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새긴 동네의 10년

스트리트 H

박혜주|

‘홍대앞’으로 불리는 서교동 일대는 하나의 수식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동네다. 심지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홍대입구역 주변에서 시작한 상권은 최근 연남동과 합정동, 연희동까지 뻗어가고 있으며, 몇 년 새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다가 사라지고, 하루에도 많은 상점이 시작과 끝을 알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속절없이 흘러가는 홍대의 시간을 10년 동안 차곡차곡 담아낸 매체 《스트리트H》의 정지연 편집장을 만났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동네 속에서 그녀는 한결같이 자신의 역할을 고민한다. 



‘홍대앞 동네 잡지’란 슬로건으로 2009년에 시작했다. 당시에는 하나의 동네를 주제로 잡지를 만든다는 것이 생소했을 텐데, 어떻게 로컬에 집중하게 됐나.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뉴욕에 머무를 기회가 있었고, 이때 얻은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당시 시간적 여유가 많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정보를 찾았고, 《Timeout Newyork》, 《L 매거진》 등 뉴욕에 관해 다룬 잡지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귀국한 이후에도 뉴욕에서처럼 일상 여행자로 살고 싶었는데 지역 안내서가 전혀 없더라. 당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뉴욕과 홍대의 카페를 주제로 한 단행본을 준비하게 됐고, 뉴욕은 내가 잡지를 들고 직접 돌아다니면서 쌓은 데이터가 있었지만, 홍대에 대한 자료는 없었다. 이렇게 큰 예술 지구를 기록한 자료 하나 없다는 것이 이상해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에디터 출신이고 같이 일하던 장성환 발행인이 아트 디렉터라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홍대에 오래 살았다고 해도 동네 자체에 매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홍대에 문화 예술 콘텐츠가 집결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지역은 전국에서 손꼽는 미술 대학이 있는 예술 지구이고, 출판사가 많은 출판 지구이자 디자인 사무실이 모인 디자인 지구이다. 또 홍대하면 인디 음악과 카페를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문화 콘 텐츠가 이처럼 층층이 쌓여 있는 동네는 우리나라에 이곳밖에 없다. 원래 서교동은 굉장히 오래된 주택가였다. 그런데 1972년, 홍익대학교가 산업미술대학원을 신설했고, 1980년대에 정부의 지원 아래 미술대학 특성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이 주변에는 ‘미술학원 거리’와 화방, 공방, 갤러리, 미술 전문 서점 등 예술 관련 상권이 형성됐다. 또한 작업의 성격상 큰 공간이 필요한 미대생들이 서교동의 반지하, 차고, 창고 등을 임대해 작업실로 썼고, 미대생뿐만 아니라 예술가 집단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그들만의 아지트가 됐다. 이들은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이 문화를 상업적인 공간으로 확장했다. 상수도, 발전소, 언더그라운드 등의 클럽이 그 예다.

또 인쇄 골목이었던 종로, 을지로에 몰려 있던 출판사 중 상당수가 1980년대에 홍대, 마포 근처로 이전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양대 출판사라 할 창작과비평사와 문학과지성사 모두 이쪽에 있었다. 일산 장항동의 인쇄 단지와도 가깝고, 대형 서점이 있는 도심과도 멀지 않으며 디자인 스튜디오가 밀집해 있어, 출판사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홍대의 창의적인 분위기는 문인들과 만나고 교류하기에도 적당했다. 이처럼 모든 문화 산업이 지역 내에서 대부분 연결돼 있다. 



《스트리트H》를 보면 홍대 지역의 소식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방대한 이야기에서 콘텐츠를 선별하는 기준이 있나.

