. 이 수박은 크고 당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해외에는 이미 수박을 넣어 맥주를 주조한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무등산 수박을 활용한 IPA 맥주를 기획해 생산했고, 지역의 향토적인 사투리인 동시에 수박의 영문명 ‘워터멜론’의 줄임말이기도 한 ‘워메’를 이름으로 붙였다. 내년 가을쯤에는 호박을 활용해 맥주를 만들 계획이다. 그리고 여름 시기에 맞춰 광주 인근 장성군의 특산품인 사과가 들어간 사이더 Cider(사과주)를 만들거나, 화순군의 복숭아로 향긋한 풍미를 지닌 맥주를 만들어보려 한다.

레시피를 직접 개발하고 제조하는 과정에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한다는 성취감이 있다. 예전에는 광주를 비롯한 전남 일대에 품질 좋은 농산물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브루어리 제조 역량을 살려 가공 상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디자인, 마케팅 역량을 더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지역성을 내세운 무등산 브루어리의 맥주


무등산 브루어리가 정의하는 로컬 브루어리, 타운 브루어리는 어떤 개념일지 궁금하다.

오늘날 교통, 통신의 발달로 지역에 따른 특수성이 희미해지는 추세지만, 몇몇 국가에서는 여전히 개별 지역마다 확연한 문화적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유럽 내 일부 국가와 일본의 경우 각각 중세 시대, 전국 시대에 ‘영지’의 개념으로 지역이 형성됐기에, 지금도 지역에 따라 확연히 구별되는 전통과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일제강점기, 전쟁, 산업화 등 굴곡진 역사를 겪으며 지역성이 상당수 소멸됐다. 물론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1960~1970년대에는 이런 획일적인 라이프스타일이 효율적인 국가 주도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대중의 기호가 다양해진 요즘에는 사람들이 고유한 콘텐츠, 지역성 등을 놓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다원화된 취향을 두루 충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콘텐츠가 필요한데, 지역에 따른 특수성은 콘텐츠의 색다른 특성, 매력,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원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무등산 브루어리를 비롯한 수제 맥주 브루어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지역성, 로컬리즘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로컬의 강점을 향토적인 덕목에서 찾기보다는 오히려 ‘유일성’에서 찾는데, 이는 특정 지역, 특정 장소에 가야만 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아무래도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 수제 맥주를 만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역의 맛과 스토리텔링이 덧입혀지고, 그런 상품 제조 형태의 매력을 콘텐츠화하는 것이 곧 로컬 브루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수제 맥주가 대표 로컬 상품으로 자리 잡은 것 역시 지역 콘텐츠가 지닌 매력 덕분인가.

로컬 브루어리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유도 얼마든지 있다. 개인적으로는 맥주가 전 세계 모든 발명품을 통틀어 가장 현지화가 잘 된 콘텐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이념, 경제적 지위, 사회적 풍습 등에 구애받지 않고 제조되는 것은 물론이고 누구나 즐겨 마시는 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맥주는 일상적이면서도 가벼운 술이다. 도수가 높지 않으므로 누군가와 만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내는 매력이 있고, 어떤 상황이나 음식과도 두루 잘 어울린다. 즉, 진입 장벽이 낮은 맥주 고유의 특성에 힘입어 수제 맥주 역시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물론 각각의 브루어리가 운영하는 공간, 로고, 상품 디자인의 다채로운 매력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맥주를 브루잉하는 모습

ⓒ 무등산 브루어리


끝으로 무등산 브루어리의 목표나 지향점을 소개해달라.

일상적인 공간과 지역 안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그런 게 언제든 재발견될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흐름이다. 이를 선도하는 것은 소규모 지역에 기반한 마이크로 팩토리 또는 라이프스타일 관련 비즈니스와 같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대중에게 영감을 주고, 색다른 콘텐츠를 선보여 가치 소비를 이끌어내며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사회적 선순환을 이뤄낸다.

같은 맥락에서 무등산 브루어리는 대안적인 청년 창업을 지향한다. 앞으로도 고유성, 콘텐츠 가치 등의 개념에 따라 브루어리를 성장시키고, 지역 창작자들과 협업해 색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해보고 싶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무등산 브루어리만의 마을 만들기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런 주제는 주로 공동체란 키워드 안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처럼 일상과 밀접한 상품을 제작하는 라이프스타일 스타트업이 결합하면 현실적으로 더욱 유효한 마을 만들기 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1: 로컬전성시대>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interviewee

윤현석 대표

광주광역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화 기획자, 청년 창업가로서 ‘1913송정역시장 프로젝트’와 ‘2017 세계청년축제’ 등을 총괄했다. 현재는 (주)컬쳐네트워크, 무등산 브루어리 대표를 맡아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로컬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강필호

stopkang108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