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애정과 커피 한 잔

키노빈스

김민주, 정종혁|


키노빈스에 가다

요즘 들어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오는 11월은 겨울답게 쌀쌀하고 겨울답지 않게 쓸쓸하다. 이제야 가을티를 막 벗어가는 겨울의 초입에서 우리는 문득 영화 생각이 났다. 지금 나에게는 어떤 영화가 가장 좋을까. 최근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시린 빙판 위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사랑이 추운 날씨 못지 않게 아리다. 차가운 겨울, 시린 손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할 때 그 손을 녹여줄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영화와 커피, 어울리지 않는듯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스산한 겨울 바람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우리는 11월 12일 빼빼로데이 다음날, 영화와 커피로 마음을 녹여주는 서강대 키노빈스에서 이근욱 대표님을 만나기로 하였다. 원래부터 영화를 좋아하던 우리는 이번 인터뷰를 기대해왔고 떨리는 마음을 안고 그곳으로 향했다.

영화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 키노빈스. 그곳에서 우리는 그의 영화 같은 인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의 키노빈스를 대표하는 키워드로는 영화, 그리고 커피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대표님이 '영화'에 주목하시게 된 계기, 그리고 영화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커피로 확장되었는지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이런 질문은 항상 자주 받는 질문이라 보통 정답처럼 만들어져 있어요 (웃음). 저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편입생이었어요. 서강대학교에는 예체능 대학이 없지만, 대신 신방과에 연출이나 연기 분야 과목들이 개설이 되어 있어서 이런 과목들 위주로 수업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연극에 눈을 뜨게 되었고 아동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영화계에서는 3년 정도 있었어요.

영화는 하루하루가 예산과 직결되기 때문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빠듯하게 스케쥴을 잡는데 그러다보니 밤을 샐 수밖에 없고 잠을 쫓기 위해 현장에서 커피를 많이 드시게 되더라고요. 원래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는 편인데 커피를 마셔야 잠을 쫓을 수 있기 때문에 저도 본의 아니게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된 것 같아요. 독립 영화나 단편 영화 촬영 현장은 워낙에 열악하다보니 커피를 제공해 주는 업체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 촬영 현장에서 원두커피 한 잔 못 먹는 현실이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저는 음료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촬영 현장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정도는 대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시작하게 된거죠. 제가 괴로워서요.

영화와 커피를 접목시켜 사업을 하면 괜찮겠다 하시던 형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저와 다른 친구 한 명을 공동 창업자로 해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금 두 분은 나가셨고 저만 혼자 남아 있는 상태에요. 영화와 커피를 접목을 하자 하는 생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던 건 아니었고 발명이 필요에 의해서 생겨나듯이 왜 이걸 못하지, 왜 아무도 안 하지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기회가 주어져 여기까지 오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키노빈스라는 기업이 어떤 시스템으로 소비자들에게 문화콘텐츠를 제공하는 지 간단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처음에 키노빈스는 온라인 원두 쇼핑몰을 열어서 그 수익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회사였어요. 하지만 커피 협찬을 시작으로 다양한 영화제와도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돈을 벌어 영화계로 다시 돌아갈 게 아니라 회사에서 직접 문화콘텐츠를 제작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키노빈스가 서울시에서 매년 실시하는 청년 창업 지원프로그램에 발탁되면서 창업센터의 공동 사무실 책상 한 칸에서 본격적으로 문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희의 첫 발은 창업센터에 마련된 영사 공간에서 키노빈스 다양성 영화제를 기획하면서 시작되었죠. 한 달에 한 두 번씩 열다가 지금은 잠시 쉰지 두 달 정도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총 20회나 열렸어요. 상영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좋은 작품들이 많다는 생각에 시작한 영화제였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저희가 기획한 콘텐츠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서울 내의 기업들을 육성하는 에스베이라는 기관이 자체적인 콘텐츠를 운영하고자 하던 찰나에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있던 키노빈스가 상영회를 알차게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디엠씨 단편 영화 페스티벌까지 키우게 된 것이죠.

사실 저희가 문화콘텐츠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키노빈스는 커피회사입니다. 그래서 키노 엔터테인먼트를 따로 만들게 되었어요. 그전까지는 저희가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콘텐츠가 영화제나 상영회처럼 ‘영화’라는 카테고리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공간이 생기고 난 이후로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키노 FNL(Friday Night Live)이라는 음악 라이브 공연까지 하고 있어요. 영화제나 상영회는 무료였는데 자립을 위해서 키노 FNL은 1회부터 유료로 진행되고 있고요. 자체 문화콘텐츠는 이 정도로 진행되고 있고, 대관을 통해서 낮잠 데이나 하스스톤 오프라인 게임대회, 출판 기념회, 학교 동아리 행사 등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공간을 지원하고 있어요. 스타워즈 영화 세미나도 최초로 열리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음악 프로그램 컨셉은 직접 구상하시는 건가요?

