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성수> 미리보기 #3

인더스트리얼 힙타운

강필호|

홍대 권역에서 발원한 힙타운 조류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며 일련의 ‘뜨는 동네’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주목받는 지역 중 상당수에는 경리단길에서 착안한 ‘~리단길’이란 별칭이 붙었는데, 해당 지역은 상권 구획, 주요 업종, 인테리어 등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오늘날 서울을 대표하는 힙타운인 성수동은 ‘~리단길’로 불리지 않을뿐더러 전형적인 힙타운 문법에서 한 발짝 벗어난 모습이다. 이 유별난 면면을 이해하려면 강북 유일의 준공업지역으로 설계된 성수동의 도시 구조적 특성을 살필 필요가 있다.



준공업지역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힙타운 성수동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상전벽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뚝섬(뚝도)으로 불리던 성수동은 이름 그대로 한강과 중랑천, 청계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퇴적 평야에 불과했다. 사대문 밖 한양의 끝자락으로 여겨진 이곳에는 도읍을 지키는 군대가 주둔했고, 임금은 이따금 이곳을 방문해 군대를 사열한 뒤 사냥을 즐겼다. 그 흔적은 ‘연무장(演武場)길’이란 지명으로 남아 있다. 한편 서민들은 이곳을 개간해 채소 농사를 짓거나 뚝섬 포구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¹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농촌의 면모를 유지하던 성수동은 1960년대 서울시의 도시계획 재정비를 계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시는 이촌 향도에 따른 인구 집중 현상으로 인해 도시문제를 겪었고, 사대문 밖으로 주거와 생산 기능을 일부 이전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² 그 과정에서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된 성수동에서는 대대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었다. 이 사업의 초점은 준공업지역 내 산업시설 유치였고, 당시 설계된 획지³ 형태는 그대로 남아 힙타운 성수동의 면면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수동 대표 힙플레이스 분포도


Grand Scale

한국형 힙타운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홍대, 이태원, 신사동 등의 공통점은 주거지 또는 상업지가 힙플레이스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구도심에 속하는 이 지역은 대체로 필지가 작게 나뉘어 임대 가능한 소규모 공간이 많고, 도보로 이동하기 편한 골목길을 갖추고 있다.

반면 성수동은 다른 힙타운에 비해 획지 규모가 평균 두 배 이상 큰 편이다.⁴ 준공업지역의 기능적 특성(적재・생산・가공)상 창고, 공장 등 대규모 공간이 필요해 그에 맞춰 도시계획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후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새로운 서비스나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하는 이들은 대형 공간 임대를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수동은 소자본 창업이 가능한 소규모 공간이 적은 편이며, 그렇기에 이 지역의 초기 힙타운화를 이끈 창고형 문화공간 중 상당수는 부동산 자본의 힘을 빌리거나 예술가들이 공동 운영하는 스튜디오 형태로 시작했다.

게다가 경공업 용도로 건립된 성수동 건축물 중 대부분은 수제화, 인쇄, 자동차 정비 등의 분야에 걸쳐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힙플레이스 기획에 적합한 부동산 매물 부족 현상을 부채질해왔다. 그 결과 총면적 153만 6,700평(5.08㎢)에 이르는 광범위한 동네 안에서 힙플레이스는 시차를 두고 산발적으로 생겨났고, 이 특성은 홍대나 이태원같이 상점과 문화공간이 밀집한 중심 거리가 없는 독특한 면모를 빚어냈다. 그래서 외부 방문객은 지역 내에 흩어져 있는 유명 상점 사이를 이동할 때 상당한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



성수동 건축물의 상당수는 공업용으로 지어졌다


신구 부조화

준공업지역이란 특성은 비단 힙타운의 공간 활용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준공업지역은 기본적으로 공업시설을 수용하되 주거・상업・업무 기능을 보완하도록 유도하는 지역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성수동을 여러 용도가 자연스럽게 섞여들 수 있는 ‘혼합지역’으로 개발하기 위해 공장 외에도 상당수의 택지와 근린생활시설을 마련했다. 이는 산업적인 질감과 일상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성수동만의 개성을 만들어냈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역의 구조적 응집력을 느슨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성수동2가 내 건축물 용도 현황(서울시 GIS)


성수동의 건축물 용도 현황을 살펴보자. 주거・상업시설은 주요 교통망인 지하철 2호선과 아차산로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주로 분포한다. 반면 중심가에는 공업용, 업무용 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러한 용도별 구획은 주거・상업・업무 기능을 수용하되, 산업적 효율을 중시하는 준공업지역의 특성이 표면화된 결과다. 

