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성수> 미리보기 #1

성수동과 브루클린, 두 도시 이야기

박천휴|


파이브 리브스

ⓒ John Gillespie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아담한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파이브 리브스(FIVE LEAVES)라는 이름의 이 레스토랑은, 그린포인트(Greenpoint)의 조용한 주택가가 시작되는 길목과 그 반대편으로 맥캐런공원(McCarren Park)을 마주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배우 히스 레저가 이 레스토랑의 공동 창업주 중 한 명이며(그는 결국 이 레스토랑이 개점하기 전에 사망했다),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온 9년 전에는 이 근처에서 거의 유일하게 근사한 브런치나 팬시한 칵테일을 한잔할 수 있는 분위기 좋은 곳이었다. 그건 다시 말해 이 레스토랑의 메뉴 가격이 근처 다른 곳들에 비해 훨씬 비싸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시 최저임금만 받으며 인턴십으로 연명하던 나에게 파이브 리브스에서의 근사한 한 끼는 특별한 날에만 스스로 선사한 사치였다. 날씨가 유독 좋았던 어느 봄날, 그때 내가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 파이브 리브스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으며 느긋하게 즐긴 두툼한 리코타 팬케이크는, 나에게 있어 20대 후반 가장 사랑스러운 기억 중 하나다.

이 레스토랑이 위치한 곳은 지난 20여 년 동안 브루클린에서 가장 핫한 동네가 된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와 그린포인트의 경계다. 이 두 동네는 뉴욕시의 중심인 맨해튼에서 강을 건너 브루클린에 오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이자, 이제 우리에게도 친숙한 단어가 된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장 격렬하게 겪은 곳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저소득층 노동이민자 비율이 높았던 두 동네는, 2000년에 평균 857달러였던 월세가 2014년에는 1,591달러로 78.7% 상승했을 정도의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같은 기간의 뉴욕시 전체 월세 상승률이 22.1%였음을 고려하면 이 동네에 불어닥친 젠트리피케이션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내가 이 동네로 이사한 2009년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옷장만 한 크기의 맨해튼 아파트를 전전하다가 브루클린으로 오니 같은 월세로 훨씬 넓은 공간을, 그것도 룸메이트 없이 혼자(!) 차지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초기의 홍대・상수 지역을 떠올리게 하는, 주류에서 한 발짝 떨어진 듯한 문화적 분위기도 매력적이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확보 가능한 대안적 커뮤니티를 찾아 이 동네로 모여든 저소득층 젊은 세대와 예술가들이 이제는 전 세계적 트렌드가 된 브루클린 스타일과 힙스터 문화,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의 시작점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수동의 공장 앞을 지날 때면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얼마 전 성수동에서 한 달 동안 지낼 일이 있었다. 내가 작업 중인 새 뮤지컬의 개발을 지원하는 우란문화재단 신사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공연 준비는 결국 체력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바빠지고야 마는 일이기 때문에 모처럼 내 고향 서울에 왔으면서도 성수동 바깥으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성수동의 명성이 이미 몇 해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타고 바다 건너 브루클린에 사는 나에게까지 전달됐기 때문에 성수동에 고립되는 게 그리 불평할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화양 사거리에 위치한 숙소에서 극장까지는 도보 20분 거리였는데, 매일 아침 숙소에서 나와 극장까지 가는 동안 본 풍경(성수동에 유난히 많은 자동차 쇼룸들, 안에서 뭐가 만들어지는지 밖에서는 가늠하기 힘든 공장들, 아직 오늘의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힙한 카페들)은 마치 이 트렌디한 동네의 민얼굴을 보는 것 같아 그 나름대로 좋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특유의 분위기가 결국 성수동의 매력임을 알게 되었다. 밀폐된 극장에서 지내다 보니 기회가 생길 때마다 더 필사적으로 바깥에 나가 햇볕을 쬐었다. 소바식당에서 한우양지온면으로 점심을 먹고, 자그마치(zagmachi)에서 얼그레이를 마시고, 하릴없이 에스팩토리(S FACTORY) 앞을 지나며 안에서 무언가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내 작업 파트너인 윌 애런슨 작곡가와 함께 뚝도시장을 지나 한강까지 걸으며 새 공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성수동과의 인연이 처음은 아니다. 여섯 살 무렵까지 아버지가 성수동에 위치한 공장에서 일하셨는데, 철야 작업을 하실 때면 야식을 들고 엄마와 함께 공장에 가 커다란 장비를 놀이기구인 양 올라타고는 신나 했던 기억이 있다. 그 공장에서 나던, 석유와 철이 섞인 비릿하고 매캐한 냄새를 이번에 성수동에서 지내는 동안 어느 공장 앞을 지나다 다시 마주치곤 했다. 그때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묘사했듯 후각을 통해 어린 날의 기억을 환기하며 강력한 노스탤지어를 느낄 정도였다. 물론 아버지의 공장이 어디였는지 난 정확히 기억할 수 없고, 설령 기억한다 해도 그 건물은 지금쯤 트렌드의 가장 앞 열에 선 세련된 공간으로 변신했을 테지만.



