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로의 시계를 돌리는 사람들

개항로 프로젝트 - 이창길 대표

조윤|

2017년, 시간이 멈춘 듯한 개항로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개항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다한 공간에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저 무모해 보였던 이 프로젝트는 2년 만에 개항로를 원도심 변화의 거점으로 변신시켰다. 브라운핸즈(Brown Hands) 개항로,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 개항로통닭 등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며 개항로 프로젝트 이창길 대표는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기대와 우려 속에서도 이 대표는 목표를 차근차근 이뤄갈 뿐이다. 그의 이런 확고함은 인천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과 주관적인 애정에서 비롯됐다.




개항로 프로젝트 이전에도 서울, 제주도 등에서 오래된 공간을 새롭게 꾸미는 작업을 해왔다. 그 시작은 언제였나.

10여 년 전 제주도로 귀농하신 부모님을 위해 낡은 귤 창고를 집으로 개조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근처의 낡은 여관을 재생한 ‘토리호텔(TORi HOTEL)’과 제주도 시골 주택을 리모델링한 숙박공간 ‘토리코티지(TORi Cottage)’를 지으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나의 본업은 경영 컨설팅이었는데, 스몰 비즈니스 전략을 세우는 일이 주 업무였다. 그런데 사이드 프로젝트로 토리코티지를 진행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돼 자연스레 이 분야에 집중하게 됐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구상했으며 2017년에 실질적으로 첫 삽을 떴다.


통상 민간 주도의 공간 재생이 건물 단위로 이뤄지는 것과 달리, 개항로라는 길을 재생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개항로 프로젝트의 대상지는 애관극장부터 배다리사거리에 이르는 1km 남짓한 거리다. 나는 이 근처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신포동, 경동 일대가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일하다 인천으로 돌아와 보니 동네가 텅 비어 있더라. 알고 보니 이 일대가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언제든 재개발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단 이곳에서 무슨 일이든 일으키면 원래 모습을 잃지 않은 채 동네가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물리적 측면에서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먼저, 이곳은 도로 폭이 좁아서 행인이 횡단보도를 통하지 않고도 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이 점을 이용해 길 양쪽 구역을 고루 재생할 수 있었다. 또한 개항로 인근에는 지은 지 100년이 넘은 건물이 많고, 건물 높이도 대부분 3~4층으로 높지 않다. 마지막으로, 큰길을 중심으로 좁은 골목이 많다. 이런 골목들은 예상 밖의 경험이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여러 요소에 매력을 느껴 개항로를 택했다.



개항로는 골목이 많고 횡단이 자유로워 걷는 재미가 있다


인천 출신이자 도시재생 사업가의 관점에서 개항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중구 경동 지역의 특성을 정의한다면.

개항 이후 인천은 서울과 바다를 잇는 통로로 개발됐다. 여수, 군산 등 다른 개항 도시보다 규모가 크다 보니 소위 ‘정복자들’이 머물기도 했다. 자연히 최신 문물이 가장 먼저 자리 잡았다. 특히 경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부터 번화가였기 때문에 극장, 병원, 양복점 등이 모여 있었고, 커다란 예식장과 가구점이 들어서면서 ‘경동웨딩가구거리’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재개발이 이뤄질 때 원래 있던 것을 싹 밀어버리고 건물을 새로 짓는다. 반면 인천 원도심은 동네의 원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요소를 더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가 흥했다가 스러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 흔적이 축적돼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천 유일의 청과시장이었던 깡시장 자리에는 아직도 과일 가게가 모여 있고, 애관극장 위쪽으로는 유서 깊은 양복점 몇 곳이 운영 중이며, 옛 가구거리가 있던 곳에는 여전히 가구점 간판이 즐비하다. 그 덕분에 이 지역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완성됐다.


이 지역에 들어와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지역 주민 혹은 상인과 관계를 쌓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다. 제주도에서 어느 정도 단련됐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고민 끝에 주목한 것이 노포다. 개항로 프로젝트 초창기부터 이 일대의 노포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 동네 토박이분들과 친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사람들이 개항로를 여러 번 방문할 만한 이유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노포 하나를 제대로 알리는 일이 시간과 돈을 들여 새로운 공간을 하나 짓는 것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외부에서 방문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나 브라운핸즈 개항로 같은 공간은 다른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노포는 세상에 단 하나만 있고, 베끼려야 베낄 수도 없다. SNS로 열심히 홍보하고, 노포를 주제로 전시도 열었더니 사람들이 이 지역의 노포를 찾아가기 시작하더라. 점점 장사가 잘되니까 결국 사장님들도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




낡은 이비인후과 건물을 재생해 만든 카페 브라운핸즈 개항로


오래된 공간을 리모델링하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기존 공간에서 무엇을 바꾸고 남길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만약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가 있는 건물을 원래의 모습과 용도를 유지한 채 산부인과로 운영한다면 사람들이 지금도 거기서 아기를 낳고 싶어 할까? 도시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하며, 공간의 주인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의 외관을 멋지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입혀 그 공간을 보존하려 한다.


인천 원도심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재생 사업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 도시재생을 위한 도시재생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를테면 벽화가 정말 필요하고 잘 어울리는 거리에 벽화를 그리는 건 좋다. 하지만 벽화 그릴 곳을 일부러 찾아 벽화거리를 만드는 건 아니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공간을 지키기 위해 콘텐츠를 채워 넣는 건 좋다. 하지만 콘텐츠를 넣기 위해 공간을 찾는 건 주객전도가 아닐까.

사실 우리나라에는 도시재생 사례가 많지 않고,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부하는 단계다. 그러니 서로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무엇보다 누구는 토박이고 누구는 외지인이라는 식의 구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지역을 살리는 데 이런 구분 짓기와 편견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인천 1》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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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조윤

yjo@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