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욕망하는 세대가 온다
2018년 6월, 글로벌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는 베이비부머(baby boomer), 그리고 X 세대(generation X)를 이은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가 사회적·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순간을 ‘밀레니얼 모멘트(millennial moment)’라고 정의했다. 이들을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라고 칭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이들이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바로 이 ‘요즘 것들’이 오늘날 노동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9월을 기준으로 한국의 밀레니얼, 즉 20대와 30대에 해당하는 직장인 수는 979만 명이다. 총 경제활동인구가 2,829만 명임을 고려했을 때 약 29%에 달하는 수치이며, 해가 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글로벌 노동 시장에서 각 세대가 차지하게 될 비율(20~65세)
출처: NGA Human Resources, 2019
밀레니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해당 세 대의 직장인에 대해 “자기중심적이고, 게으르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약하고, 쉽게 좌절한다”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로 이들은 쉽게 직장을 그만두는 편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Deloitte)의 2019년 리포트에 따르면, 밀레니얼의 49%가 “2년 이내에 현재 직장을 그만둘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 역시 ‘2년 이내에 현 직장을 떠날 것’이라고 답한 밀레니얼 직장인이 2018년 42%에서 2019년 52%로 증가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 결과를 근거로 “밀레니얼은 끈기가 없고 의지가 약하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들이 퇴사를 고려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현재 몸담은 조직에서 성장할 수 없다는 점’, ‘원하는 만큼 무언가를 배우거나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점’을 꼽았기 때문이다. 세간의 선입견과 달리 밀레니얼은 본인의 성장에 대한 욕구가 높으며 일을 잘하는 사람, ‘일잘러’로 성장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실력을 갈고닦는 것은 물론이다.
밀레니얼이 현 직장에서 2년 안에 떠나려는 이유
출처: Deloitte, 2019
밀레니얼 직장인이 지금 이 순간 퇴사를 선택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오히려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해 성공적인 커리어와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저성장기에 접어든 경제적 배경 탓에, 이들은 부의 축적 이전에 취직을 걱정해야 한다.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취직하더라도 회사가 나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나만의 경쟁력을 갖춰야 조직의 필요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이해하고 있다. 이들에게 ‘평생직장’이나 ‘정년퇴직’이라는 환상은 없다.
이러한 존재론적 위기감은 새로운 세대에게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초조함을 안겨줬다. 짧은 시간 동안 새로 취득해야 하는 지식이 몇 배로 불어나는가 하면 이에 따라 세상이, 업계가, 조직이 끊임없이 새로운 역량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쟁력을 날카롭게 벼리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꾸기 위해 밀레니얼은 입사 이후에도 ‘끊임없이 지식을 섭식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성인학습 시장의 급격한 팽창
2017년 1월, 글로벌 경제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에 대한 심층 기사를 다뤘다. 이에 따르면 일자리와 업무 환경이 급변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할 필요성은 높아졌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요구됐던 학위나 자격은 더 이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여러 기업이 사내 직무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개개인의 배움에 대한 열망을 오롯이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성인교육 및 평생교육에 대한 인식 및 전망
출처: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2018
변화의 파도는 밀레니얼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방식에도 큰 영 향을 미쳤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들은 자신이 만족할 만한 지식 및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성인 실무교육을 제공하는 패스트캠퍼스는 회사 실무자가 필요로 하는 교육 서비스를 개발하며 빠르게 사용자를 늘려왔다. 데이터 사이언스, 디지털 마케 팅, 프로그래밍 등 오늘날 노동 시장에서 높이 평가되는 IT 기술 함양 커리큘럼이 패스트캠퍼스의 대표적인 교육 상품이다. 또한 최근 패스트캠퍼스가 론칭한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콜로소는 헤어 디자인, 네일아트, 요리, 제과·제빵, 웹소설, 웹툰, 패션 디자인 등 지금껏 도제교육이 일반적이었던 직업군에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도입함으로써 정보의 불균형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
지식의 요람 역할을 하던 대학이 산업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근로자가 보유한 스킬과 근로자에게 일터에서 요구하는 역량의 간극, 즉 스킬갭(skills gap)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러한 서비스의 등장은 취업준비생과 직장인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결과 패스트캠퍼스는 2014년 창립 이후 2019년에 이르러 누적 고객 12만 명, 연 매출 260억 원을 넘어섰다. 패스트캠퍼스 이외에도 성인학습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이끄는 교육 서비스 업체는 적지 않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강의와 스터디 및 코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터디파이, 소소한 취미부터 커리어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클래스를 제공하는 클래스101, 초·중·고 학습은 물론이고 대학 입시와 직무 강의까지 폭넓은 교육 분야를 아우르는 ST유니타스 역시 이 분야의 개척자다.