‘브루클린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사람들의 공간인 펜슬 팩토리

ⓒ 박천휴


이처럼 성수동에 자리 잡고 있던 공장들이 대안적인 상업예술공간이나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숍으로 탈바꿈한 건, 사실 브루클린이 20여 년 정도 먼저 걸어온 여정이다. 그린포인트에 있는 펜슬 팩토리(Pencil Factory)는 이름 그대로 연필 생산을 위해 파버-카스텔(FABERCASTELL)사가 1924년에 지은 대규모 공장이다. 1956년에 더 외곽으로 공장을 이전했고, 반세기가 흐른 지금은 뉴욕 디자인 신을 이끄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스튜디오, 소규모 문화・예술 관련 회사들의 사무실, 아티스트들의 작업실과 갤러리 등이 빼곡히 들어찼다. 말하자면 ‘브루클린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된 것이다.

펜슬 팩토리에서 윌리엄스버그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A/D/O가 나오는데, 이곳 또한 오래된 창고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다. 자동차 회사 미니(MINI)가 브랜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이 공간은, 주로 브루클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을 선별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그 결과물을 포함한 전시회와 워크숍이 이곳에서 주기적으로 열린다. 자비롭게도 이 넓은 공간의 다른 절반에는 누구나 와서 일할 수 있도록 넓은 테이블을 마련해두었다. 지금 나처럼 노트북을 노려보며 저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애쓰는 이 동네 프리랜서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다. 또한 한쪽에는 디자인숍도 자리 잡고 있다. 영향력 있는 온라인 매거진 <사이트 언신(Sight Unseen)>과 파트너를 맺어 현재 가장 주목할 만한 디자인, 도서, 라이프스타일 아이템 등을 큐레이팅해 판매한다. A/D/O 주변은 예전부터 빵 제조업을 비롯한 많은 공장과 창고가 자리 잡은 지역이라 이곳을 거닐다 보면 아직도 꽤 많은 공장에서 분주히 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덤보(Dumbo)에서 바라본 맨해튼 브리지

ⓒ Banter Snaps 


내가 처음 이 동네로 온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그 숫자가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야말로, 화려한 고층 빌딩들이 빼곡한 강 건너 맨해튼과 여기 이 날것 같은 브루클린을 구분하는 점이다. 지나치게 함축하면 그저 ‘힙스터’로 불리고 마는 브루클린 문화의 대부분은, 말하자면 저 맨해튼의 빌딩들처럼 이미 너무 화려하고 높게 쌓인 주류 예술과 문화 신에 침투할 수 없는 (혹은 그러기 싫은) 젊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맨해튼의 첼시(Chelsea)나 소호(Soho)가 앞서 그랬던 것처럼 원래는 높은 범죄율과 마약 중독자를 염려해야 했던 동네가, 이제는 뉴욕시 내에서도 가장 비싸고 트렌디한 곳으로 바뀐 것이다.

