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사러가마트를 지나 골목 안쪽으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벽돌 외관의 단정한 상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상점은 전통 양갱점을 표방하며 오늘날 양갱의 부흥을 이끈 ‘금옥당’이다.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진하고 깔끔하게 씹히는 식감이 남다른 양갱,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패키지는 별다른 홍보 없이도 하루가 다르게 입소문을 탔다.
2017년 겨울에 오픈한 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즈넉한 동네 골목에 문 연 양갱점을 방문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방문객이 연희동을 부지런히 찾아왔다. 이를 가능케 한 건 뜻한 바대로 상품과 서비스를 구현하고자 하는 뚝심, 그리고 로컬숍 그 이상이 되고자 하는 결연한 마음가짐이었다.
금옥당 외관
보편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양갱 상품을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금옥당을 연 계기는 무엇인가.
금옥당 이전에 ‘경성팥집 옥루몽’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사실 나는 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기존 양갱도 내 입맛에는 너무 달게 느껴졌고, 젤리 같은 식감을 개인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먹기 힘든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일본에 다녀온 지인들이 하나 같이 선물로 양갱을 주곤 했다. 이렇게나 많이 팔리고 인기가 있다면 내 방식으로 훨씬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나처럼 기존 양갱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많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금옥당이라는 양갱점을 열었고, 설탕과 한천의 함유량을 줄여서 당도를 낮추고 식감도 개선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팥이라는 재료, 즉 앙금의 비중을 더 높인 거다. 대다수가 음식을 논할 때 맛을 먼저 언급하는데, 내가 봤을 때 중요한 건 향과 식감이다. 맛은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서 얼마든지 맞춰줄 수 있다. 하지만 식자재 본연의 향과 식감을 제대로 구현하는 업체가 그동안 없었기에 내가 직접 차린 거다.
금옥당 내부
서양식 디저트 위주인 시장에서 전통적인 디저트 판매를 시도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오히려 편했다. 양갱은 내가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팥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원재료가 가진 맛과 뉘앙스를 제대로 알고 있으니까 도리어 쉽다고 느껴졌다. 다만 가게를 열기 전에 참고할 만한 곳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찾기가 어려웠다. 일본의 여러 양갱 전문점을 직접 둘러보기도 했지만 그다지 와 닿지는 않았다.
판매 방식에서도 기준을 어떻게 잡을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초반 1년 동안 많이 버벅댔다. 처음에는 겨울에 오픈해서 문제가 없었는데 봄이 되면서 일반 유통되는 제품 중에 간혹 변질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팥 자체가 잘 쉬는 재료인데, 일반 양갱처럼 보존제를 쓰지도 않고, 기존에 양갱이 상하지 않도록 방지해주던 강력한 당분도 함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온도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한 달가량 보관이 가능하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의 효율과 손님의 편의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 상황이다.
단 디저트라는 인식을 가진 양갱의 당도를 낮춘다는 게 일종의 모험이었을 것 같다.
아버님이 이북 출신이고, 어머님은 서울 태생이라 집안 자체가 음식을 담백하게 먹는다. 그렇다 보니 처음부터 양갱 시장만을 본 게 아니라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커뮤니티를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한적한 연희동이 대세인 지역은 아니지만, 이러한 취향이 통할 만한 시장이 분명 존재하는 동네라고 생각했다. 만약 당도를 높이고 자극적인 맛을 추구했다면 연남동이나 홍대 쪽에서 오픈하지 않았을까 싶다.
금옥당 양갱
그동안 중장년층만을 매료한다고 여겨졌던 양갱을 젊은 층도 즐겨 찾는 음식으로 변모시킨 과정에서 각 재료에 맞게 디자인한 금옥당의 감각적인 패키지의 역할이 컸다.
할머님들이 꽃무늬를 참 좋아하시지 않나. 장식 요소를 싫어하는 내가 보기에는 촌스럽고 싫지만, 내 어머니와 노년층의 취향을 존중한 거다. 가능한 한 심플하게 가되 포장 박스를 열었을 때 상품 하나하나를 구별하게끔 하는 포인트가 될 정도로만 꽃무늬와 심플한 패턴을 썼다. 젊은 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타깃으로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완전히 반대인 것이다. 초반에 젊은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기대한 당도보다 낮으니까 종종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휘발성이 강하고 일관되지 않은 그들의 취향과 입맛에 맞춰서 유명해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SNS 활동을 일절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팥뿐만 아니라 흑임자, 밀크티, 라즈베리 등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재료들을 활용한다. 특히 팥 양갱의 경우 일반 팥, 통팥, 고운 앙금 등 선택의 폭이 넓다. 이처럼 다채로운 레시피를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강조했듯 모두 식감, 향과 관련돼 있다. ‘팥 양갱’은 팥을 푹 삶아서 곱게 간 앙금으로 만드는 기본 양갱이고, ‘통팥 양갱’은 갈지 않고 알맹이를 살려서 씹는 식감을 더욱 살린 제품이다. ‘고운 앙금 양갱’은 앙금을 프레스기로 손수 눌러 면포에 걸러져 흘러나온 것만 모아 만든다. 이 세 가지는 팥이라는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만드는 방식에 따라 텍스처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고운 앙금 양갱은 팥 껍질을 완벽하게 제거해서 만들기 때문에 식감이 상당히 깔끔한 게 특징이다. 당도만 따진다면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입맛이 예민한 사람은 그 차이를 알아본다.
