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일상여행≫ 강원 #2

강릉 구름의 맛을 담은 떠먹는 막걸리

서울 사람 K|

스푼으로 떠먹는 디저트 막걸리



막걸리에 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막걸리를 사발째로 부어주며 원샷을 강요하던 선배 덕에 다음날 반쯤 시체가 되었던 기억. 전통주 시장의 발전으로 질 좋고 숙취 없는 막걸리가 생산된다지만, 여전히 막걸리는 다른 주종에 비해 허들이 높은 편입니다. 그런 와중에 막걸리를 ‘디저트’처럼 스푼으로 떠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 서울 사람 K가 찾은 곳은 강원도 강릉의 주룩주룩양조장입니다. 강릉을 대표하는 네 가지 맛의 막걸리 디저트를 맛보고, 구름신 운세를 뽑기 위해 지금 떠납니다.



Chapter 1. 주룩주룩양조장의 고유한 이야기

강릉에서 태어난 아기 구름신의 돌 잔칫날, 돌잡이를 통해 아기 구름신이 어느 영역을 관장할지 결정된다. 기존의 강릉 신들이 선호하는 소나무, 동해, 커피, 일출을 제치고 아기 구름신은 쌀로 만든 술을 선택해 모두를 놀라게 한다. 경포호, 주문진, 오죽헌, 소금강에서 혹독한 수련 끝에 아기 구름신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술을 빚어낸다. 강릉 해변의 구름을 떠먹는 디저트 술을 통해 아기 구름신은 주(酒) 열반의 경지에 오른다.




Chapter 2. 산책의 끝, 구름신의 신당

남대천이 흐르는 제방길에서 여행은 시작됩니다. 강릉의 온화한 날씨로 평화로운 산책길, 그 끝에 강릉의 명물 중앙시장이 보입니다. 시장은 어떤 이에게는 삶 그 자체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즐길 거리 가득한 여행지입니다. 이번에 찾은 곳은 중앙시장 뒤편의 ‘점집 골목’입니다. 평상시에는 인적이 드문 골목일 뿐이지만, 강릉 최대 축제 단오제가 열리는 동안엔 전국에서 모인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분주한 상업 구역과 재래식 문화가 뒤섞인 오묘한 분위기. 그곳에 생뚱맞게 귀여운 신당 하나가 차려져 있습니다. 강릉 구름신을 모시는 주룩주룩양조장입니다.




Chapter 3. 유일하지 않지만 유일한 것

주룩주룩양조장은 스푼으로 떠먹는 디저트 막걸리를 제조, 판매하는 곳입니다. 구름신의 탄생 설화를 그린 제단과 미니멀한 상품 세팅에서 자존감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사실 주룩주룩양조장 이전에도 떠먹는 막걸리는 존재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겐 후발 주자로서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보다 일상적으로 막걸리를 즐길 순 없을까?’ 부담스럽지 않은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떠올린 단어가 ‘디저트’였습니다. 요거트나 아이스크림처럼 입이 심심할 때 즐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답을 찾았습니다.



Chapter 4. 100ml짜리 인고의 시간

떠먹는 막걸리는 이렇게 만듭니다. 깨끗한 시설에서 양질의 쌀을 준비해 불리고 분쇄하고 반죽합니다. 구멍떡이라는 동그란 도넛 모양의 떡을 만든 후 다시 삶습니다. 삶은 반죽을 다시 치대고 치대기를 반복한 후 발효 과정을 거칩니다. 거기에 질 좋은 재료를 넣고 안정화 과정을 거친 후 먹기 좋은 용기에 담습니다. 그리고 구름신이라는 고유한 이야기를 덧씌워 고객에 닿는 것이죠. 눈앞에 보이는 건 100ml짜리 귀여운 제품이 전부지만, 거기엔 몇 마디 글로는 표현하기 힘든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녹아있습니다.