그 배경에는 대안 공간을 찾아 나름의 위험을 감수하며 이 험한 동네로 온 사람들이 있다. 이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 끌어안아야 했던 위험 부담을 누군가는 젊음과 예술의 낭만이라 느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 무척이나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처음 펜슬 팩토리 건물이 그랬듯, 낡은 창고와 공장을 개조한 브루클린의 많은 작업실에는 지금도 쥐와 바퀴벌레, 부족한 냉난방 시설 등을 참아내며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고 개성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창의성은 그 시대와 세대의 감수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단순하게 ‘유행’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그 창의적 감수성에서 촉발된다.



ⓒ Paulo Silva


브루클린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윌리엄스버그와 그린포인트를 거쳐 이미 오래전에 브루클린의 더 안쪽 동네인 부시윅(Bushwick)으로 향했다. 더 이상 비싸질 수 없을 정도로 월세가 오른 홍대 앞을, 가로수길을, 이태원을 피해 성수동에 새롭게 자리했던 공간들처럼 말이다. 원래 부시윅은 남미계 노동이민자가 대다수인 동네였다. 맨해튼의 살인적인 월세를 피해 부시윅의 춥고 허름한 창고 건물로 모여든 이들 중 누군가는 보수적인 갤러리 문화를 비튼 캐주얼한 전시 공간(마이크로스코프 갤러리, 클리어링 등)을 열거나, 땅값 비싼 맨해튼에서라면 가질 수 없는 뒷마당에서 직접 재배한 재료로 피자(로베르타 피자)를 만들며 부시윅을 힙한 동네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이 동네에도 곧 새로 지은 근사한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염치없이 비싼 가격의 상점들이 생겨났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명암을 논하는 건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든 복잡한 문제다.



붉은벽돌 건물이 즐비한 성수동 거리 풍경


하지만 브루클린과 성수동이 공통되게 겪고 있는 변화와 그에 따른 진통은 조금만 들여다봐도 거의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이 대안의 공간을 문화적으로 새롭게 가꿔나가고, 누군가는 이 동네를 상품으로 흥미롭게 소비하고, 누군가는 그로 인해 보금자리에서 밀려나며, 누군가는 그것을 악용해 점점 이 공간을 망칠 것이다. 우리가 이 중 어디에 속하든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동네들이 저마다의 역사와 철학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셀카와 함께 올리는 ‘#핫플레이스’, ‘#핵인싸’ 정도의 유행어로는 오롯이 담아낼 수 없는 시간과 문화의 축적이다.



브루클린처럼 성수동 곳곳에서도 개성 넘치는 그래피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원고를 완성하면 스스로 축하하는 의미로 오랜만에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을까 생각 중이다. 파이브 리브스에 갈 수도 있겠지만, 평일 오전에도 관광객이 길게 줄을 서는 그곳은 안타깝게도 더는 내 ‘페이보릿’이 아니다. 단지 관광객이 많이 방문해서라기보다 진짜 문제는 예전에 비해 너무나 평이해진 음식 맛이고,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 보이는 직원들의 서비스이며, 처음처럼 세심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과 분위기다. 그리고 이 동네에는 진심 어린 정성이 더 느껴지는 다른 곳들도 생겼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월세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 자신만의 진심이나 철학이 엿보이지 않는 가게들은 이 동네에서 길게 살아남지 못하고 곧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저 멀리 바다 건너 성수동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 믿는다. 브루클린을, 그리고 성수동을 특별한 곳으로 만드는 건 얄팍한 기회주의가 몰려들어 올려놓는 비싼 월세가 아니다. 결국 그 특별함은 자본주의 시장의 험난한 논리 속에서도 진심 어린 애정으로 이 동네라는 공간을, 그리고 이곳에서의 삶을 최대한 근사하게 만들려 애쓰는 저마다의 애틋한 철학이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성수>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박천휴

뮤지컬 극작가 겸 작사가로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