유료 지식 콘텐츠 시장을 일구는 스타트업 또한 배움을 갈망하 는 밀레니얼에게 각광받고 있다. 각계각층 전문가의 정제된 지식을 담은 디지털 리포트를 구독할 수 있는 퍼블리, 매달 책 한 권의 가격으로 수 만 권의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밀리의 서재, 텍스트 형태의 디지털 인사이트 콘텐츠부터 각 업계의 최신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오프라인 스터디까지 서비스를 확장한 폴인, 유료 멤버십 독서 모임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는 트레바리가 대표적이다. ‘요즘 직장인’은 저마다의 특장점을 지닌 여러 채널을 통해 다채로운 학습 경험을 추구하는데, 이들을 타깃으로 삼은 다양한 서비스가 꾸준히 등장하며 각 분야에서 풍성한 지식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마이크로 러닝, 밀레니얼 직장인의 공부법
밀레니얼이 배우는 방식, 즉 배움의 습관을 뒤바꾼 핵심 요소는 단연 기술(technology)이다. 비즈니스 모델과 라이프스타일의 혁신은 기술의 수준은 물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구축됐을 때 폭발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모바일시대가 도래하고 개인 맞춤형 추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기술과 교육을 결합한 에듀테크(edu-tech)가 부상하면서 변화의 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몇 년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키워드가 바로 ‘한입 크기의 학습(Bite-sized learning)’을 의미하는 ‘마이크로 러닝(micro-learning)’이다. 마이크로 러닝은 한 번에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쪼개진 교육 콘텐츠를 통해 하나의 학습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대체로 짧은 분량으로 구성된 콘텐츠는 각각 완결성을 갖추고 있으며, 텍스트·이미지·비디오·오디오 등 형태를 가리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퍼블리는 오늘날 직장인이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양질의 지식 콘텐츠를 골라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정제된 디지털 리포트를 제공해 고객을 사로잡았다.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하는 퍼블리의 콘텐츠는, 산업 트렌드의 변화나 ‘일을 잘하는 방법’을 다룬다. 해당 디지털 리포트의 모든 챕터는 내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3분, 길게는 10여 분 정도만 투자하면 완독 가능한 분량이다. 덕분에 사용자는 업무 중 짬짬이 혹은 출퇴근길과 집에서 부담 없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 예상 독자의 행동 데이터를 상세히 분석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큐레이션해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다.
기업 역시 마이크로 러닝 콘텐츠를 통해 직장인의 업무를 지원 하고 있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할 때, 특정한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때, 리더로서 동료들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할 때, 출시한 상품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 고객에게 신상품 정보나 회사 방침을 설명할 때 모두 학습이 필요하다. 본디 이 과정은 매우 지난하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마이크로 러닝은 조직 구성원의 학습 몰입도가 높고,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갱신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에 현업과 밀착된 학습이 가능하다.
마이크로 러닝의 가장 큰 장점은 배움이 필요한 바로 그 순간에 ‘적시 학습’이 가능하며, 학습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비롯한 여러 기기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식 및 정보에 유연하게 접근하고 현업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마이크로 러닝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자 하는 밀레니얼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카를라 토거슨(Carla Torgerson)이 강조한 바와 같이, 이 학습 방법론은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업무로 바쁜 학습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이는 일잘러로 성장하고자 하는 세대의 욕망, 끊임없는 배움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에듀테크가 빚어낸 배움의 새로운 방식이다.
Contributing Writer 이상준
현재 휴넷에서 평생학습 플랫폼 및 신사업 개발을 담당하고 있 다. 『어떻게 기술이 최고의 인재를 만드는가』의 공저자이자 월간 에듀테크 연구 리포트 <EDUTECH Monthly>의 에디터를 지냈다. 매력적인 지식 콘텐츠의 기획과 기술을 통한 학습 경험 디자인에 관심이 많으며, 일잘러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지적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2: 도시생활혁명》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