홍대의 큰 변화 중 하나는 권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콘텐츠의 기준을 지역으로 고정하기가 쉬웠다. 홍대앞이라고 해도 대부분 서교동, 동교동, 멀어봐야 연남동 일부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홍대 권역이 연희동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행정 구역으로 봤을 때 연희동은 서대문구에 속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수에서 대흥, 광흥창까지도 넓어지고 있다. 이처럼 홍대라는 지역의 색깔을 입은 공간들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갔을 때, 어디까지 홍대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렇다고 행정 구역만으로 취재 범위를 좁히기도 어렵다. 이들이 홍대앞을 떠나는 이유는 공간 자체의 정체성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이니까. 그렇기에 홍대 색깔과 맞는 공간이라면 되도록 넓게 보고 담으려고 한다. 또한 프랜차이즈나 지역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상업적 성공을 위해 이곳에 온 이들이라면 굳이 지면을 주지 않는 노력도 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지역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공간을 만드는 사람을 단순히 자영업자로 정의하기보다는 취향 생산자로 본다. 자신만의 취향으로 지역을 채우고, 또 지역과 어우러져 지역의 정체성을 만드는 공간. 이런 역할을 하는 공간인지, 이와 관련된 이야기인지가 기준이 되는 셈이다.


로컬 매거진은 젠트리피케이션에 영향을 준다는 비난을 듣곤 한다.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본의 아니게 젠트리파이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5주년 기념으로 연남동 특집호를 기획했고, 7주년 특집은 망원동을 주제로 했다. 두 곳 다 주목받기 시작할 때 보기 좋게 정리해서 소개한 셈이 됐다. 독자들에게 좋은 동네와 공간을 소개하고 싶어서 기획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득을 얻은 사람들은 예상과 달리 딱 두 부류가 나오더라. 첫 번째는 기획 부동산업자들. 그들에게 이 동네가 곧 뜬다는 것을 잡지로 알려준 셈이 됐다. 두 번째는 대중 매체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유명 맛집 프로그램 작가가 우리 잡지 애독자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가 다룬 공간이 자주 TV 프로그램에 언급되며 동네에 변화를 일으켰다. 이처럼 뜨는 동네라 불리는 곳을 잘 포장해서 소개하는 일은 젠트리피케이션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 없다. 세계 모든 문화 도시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많은 방문객이 누비는 상권으로 변화한 연남동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로컬 미디어의 역할은 무엇일까?

로컬 미디어마다 개성이 각각 있고 자임하는 역할이 다르다. ‘마포FM’의 경우 라디오라서 그런지 조금 더 이슈에 빠르게 반응하는 편이다. 물론 우리가 지역 사회의 이슈에 빠르게 반응하는 매체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동네의 소소한 이야기와 로컬숍, 로컬 사람들에 집중하고 싶다.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고 잘 해왔으니까. 동네를 꾸준히 기록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동네에 굉장히 무감하다. 지나치며 매일 봤던 카페가 사라져도 한두 달만 지나면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린다. 고작 가게 하나 기억 못 하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존재 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이, 이 동네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상기하고 지면으로 알리는 것이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으며, 동시에 동네 상권을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  


앞으로 로컬 산업과 로컬 잡지의 전망은 어떠한가.

대도시들의 입면이 비슷해졌지만, 사람들의 취향은 더 작고 세밀해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에 맞는 로컬을 찾고 싶은 욕구가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본인이 가고 싶어 하는 지역을 직접 선택하고, 그곳과 연결되고자 한다. 그러나 로컬 자체에 가치를 두고, 이를 알리고 보존하려는 사람보다 이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은 것은 여전히 문제다. 이는 로컬 상권의 성장을 넘어 과도한 임대료 상승 등의 문제를 야기해 로컬 이야기를 지면으로 전하는 사람을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상업화 속에서 이곳의 많은 문화 생산자와 취향 생산자가 로컬의 가치를 지키면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고민스럽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형식으로 로컬 잡지를 만들고 있다. 모든 지역마다 잡지가 있을 필요는 없지만, 로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미디어는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 역할은 지역의 색깔을 좀 더 선명하게 하는 것이다. 로컬이 추구하는 가치를 좀 더 분명하게 큐레이션해 소개함으로써 해당 지역에 대해 유사한 취향과 생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매체 하나가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거대한 변화를 바꾸기는 어렵다. 일단은 이 지역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로컬의 가치를 더 자주 말하고 드러내는 것. 부족하나마 그정도라도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1: 로컬전성시대>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interviewee

정지연

2009년 6월 창간한 홍대앞 동네 잡지 《스트리트H》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여성 잡지 기자로 10년 가까이 일했으며, 출판사에도 몸 담았다. 로컬, 도시 문화, 대안적 삶에 관심이 많으며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는 머리보다 몸을 쓰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박혜주

phj90031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