Chapter 5. 이것은 강릉 구름의 맛

맛을 볼 시간입니다. 서두에 이야기했듯 막걸리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어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작고 귀여운 구름신 캐릭터가 빨리 맛을 봐 달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소심하게 한 입, 떠 넣었습니다. ‘음? 뭘까, 이 오묘한 느낌은?’ 100년 전통의 콩국수를 먹는 듯한 진득함과 깔끔하게 녹아 사라지는 아련함이 공존합니다. 확실한 막걸리의 풍미가 빠르게 혀를 훑은 뒤 콧김으로 빠져나갑니다. 아찔합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남은 건 깨끗하게 비운 용기와 입속 가득 눅진한 달콤함뿐입니다. 홀리듯 생각합니다. ‘이것이 강릉 구름의 맛이로구만.’



Chapter 6. 막걸리의 다양한 변주

떠먹는 막걸리를 보며 사람들은 요거트를 떠올리곤 한답니다. 하지만 막걸리 맛 요거트가 아닌, 요거트 느낌의 막걸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알코올이 함유되어 있고, 적당한 취기도 올라옵니다. 떠먹는 막걸리는 제품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딸기, 블루베리 같은 과일과 함께 먹었을 때 조합이 더 괜찮았습니다. 양조장의 제품은 협업을 통해 막걸리 아이스크림, 티라미수와 같은 디저트로 변주해 판매했을 때도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Chapter 7. 흉이지만 괜찮은 기분

신당에 왔으니 운세를 뽑아볼 차례입니다. 특별히 준비된 구름신 운세 뽑기를 돌렸더니 하필 ‘흉’이 나왔습니다. 액운을 쫓으라는 의미에서 하평구름 한 병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액땜을 했으니 올 한 해 계속 평안할 거라는 덕담을 들었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의 좋은 기운을 ‘아는 동네’ 웰컴 카드에 적어서 매장 한쪽에 두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아는동네 독자 여러분에게도 좋은 기운이 깃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룩주룩양조장, 강릉의 새로운 명물



주룩주룩양조장은 대학 동기 세 명이 함께 만든 막걸리 브랜드입니다. 그들은 ‘떠먹는 막걸리’를 통해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상금으로 받은 500만 원으로 반지하 연구소를 만들어 사업을 구체화했습니다. 3년여의 준비 과정 끝에 지난해 6월, 강릉의 점집 거리에 조그만 양조장을 만들었습니다. 강릉이 가진 지역 문화를 알리고 싶었던 그들은 강릉의 해변 이름을 딴 구름신 세계관을 창조하고, 강릉의 식재료로 새로운 맛을 창작했습니다. 그들은 떠먹는 막걸리가 강릉을 대표하는 새로운 문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흔히 보던 이미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으면 했고요. ”

주룩주룩양조장 김항욱, 한빛찬, 박영건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주룩주룩양조장의 브랜딩과 기획을 담당하는 한빛찬, 제품 개발과 생산을 맡은 박영건, 김항욱입니다. 각각 수염, 장발, 빡빡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웃음). 저희는 대학 동기로, 모 대학에서 주최한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현재 강릉에서 주룩주룩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룩주룩양조장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익쌀신술’, 즉 ‘우리에게 익숙한 쌀로 신선한 술을 만들자’라는 모토로 만든 막걸리 브랜드입니다. 강릉 구름신을 기리면서 술을 빚는 콘셉트로 브랜딩하고 있어요. 처음 떠먹는 막걸리를 기획할 때 어떤 강렬한 이미지가 남았으면 했는데, 몽글몽글한 식감과 모양새를 닮은 이미지를 찾다보니 문득 강릉 해변의 구름이 떠올랐죠. 해 질 녘 강릉 해변의 구름이 정말 예쁘거든요. 저희 제품의 이름 역시 각각 하평해변, 소돌해변, 강문해변, 안목해변 등 강릉의 아름다운 해변을 모티브로 따오게 됐어요.




강릉 구름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종교(?)인가요?