키노빈스는 장소를 제공하고 키노엔터테인먼트가 프로그램을 기획해요. 키노엔터테인먼트 대표님도 사실 서강대 과 후배에요. (웃음) 키노 FNL은 키노엔터 이병현 대표와 문화콘텐츠 기획을 희망하는 동료들 네 명을 중심으로 해서 매 회 다른 컨셉으로 기획 및 진행되고 있어요. 1회는 어쿠스틱, 2회는 밀레니엄 파크, 3회는 응답하라 2005… 이러한 다양한 형식의 테마를 바탕으로 각 회마다 재밌는 미션곡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죠. 이번 달 공연은 11월 27일에 열리는데 테마는 재즈에요. 5회는 연말 시상식처럼 기획을 하려고 하는데 시상식이니만큼 조금 더 살을 붙여서 다채롭게 꾸릴 계획입니다. 벼룩시장을 시작으로 시상식과 공연, 공연이 끝나고 손님들과 함께 하는 EDM 파티까지 재밌는 구성으로 연말 공연을 마무리 할 생각입니다.


키노빈스를 운영하시면서 영화를 좋아하는 다양한 분들을 많이 만나셨을텐데, 가장 인상 깊은 손님 (혹은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워쇼스키 남매가 한국에서 ‘센스8’이라는 드라마를 찍었었는데 저희가 모든 회차 음료를 전담하는 케이터링 업체로 발탁되었어요. 카페에서 쓰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지고 다니면서 총 12일 동안 케이터링을 했는데 그 당시 대략 4천만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이 때의 수익이 아직까지도 저희 회사의 단기 최대 매출액이에요. (웃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헐리우드 시장의 규모였어요. 미국은 드라마 한 회당 2억명 정도가 볼 정도로 대형 시장이라 그런지 시스템 자체가 굉장히 잘 갖춰져 있더라고요. 한국 시장에서는 케이터링이 촬영 전일을 따라다니는 경우가 없는데 이번 워쇼스키 남매의 촬영 현장에서는 장소와 시간 상관없이 무조건 원하는 커피를 제공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사람들에게 먹을 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다보니 현장 분위기가 좋을 수 밖에 없더라고요.

실제로 헐리웃 제작 시스템을 지켜보면서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한국의 현장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한국의 영화인들과 임하는 자세는 똑같은데 왜 에너지가 다를까 생각해봤을 때 이런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죠. 물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작품이 나오지만 국내 영화인들에게도 음료나 음식과 같은 기본적인 복지를 보다 풍족하게 제공하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제가 느끼기에 가장 안타까운 건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보다 문화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본인이 일을 그만두거나 떠날 때 그 이유를 꼭 자신에게서 찾는 거였어요. 저 선배는 나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도 촬영감독이 되었는데 나는 열정이 없는 걸까 의지가 없는 걸까 생각하는 경우를 봤죠. 저는 문화계에 종사하고 싶은 분들이 부디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문화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부실한 편이거든요. 사실 저희 키노빈스도 아직 보완해야 하는 시스템적인 요소들이 매우 많고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현업에 계시는 분들이 고쳐나가야 할 문제들이라고 생각해요.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최저시급 이상의 금액을 받고 일하는 게 맞는데 어떻게 보면 문화계는 열정페이가 가장 만연해 있는 업계인 것 같아요. 문화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본인이 일한 만큼 돈을 받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저 역시도 그런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못 받아가시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도록 충분히 생각을 해보고 접근을 하셔서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키노빈스에 대해 대표님이 가지고 계신 청사진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저희 식구들에게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한 것 같아요.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로도 안되는 시점이 온 것 같아서 다른 것보다도 최대한 저희 식구들에게 큰 도움 줄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같이 창업했던 형님의 지하방에서 시작해서 창업센터 사무실을 지나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되었잖아요. 이제는 커피뿐만 아니라 음식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산도 많이 늘었고요. 물론 부채도 많이 늘었지만. (웃음) 어쨌든 저희가 돈을 버는 사업 영역이, 결국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키노빈스는 기본적으로 먹고 노는 걸 잘 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괜찮은 복합문화공간이 많은데 그래도 키노빈스만큼은 돈을 지불한만큼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놀았다, 그래서 또 오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키노빈스! 앞으로 펼쳐질 문화를 향한 그들의 발걸음이 기대가 된다. 다가오는 12월에 키노빈스에서 시상식을 기획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커피 한 잔에 어우러지는 키노빈스의 이벤트를 통해서 녹여보는건 어떨까?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김민주

문화를 사랑하는 콘텐츠 마케터, 그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정종혁

언제나 두근두근 재밌는 오늘을 기대하며 사는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