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오프에서 테이크잇올로

푸드테크 혁신

이두영|

최근 F&B업계 종사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요즘 F&B 산업은 IT 기업에서 더 활발하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식품 소비 행태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1~2인 가구의 증가, 도시화, 노령화 등 국내에서 빠르게 나타나는 변화는 효율적인 소비를 부추기고 있고, 이에 따라 F&B 산업에서도 IT 기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커머스와 푸드테크의 등장

이커머스(e-commerce)를 통한 식품 구매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화장품, 생활용품 중심으로 이뤄지던 구매가 2018년에는 일반 식품, 그다음 해에는 신선식품 분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커머스 채널 내 F&B 카테고리는 매해 3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인다. 특히 보존 기간이 짧아 이커머스 내에서 판매가 까다로웠던 신선식품은, 품목이 단순 확장됐다기보다 소비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발전이다. 생활용품보다 구매 주기가 훨씬 짧은 신선식품이 주요 소비 품목으로 자리 잡으면 이커머스는 오프라인 시장을 넘어서는 기본적인 소비 채널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미디어에서는 푸드테크(food-tech)라는 용어가 자주 노출되 기 시작했다. 식품(food)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푸드테크는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 가공, 유통, 서비스의 영역에서 혁신을 꾀하는 산업을 통칭한다. 이로 인한 변화는 다소 거시적이며 장기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기에 당장 체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배달의민족과 쿠팡을 필두로 배달과 유통을 결합한 서비스가 등장해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소비자는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콩고기와 같은 대체식품에 손쉽게 접근하는 등 직접적인 효익을 얻게 됐다.




품목별 온라인 구매 경험률 변화 그래프로, 지난 1년간 급격히 증가한 품목인  
신선식품과 배달음식 서비스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출처: Nielsen Global Commerce Study 2017 & 2018




편의성부터 맛, 품질, 가격까지 모두 사로잡다

푸드테크는 제품에 대한 기대가치를 변화시킬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다. 기본적인 경제 원칙 중 하나로 일컫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에서 소비자 효익의 극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테이크잇올(take-it-all) 시대로 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물리적 한계를 인정하고 무언가를 감수해야만 하는 성숙한 자세가 요구됐다면, IT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소비자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대신 필요한 것을 모두 취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국내 식품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가정간편식(HMR)과 밀키트(meal-kit) 시장의 성장을 보면, 소비자가 원하는 효익을 함께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MR의 1세대이자 인스턴트식품인 ‘3분 카레’는 짧은 시간에 최소한의 노력만으로 배고픔이라는 욕구를 해소하기에 충분한 제품이다. 편리함을 취하는 동시에 일차적인 욕구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으나, 식품의 기본 요건인 ‘맛’에 대한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편리함과 맛이 대치된 경우다. 현재 HMR은 제품 개발을 지속적으로 거치면서 조리 시간과 노력이 조금 더 투입되더라도 여러 선택지와 맛을 포함한 가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주 타깃이었던 1~2인 가구뿐 아니라 자녀와 거주하는 3~4인 가구도 HMR 제품을 많이 소비하는데, 이는 근무 형태나 야간 사교육 등으로 인해 개별 구성원의 활동 시간대가 달라지면서 각자 ‘혼밥’을 하는 상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혼밥’이라도 근사하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HMR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HMR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밀키트는 하나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가 소포장된 제품이다. 새벽 배송이나 당일 배송으로 상품을 원하는 시점에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는 가정에서 조리하기 어려운 메뉴를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해 간편하게 즐긴다. 먹는 즐거움뿐 아니라 최소한의 노력으로 개인의 기호에 맞춰 요리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정서적 효익도 얻는 셈이다. 


◼ 트레이드오프 어느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경제 관계. 

◼◼ 커스터마이징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제품 또는 기능 을 제작·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개인의 취향이 뚜렷해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개인의 개성을 반영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소비자의 니즈가 다양해지면서 HMR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제조·유통업의 트레이드오프

제품 개발뿐 아니라 신선식품 제조·유통업에서도 트레이드오프는 일반적이다. 특히 축산업이나 수산업은 유통 단계가 복잡하고 수요 예측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신선도와 가격이 반비례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최근 이러한 관행을 깨고 업계 최고의 품질과 적정 가격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기업이 있다. 도축한 지 4일 이내의 돼지고기, 당일 도계한 닭고기만 취급하는 정육각은 자체 개발한 시스템으로 축산물 유통 단계를 획기적으로 줄여 가장 신선한 고기를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푸드테크가 소비자에게 다양한 효익을 모두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식품에 기대하는 것은, ‘집밥’이라는 정서적인 가치와 ‘맛’이라는 식품 본연의 기능적 가치를 적절한 가격으로 제공받는 것이다. 환경적 제약으로 인해 일부 가치를 뒷순위로 미뤘던 전통 산업과 달리, 푸드테크 기업은 기술을 통해 맛과 품질부터 적시 유통, 경쟁력 있는 가격까지 함께 제공하며 나아가고 있다.


혁신 뒤에 감춰진 그늘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모두 긍정적인 신호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존 오프라인 유통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네 상점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많은 자영업자가 기반을 잃었다. 과거에는 근린 상권으로 진출하는 대규모 유통 업체가 자영업자를 위협했다면,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손’인 이커머스와 푸드테크가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빠르게 변화시킨 결과다. 따라서 푸드테크의 성장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온·오프라인 산업이 유기적인 관계로 연계할 방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비자에게 다양한 효익을 제공하기 위한 움직임을 넘어서, F&B 산업 생태계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2: 도시생활혁명》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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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