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가구에 담긴 우리네 삶

앤틱&빈티지

박혜주|

번화가의 들뜬 분위기가 한층 가라앉을 때쯤, 색다른 풍경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눈으로 보기엔 나이도 출신도 가늠하기 힘든 가구와 소품으로 가득 찬 ‘이태원 앤틱 가구 거리’ 이야기다. “젊었을 때 명품 휘두를 거 다 휘둘러본 분들이 마지막 선택으로 앤틱 가구를 수집한다”는 한 상인의 말처럼 이 거리엔 고가의 제품이 넘쳐난다. 그러나 단순한 명품 거리이기 이전에 동네의 역사와 주민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다.





태초에 그들이 있었다

이태원 앤틱 가구 거리는 미군 진주와 함께 시작됐다. 6・25 전쟁 후 이태원에 본격적으로 미군 기지가 자리 잡으면서 미군과 대사관 직원 등 외국인들이 가족을 대동한 채 물밀듯이 들어왔다. 정부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때 일본 고급 장교의 관사를 지으려던 지역에 고급 외인 주택 및 외국인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다. 이곳에 입주한 이들은 전쟁을 거쳐 폐허가 된 한국에서는 생활용품을 구하지 못할 거라 예상했기에 자국에서 가구나 소품을 직접 가져왔고,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외산 가구가 대거 유입됐다. 판자촌 한가운데 건축된 주택 단지는 당시 이질적인 존재인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이들이 쓰는 가구에 관심을 보이며 갖고 싶어 했다. 기회는 곧 찾아왔다. 1980~1990년대, 복무를 끝낸 미군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그간 사용하던 가구와 소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병영 내 PX에서 흘러나온 제품을 팔던 가게들이 ‘고급 미제 중고 가구’를 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지며 앤틱 가구 거리로 발전했다.



이국의 물품은 손을 타고

당시엔 한국인 주거지와 미군이 드나들던 상업 지역을 분리했기에 평범한 한국인이 미군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인에게 제품을 받아 되팔기도 어려웠다. 대신 그 역할에 아주 적합한 이들이 있었다. 매일 미군을 마주하며 거래하는 이들, ‘양공주’(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던 한국인 여성을 일컫는 은어)였다. 주한 미군은 대부분 직업 군인이라 한국군에 비해 외출・외박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들은 맘에 드는 한국인 성매매 여성을 자주 만났으며 더러는 살림을 차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양공주들은 그들의 물품을 반출해 시장에 내놓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직접 자신의 집에서 소규모로 물품을 판매하거나 친분이 있는 가게나 상인에게 물건을 넘겼다. 이처럼 양공주를 포함해 미군을 상대하며 일하던 사람들이 미군과 외국인의 물품을 가져다 판매해 이익을 챙기자 본격적으로 ‘나까마(중간 상인을 지칭하는 은어)’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까마는 외인 주택을 돌아다니며 이사하거나 자국으로 돌아가는 외인들의 가구 및 전자제품을 사들여 중고품 상인들에게 되팔았고, 결과적으로 가구 거리를 조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중고 시장을 넘어 고古가구 거리로

‘외제’란 수식어가 붙은 가구들은 한국의 부유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30년 전부터 앤틱 거리에서 매장을 운영해온 한 상인은 “당시 한국은 해외여행이 금지되어 있었고 수입 절차에도 제한이 따라 외제를 살 수 있는 구매처가 사실상 이태원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외국인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 단지를 대상으로 외제품만 털어가는 전문 도둑인 ‘외인 주택 털이범’이 생길 정도로, 외산 가구는 상류층이 부를 보여주는 상징인 동시에 가난한 이들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호시절은 잠깐이었다. 해외여행이 허용되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자 ‘두고 간 것’에 쏠리던 관심은 사라졌다. 그 틈을 타고 유럽의 고가구들을 직접 수입해서 판매하는 전문 앤틱 가구점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점차 늘어나 A, B, C, D 거리로 나뉘었고, 80여 개의 점포가 모이게 되었다. 보통 100년 이상 된 가구 및 소품은 앤틱, 60~70년 정도 된 물품은 빈티지라 분류하는데 대부분의 업체가 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가구를 들여온다. 한 상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100여 년의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가구를 만들 정도로 견고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전쟁이나 가난 등과 거리가 멀어 물건들이 오랜 시간 보존된 나라는 몇 없다고 한다. 이태원 거리에 있는 업체들은 유럽에서도 귀한 앤틱&빈티지 가구를 고르고 골라 조금이라도 다칠세라 애지중지하며 한국으로 가져온다. 그만큼 자부심도 크다. A거리에 자리한 앤틱 가구점 ‘플로라’ 대표는 “유럽 어디를 가도 이렇게 다양한 앤틱 가구가 한동네에 모여 있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며 이 거리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들의 열정으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들어온 가구들은 이태원 골목 한쪽에서 또다시 차곡차곡 세월을 쌓아간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이태원》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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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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