그런데 교통과 접근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힙플레이스는 기존 근린생활시설과 무관한 지하철 2호선 역세권 일대에 자리 잡아 왔고, 결과적으로는 지역 내 잠재적 소비 계층과 연계되지 못했다. 물론 독특한 건축물과 콘텐츠의 매력에 힘입어 성수동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변화에 상응하는 유기적 지역 구조를 고안하는 것이 성수동에 주어진 과제라 할 수 있겠다.




교통 불모지

거대한 규모에 비해 기능적 응집력이 약한 준공업지역 힙타운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교통 중심지와 거리가 먼 주거지・상업지를 두루 잇는 연계 교통의 중요성은 자명하다. 하지만 성수동의 교통 시스템은 아쉽게도 복합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성수동을 동서로 가르며 지나는 지하철 2호선은 성수역과 뚝섬역 등 2개 역에 걸쳐 외부와 성수동을 잇는 핵심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해당 노선은 아차산로를 따라 지상 선로로 부설된 탓에 고가의 하부가 그늘에 가려 낙후되는 단점도 있다. 게다가 고가 아래 아차산로는 횡단보도가 적은 탓에 지하철 2호선 성수동 구간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의 생활권이 자연스레 단절되었다.

한편 2012년에 운영을 시작한 분당선 서울숲역은 경기 남부, 강남권과 성수동을 잇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예상보다 수요가 적어 2014년 1월 24일 자로 무배치간이역(승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역)으로 전환되어 운영 중이다. 물론 서울숲 주변 지역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분당선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그 효용성은 재평가될 것이다.



성수동 관내 주요 버스 노선도


이보다 큰 문제는 뚝도지구 준공업지역의 기본 설계에 맞춰 계획한 내용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한 버스 노선 체계다. ◼ 성수동 관내를 지나는 간선버스 숫자는 적지 않지만, 성수동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아차산로를 거치는 노선이 전무하다. 간선버스 대다수는 광나루로, 왕십리로, 동일로 등 성수동의 가장자리를 에워싼 도로를 따라 움직인다. 그 결과 성수동 힙플레이스를 방문하려는 외부 방문객에게 간선버스는 사실상 무용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선버스와 마을버스의 역할은 어쩌면 간선버스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성수동을 오가는 지선버스와 마을버스의 노선 편성은 전통적 근린생활시설 밀집 지역 통과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힙플레이스가 밀집한 연무장길이나 성수이로 일대에는 제대로 된 교통 편의를 제공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성수동의 대중교통은 거주민의 교통 수요를 일부 충족할 뿐, 새롭게 부상하는 상업 기능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만 힙타운 성수동을 이해할 수 있다


갈림길에서

준공업지역만의 독특한 색채, 강남지역과 도심부 접근에 용이한 입지 조건, 18만 평(0.59㎢)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하는 생태공원 서울숲의 존재, 한양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등 대학가가 가까이에 있다는 점 등 성수동은 힙타운 형성을 위한 긍정적 요소를 두루 갖췄다. 반면 힙플레이스 집적이 어려운 필지 구조, 소규모 창업이 쉽지 않은 부동산 여건, 이면지역을 아우르지 못하는 교통망 등은 지역의 잠재 가치 발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부작용, 지식산업센터 중심의 획일적인 역세권 개발 등 비판의 여지도 존재한다. 하지만 준공업지역이 힙타운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라이프스타일과 로컬 콘텐츠 영역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이 시기, 갈림길에 선 성수동의 오늘은 지역의 변화를 바라보기 위한 복합적 관점을 요구하고 있다.



※ 주석

1) 서울역사박물관(2014), 『성수동』, pp.20~31.

2) 건설부고시 제1031호, “서울 도시계획 용도지역 결정”, 1964.08.17.

3) 도시의 건축용지를 갈라서 나눌 때 한 단위가 되는 땅.

4) 최선호・•김기호(2014), 196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형성된 준공업지역 계획 특성 연구, 『한국도시설계학회지 도시설계』, 15(6), pp.157~171.


간선버스

121(화계사-서울숲)

146(상계주공-강남역)

242(중랑공영차고지-개포시영아파트)

302(상대원차고지-상왕십리역)


지선버스

2224(성수동-강변역)

2014(자양동-동대문역사문화공원)

2413(성수동-개포동)

2012(중랑공영차고지-동대문역사문화공원)

2016(중랑공영차고지-효창동)

2222(자양동-고대앞)

2412(성수동-세곡동사거리)


마을버스

성동13(옥수역-성수역)

성동10(현대아이파크-성수역)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성수>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강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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