ⓒ 금옥당
금옥당의 정체성과 추구하는 방향을 제대로 반영한 제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양갱이 이렇게까지 불순물을 제거해서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사실 고운 앙금 양갱 같은 경우는 작업량이 많고 그에 비해 생산되는 양은 적다 보니 아무리 팔아도 적자다. 작업자분들은 효율성이 떨어지니까 해당 제품을 빼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시지만, 나는 힘들더라도 그거 하나만큼은 유지하자고 늘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양갱이자 그야말로 기술적으로 어디까지 구현해낼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이니까.
금옥당의 주방 풍경
주방이 개방되어 있어 오래된 무쇠솥으로 팥을 직접 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품에 들이는 정성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일종의 ‘장인’다운 인상도 받는다. 의도했던 건지 궁금하다.
원래부터 금옥당은 작업장의 개념으로 시작한 공간이었다. ‘통유리로 된 작업장에서 메이커가 직접 물건을 만들면서 외부에서 지켜보는 손님에게 신뢰감을 주고, 그곳에서 생산된 물건을 바로 판매하는 구조를 만들자’가 최초의 기획이었다. 방앗간이 있는 떡집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거다. 홀 없이 공간 전체를 주방으로 만들고, 판매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는데 판매점으로만 끌고 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양갱이란 게 커피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제품도 아니고, 이곳에 앉아서 맛을 보고 싶어 하는 손님들을 고려해 결국 주방 절반을 잘라내고 지금처럼 테이블을 몇 개 놓았다. 초반에는 금옥당 내부에서 모든 상품을 만들었지만, 생산량이 많아지다 보니까 오픈 후 4개월째부터 더는 매장 내에서 손님을 받으며 제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현재 양갱 생산 공장은 망원동에 따로 두고 있고, 금옥당 내에서는 쌍화차와 팥죽, 호박죽 등을 만든다.
금옥당 내부
연희동의 지역성이 금옥당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있나.
지금은 로컬 손님보다 외지 손님이 더 많아졌지만, 오픈 초반에 동네 분들이 굉장히 좋아해 주셨다. 동네에서 가족 단위로 저녁 식사를 하고 귀갓길에 우리 매장에 들러서 쌍화차나 수정과를 드시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동네 주민분들 중에 사러가쇼핑센터를 들르는 길에 ‘5분 뒤에 도착하니 매번 먹던 죽을 준비해달라’는 전화도 꽤 온다. 연희동에서 운영한 지 1년 4~5개월 정도 되니까 단골분들도 많이 생기고 좋게 평가해주는 분들도 많으니 우리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지역 주민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연희동과 연남동은 걸어서 5분 거리도 안 되지만 각 동네를 이루는 분위기는 상이하다. 이처럼 서울 내에서도 지역별 취향은 저마다 다르다. 내가 추구하는 취향과 연희동이라는 동네 사이에는 일종의 교집합이 있었다. 특히 연희동의 장점은 상권의 일 단위 평균 영업시간이 길지 않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긴 영업시간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로 서비스하고 싶지 않은데, 만약 영업시간이 긴 중심 상권에 들어갔다면 이를 피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금옥당 양갱
로컬 브랜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결국 ‘좋은 경험’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좋은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이를 경험한 이들이 좋은 입소문을 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퀄리티로 승부를 보고 싶다. 조만간 홍대 쪽의 옥루몽 본점 자리에 매장을 하나 더 내는데, 이번에는 전략을 완전히 다르게 바꿔보려고 한다. 옥루몽을 열었을 때 손님들이 줄을 100m 가까이 서서 기다릴 정도로 잘 됐다. 매출은 어마어마했지만, 한여름에 땡볕 아래에서 줄 서고 있는 손님들도 힘들고, 쉴 틈이 없는 직원들도 힘들어하는 상황을 보니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금옥당도 제대로 된 응대를 받을 수 있는 매장을 만드는 게 목표였지만, 매장 면적에 비해 많은 사람이 유입되면서 균형이 무너진다는 느낌을 받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입장 인원수 자체를 제한할 예정이다. 테이블도 몇 개 없고, 수용 인원도 적은 실내 공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안내하고 응대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려 한다. 다시 말해, 매장의 매출과는 별개로 ‘손님이 공간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갈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를 세운 셈이다.
추구하는 지향점 혹은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그와 관련하여 직원들과 종종 얘기를 나누는 데 결론은 단순하다. ‘잘하자’는 거다. 과연 동네 뒷골목에서 소규모로 운영한다고 모두 로컬 비즈니스라 할 수 있을까? 일명 중앙 무대라고 일컬어지는 중심 상권에 못 들어가서 동네 상권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이때 뭔가 압도할 만한 퀄리티를 내세우며 동네에 자리를 잡는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선보이는 음료나 음식의 퀄리티가 그저 동네 수준에 머문다면 이를 로컬 비즈니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했던 말인데 잘 만든 제품, 본질을 꿰뚫은 물건은 많은 사람이 알아보고 좋아한다. 우리는 각자의 로컬에서 로컬을 넘어서는 퀄리티를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