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강남》 미리보기 #5

강남 로컬을 만나는 여행법

박지호|

바야흐로 서울 또한 ‘로컬’로 규정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서울의 로컬은 서촌인가? 을지로? 아니면 지금 한참 진화 중인 성수동? 조금 다른 각도로 보면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서울을 상징하는 지역은 바로 강남이다.




PM 12:00

압구정 레트로, 로데오 거리

청담동의 영원한 상징 갤러리아 백화점. 그 맞은편 맥도날드. 그 옛날 서울 출신이건 아니건, 강남 출신이건 아니건, 이 앞에서 약속 한 번 정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LA의 ‘로데오 스트리트’에서 따온 압구정의 로데오 거리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문화, 소비문화가 대폭발하면서 서울을 상징하는 중심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명품 거리 중심의 청담동에 밀리고, 도산공원 주변은 압구정 로데오와 별도로 취급되고, 더 호젓하고 여유로운 가로수길이 부상하면서 조금씩 관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급기야 상가 공실률이 서울권에서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최근 들어 흐름이 다시 바뀌며 F&B 분야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기본으로 2시간 줄을 서야 하는 새로운 콘셉트의 퓨전 한식당 호족반, 고기 중심으로 한식의 맛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세련되게 해석해내는 미연, 수십 년 된 주택을 세련되게 리뉴얼한 카페 꽁티드 툴레아(Conte de Tulear), 날것 느낌이 강한 공간 디스플레이에 ‘곰돌이’ 병음료와 LP를 파는 팝업 웰컴 레코즈가 있는 에잇디 서울(8D Seoul) 카페 등 압구정 로데오의 옛 느낌을 소환하는 레트로풍의 공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실, 갤러리아 백화점 웨스트 맞은편 좁은 골목으로 들어오면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압구정 로데오의 오리지널 가게들이 여전히 활발히 영업하고 있다. 압구정 한복판에서 30년 넘게 만두 외길을 걸어오며 2020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만두집,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허름한 백반 전문점 스마일 가정식백반과 생선구이 전문 파란하늘. 로데오 초입을 기점으로 다양한 중고 명품 가게와 명품 수선 가게 사이로 한식당 개화옥과 금성 스테이크 부대찌개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무엇보다 로데오 중심 거리에 굳건하게 자리한 백반집 뱃고동은 포장 웨이팅까지 있을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압구정 로데오 골목 안쪽에는 생선구이 전문 파란하늘(좌),

낙지 요리 전문점 뱃고동(우) 등 오래된 로컬 가게가 여전히 성업 중이다


PM 2:00

그야말로 강남의 중심, 도산공원

이런 압구정식 노포(老鋪)를 지나 도산공원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도산공원 근처는 서울에서도 최신 트렌드와 세련된 자본의 움직임을 명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오픈 당시 도산공원으로 향한 통유리창과 건물 내 가득한 식물의 배치로 화제를 모았던 구 퀸마마 마켓,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쿠킹 라이브러리, 외부로 열린 형태의 독특한 인테리어와 펠트커피 입점으로 단박에 주목받은 준지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 등 공간과 운영 측면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핫스폿이 즐비하다.

전통적으로 럭셔리하면서도 우아한 도산공원의 중심 역할을 했던 건물이 에르메스 메종이라면, 최근 그 반대편에서 도산공원의 입지를 드높이는 곳이 생겼다. 퀸마마 마켓 자리에 새로 오픈하자마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젠틀몬스터의 하우스 도산이다. 과거 퀸마마 마켓의 자연친화적 느낌을 180도 뒤집어 폐허의 느낌을 결합한 이 공간은 젠틀몬스터만의 톤앤매너를 잘 보여준다. 과감한 색상과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오브제 등으로 가득 메운 공간 곳곳을 탐험하는 것만으로도 영감이 이미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지하 1층의 누데이크 카페는 오전 11시에 오픈하자마자 긴 줄을 선다. 금테를 두른 블랙 크루아상 등 블랙 또는 화이트로 톤을 맞춘 디저트류가 젠틀몬스터만의 디테일을 상징한다.



준지(Juun.J)의 매장 겸 펠트커피 도산점이 입점한 준지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


총체적인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PM 6:00

그리고, 가로수길과 신사역

물론 지금은 블룸앤구떼(Bloom & Goute)가 가로수길을 대표하는 공간이었을 때와 비교하자면 고유한 정취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서울을 통틀어 가로수길 만큼의 좋은 입지를 가진 지역은 드물다. 메인 로드 쪽은 많이 삭막하지만, 뒤쪽 골목은 여전히 괜찮은 F&B와 카페들이 주기적으로 새롭게 선보이곤 한다.

가로수길 초입에 우뚝 서 있는 안테룸 서울은 압구정역 방면에 생긴 럭셔리 호텔 안다즈 서울과 다른 맥락으로 의미가 있다. 강남이 항상 럭셔리만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일본식 비즈니스 호텔을 한국적인 형태로 만든 안테룸 서울은 심플하면서도 포인트가 정확한 디자인 요소와 재료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넓지 않은 호텔 공간도 얼마든지 유니크한 방식으로 구현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발렛파킹 역할을 겸하고 있는 로비를 지하로 내리는 대신, 임정식 셰프의 핫한 베트남 음식점 아이뽀유를 과감하게 1층 전체에 배치하면서 사람들의 주목도와 접근성을 높였다. 층별로 숫자가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룸을 배치했지만, 루프톱에는 야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와 바를 공들여 설치해 단점을 커버했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지하의 넓지 않은 전시 공간인데, 오프닝 전시로 꽃술(kkotssul)이 기획한 1970~1980년대 한국의 아파트를 다룬 <에디티드 서울: 뉴 호옴>을 선보이며 친숙함과 주목도를 높이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심플하면서도 포인트가 정확한 디자인 요소와 재료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독특한 매력을 선보이는 안테룸 서울

ⓒ 이지현


어둑해진 밤거리를 나서면 각종 성형외과와 피부과 건물들이 즐비한 신사역 사거리 쪽이 나온다. 강남은 몇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발현하는 지역이기도 하지만, 세련되면서도 트렌디한 흐름을 가장 먼저 잡을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렇게 여전히 강남은 서울의 현재를, 가장 잘 대변하는 위치로, 사람들을 맞는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강남》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박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