구름신은 저희가 창조한 콘셉트인데요. 처음 양조장의 위치를 정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에 점집이 많더라고요. 지역 분위기를 연관 지어서 구름신이라는 존재를 만들고, 매장 인테리어 역시 구름신을 모시는 신당으로 방향을 잡게 됐어요.


독특한 콘셉트 덕에 생긴 오해도 있을 것 같아요.

매장을 지키고 있으면 종종 전도를 하시는 분들이 오세요. 또 저희가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데, 유독 신점, 신내림을 하시는 분들이 팔로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웃음).


막걸리는 숙취가 있을 것 같다는 편견 때문에 다른 주종에 비해 접근하기 힘든 이미지가 있어요.

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빨리, 많이 먹어서 그런 인식이 생기는 것 같아요. 수제 맥주나 와인의 경우는 음미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막걸리도 그렇게 음미하듯 접하면 어떨까 싶어요. 막걸리라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고 다양한 방법으로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요거트처럼 떠먹기도 하고, 얼려서 아이스크림처럼 먹기도 하고요. 요거트 볼에 담아서 과일이나 그레놀라와 함께 드셨을 때 좋았다는 분들도 많았어요.





실제 맛을 본 고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저희가 팝업을 진행하거나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를 올리다 보니 2~30대의 비중이 높아요. 4~50대 여성분들께도 인기가 많았고요. 대부분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세요. 다만 처음 저희 제품을 대하실 때 떠먹는 요거트에 막걸리 향을 첨가한 정도로 생각하시면 힘들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도수가 있는 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음용하시기를 권합니다.


SNS에 독특한 콘텐츠가 있더라고요. 동네 미용실, 스케이트장, 힙한 카페, 슈퍼 앞에서 떠먹는 막걸리를 먹는 영상이었어요. 무엇을 말하고자 했나요?

다양한 연령, 장소, 상황에서 우리 제품을 즐기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사실 막걸리를 디저트로 먹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흔히 보던 이미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으면 했고요.



ⓒ주룩주룩양조장


재미라는 말에서 주룩주룩양조장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그럼 조금 더 깊은 쪽의 주룩주룩양조장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요?

술이라는 콘텐츠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강릉의 정체성을 확실히 담는 브랜드로 확장하고 싶어요. 지방 소멸이 사회적인 문제라고 하는데, 그것은 모든 지역사회가 단순히 서울과 수도권을 따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에요. 각 지방의 저마다의 매력을 콘텐츠로 담아냈을 때 캐릭터든, 관광 상품이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주룩주룩양조장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입니다. 그 밖에도 소소한 목표가 있다면 주룩주룩양조장만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싶어요. 구름신이 있다면 이교도나 사이비도 등장할 수 있을 거고요. 새로운 메뉴 개발과 더불어 콘텐츠적인 확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브랜드를 운영하는 일의 장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단점부터 얘기하자면 서울과는 매출의 차이가 분명히 있어요. 시즌에 따라 관광객의 방문 빈도수가 크게 달라지거든요. 한편 바로 그런 점을 장점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행이 빠른 서울과 달리, 보다 진득하고 긴 호흡으로 저희가 하고 싶은 걸 시도할 수 있는 거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적인 특색을 저희 콘텐츠와 결합해서 차별화할 수도 있는 장점도 있겠네요.


주룩주룩양조장의 앞으로 계획을 알려주세요.

강릉의 명물인 오죽(까만 대나무)을 재료로 한 막걸리를 개발하고 있어요. 그 외에 강릉의 또 다른 명물, 커피를 활용한 제품도 준비하고 있고요. 또 수도권을 넘어 전국적으로 팝업 전시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각자 주량이 좀 어떻게 되나요?

지금 통풍 때문에 고생할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양조장을 운영하려면 계속 술을 맛봐야 할 텐데, 괜찮은가요?

기합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에디터

서울 사람 K

전국에 있는 멋진 크리에이터를 만나 그들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듣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여행법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