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바다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고성

심영규|

고성은 강원도 최북단에 있는 '작은' 군이다. 이는 물리적인 면적(664.34km²)만의 의미가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휴전선이 한반도를 가로지르면서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만 현재 남한의 고성군이 됐다. 고성은 동해를 접한 여섯 개 시군 가운데 인구 증가율이 가장 저조할 뿐 아니라, 지정학적 위치로도 수도권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년이 서울이나 대도시로 떠나는 이곳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바다에서 태어나 잠시 바다를 떠났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오는 젊은이들 덕분이다. 



고독한 바다, 고성 

고성은 외딴곳이다. 2018년 통계에 따른 고성군의 인구는 2만 7,500여 명으로 인근 속초시(8만 2,000여 명)의 3분의 1 수준이고, 출생아 수도 연간 135명밖에 안 된다. 다른 동해안 지역에 비해 관광객도 적다. 연간 방문객 수가 강릉시 1,900만 명, 속초시 1,700만 명인 반면 고성은 470만 명에 그친다. 인구와 관광객 수가 적다는 것은 ‘젊은 손’이 귀하다는 의미로, 실제 군내 학생 수는 2,082명에 불과하다. 고령 인구 비율도 전체 인구의 26.4%로 속초시의 17.1%를 훌쩍 넘는다. 고등학교는 네 곳이며 매해 300명가량 졸업한다. 고성에서 태어나 2009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바운드디(UNBOUN_D) 김은율 대표는 “고등학교 동기 130명 중에서 고성에 남아 있는 이는 30명 이내다. 대부분은 수도권으로 가거나 춘천, 강릉, 속초 등지로 이주했다”고 말한다.



거진항의 새벽 수산물 경매 풍경 


지리적으로도 외지다.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고성까지는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설악산의 수많은 고개를 넘어야 했던 과거에 비해 많이 단축됐지만,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직접적인 수혜를 입은 양양이나 속초에 비하면 여전히 멀다. 양양IC를 지나고도 1시간 가까이 더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개통으로 서울역에서 출발해 약 1시간 49분이면 강릉역에 도착하는데, 여기서도 고성까지는 1시간 30분가량 더 달려야 한다. 고성을 고성답게 만든 특징은 바로 이 ‘거리’다. 양양에 서핑 붐이 일어나 해변마다 서퍼로 가득 찬 요즘도 고성의 백사장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이 지역의 서핑 명소인 천진・봉포해변과 봉수해변을 중심으로 네다섯 개의 상점이 있을 뿐이다. 아직 때 타지 않은 청정의 ‘핫스폿’도 곳곳에 있다. 특히 송지호해변은 서핑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서피비치(SURFYY BEACH) 박준규 대표는 “한 파도에 한 명만 탈 수 있는 서핑의 특성상 해변 길이가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송지호해변은 최적의 서핑 입지를 갖췄다”고 강조한다. 이런 매력을 지녔음에도 방문객은 다른 동해안 일대 시군에 비해 훨씬 적다.


이곳은 외지인 비율이 낮고, 북강원도와 함경남북도에서 내려온 실향민의 사투리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주민의 절반 정도가 고향이 북녘인 이들이며, 곳곳의 군부대와 통일전망대는 분단의 현실을 일깨운다. 최북단 수동면은 군사 지역이라 아예 민간인 출입조차 안 된다. 그렇다면 외딴곳, 고성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이들에게 고향은 어떤 곳일까?




바다에서, 다시 바다로 

“어릴 적 학교를 마치면 마땅히 놀 데가 없어서 책가방을 모래사장에 던져놓고 수영을 즐겼죠.” 바다의 고장답게 고향에서의 추억은 대부분 바다와 관련된 것이라고 김은율 대표는 말한다. 그러나 그 역시 고등학생 때까진 막연히 ‘고향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출세’란 대도시로 나가보란 듯이 번듯한 직업을 얻는 것이었고, 그 반대는 태어난 곳에서 자리 잡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나 10년 정도 도시에서 살며 이따금 고향 바다를 떠올릴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됐다.“ 가봐서 아는 정도가 아니라 살아봤기 때문에 고성의 해변을 ‘정말 좋은 바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고향의 바다는 팍팍한 도시 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해방감을 선사했다. 특히 유명 관광지인 부산의 해운대나 강릉의 경포대와 달리, 고성의 바다는 한적하고 조용하여 이국적인 감성까지 담는다. 막연하게 벗어나고 싶던 바다에서 김대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지역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 아래 고향에서 새 사업을 준비 중이다. 바로 온라인 수산물 유통 플랫폼이다.


수산업・농업과 같은 1차 산업이 대부분인 고성에서 그의 부모님은 수산물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다.김대표는 기술 개발과 새로운 유통 플랫폼 기획을 통해 한계를 기회로 바꾸려한다. 그는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마켓에서 신선식품 유통을 기획하다 보니, 소비자는 항상 신선한 해산물을 찾는다는 걸 알게 됐다. 지방자치단체나 소상공인은 오프라인 마켓 외에 온라인 플랫폼과 관련된 정보・기술이 부족하다. 이 부분을 보완한다면 소비자는 좀 더 신선한 해산물을 소비할 수 있고, 지역의 소상공인은 전국적으로 판로를 열 수 있다”며, “지역에서 젊은이들의 역할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과거에는 대도시에서 성공하는 것만이 목표였다면 이제 지방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외딴 바다 고성은 더 이상 탈출하는 곳이 아니다. 많은 젊은이가 파도를 만나러 모여들고, 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찾아가고 있는 곳이다. 바다에서 나고 자라 도시로 향했던 이들이 다시 고향 바다로 돌아가고 있다.


수산업은 고성군의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대들보와도 같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강원 1》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심영규

shim09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