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연희, 걷다

PETERPAN 1978

강필호|


1978년부터 자전거 바구니에 빵을 싣고 매일 아침 집집마다 찾아가 연희동 주민들을 만나며 하루를 시작했던 피터팬은 지금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3대가 대를 이어 손님이 되고 할머니가 손주에게 빵을 사주기 위해 찾을 수 있는 베이커리. 시간은 흐르고 흘러 화려함은 완숙함으로 변모했지만 연희동 주민들에게 건강하고 신선한 빵을 선물하고자 하는 창업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연희동을 상징하는 다양한 공간 및 랜드마크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피터팬 1978은 항상 첫 줄에 언급될 수밖에 없는 명소다.

2016년 봄 연희, 걷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한 축이 '공예의 일상성'이었다면, 중요한 다른 한 축은 바로 '연희동의 지역성'이었다. 주민들에게 받은 사랑의 무게를 중히 여기는 베이커리, 연희동과 4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해 온 이 제과점은 그 자체로 연희동을 닮아가고 있다. 창업주의 대를 이어 피터팬 1978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원님과의 만남은 연희동, 연희동 사람들, 연희동의 과거-현재-미래를 총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1978년 창립 이후 38년, 3대의 역사를 간직한 피터팬 1978의 창업스토리가 궁금하다. 특히 프랑스의 유명한 기술자와 일본의 명장 구와바라 원로기술자를 찾아가 제빵 기술을 배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터팬이 연희동에 자리하기까지 어떤 경험과 노력이 필요했는가.

피터팬의 창립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아버님의 행복했던 추억으로부터 시작된다. 1976년 연희동 사러가마트 근처 제과점의 사원이셨던 아버지는 초기에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빵 배달을 다니시며 피터팬을 운영했다. 그리고 빵을 통해 소통할 수 있었던 연희동 주민 분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시고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피터팬 개점을 결심했다. 어떻게 보면 연희동 마을만의 사람과 분위기가 창업의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전문적인 제과 기술을 갖춘 기술자 출신은 아니셨기 때문에 빵을 더 깊이 공부하시기 위해 많은 장인들을 찾아 다녔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와 일본의 명장 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그 곳에서의 시간을 통해 빵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와 기술, 가치를 배우실 수 있었다.


좋은 재료와 기술을 갖추고 365일 연희동 주민들과 건강한 빵을 나누고자 하는 피터팬 1978이 가지고 있는 원칙과 철학,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버지께서는 피터팬이 연희동의 주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빵집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제빵을 깊이 있게 배우시는 과정에서도, 프랑스와 일본의 명장에게 같은 물음을 던졌다. 어떤 빵집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빵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답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많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따. '최고의 재료'와 '최고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설비'가 손기술을 넘어서 최고의 빵을 만들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최고의 재료와 설비를 통해 만든 최고의 제품을 통해 연희동에서 사랑받는 (동네) 빵집이 되자는 결심이 지금까지도 피터팬 1978을 지탱하는 철학과 목표가 됐다.

피터팬의 역사는 그러한 철학과 목표를 위해서 끊임없이 치열한 고민을 거듭해 온 과정이다. 그리고 두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피터팬'이라는 이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피터팬’이라는 이름은 동화 속 피터팬이 꿈이 가득한 소년의 모습으로 변함없이 아름답듯이, 피터팬을 찾아주시는 손님들께서 피터팬의 빵을 드시고 건강하고 생기가 넘치는 삶을 이루시길 바라는 마음으로부터 탄생했다. 두 번째 결론은 '행복'과 '건강'을 선사할 수 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건강한 빵'에 대해 깊이 연구하신 과정 속에서 내려졌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빵을 만들기 위해서 전국 방방곡곡의 건강에 좋은 지역별 특산물들을 재료로 하는 빵을 개발하자는 생각이다. 그래서 부여에서 밤, 제주도에서 쑥 등을 공수해 만든 건강한 빵을 통해 피터팬의 철학과 목표를 실현시켜 나갔다.





피터팬 1978이 보낸 시간만큼 피터팬의 빵도 많은 변화를 거치고 개성을 갖추게 됐따. 피터팬만이 가진 개성과 문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피터팬의 개성은 조금 역설적이지만 피터팬만의 방식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피터팬이 공간을 운영하고 손님들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피터팬만의 색다르고 건강한 빵을 손님들께 제공하는 것, 다른 하나는 피터팬을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한 번이라도 더 웃고 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손님께서 방문해주시면 피터팬에서는 커피와 시식빵을 제공해드리며 피터팬만의 인사를 드리는 문화가 있다. 손님들이 피터팬의 문을 여시면 "지금 ○○빵이 나왔습니다!"라는 피터팬만의 인사를 한다. 그리고 손님들이 피터팬에 계시는 동안 2~3번의 '감사합니다'를 들으실 수 있을 정도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한다. 이러한 인사법이 피터팬을 찾아주시는 손님들께 저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동시에 손님들께서 조금 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피터팬에서 보내실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긍정의 에너지를 전할 수 있는 메시지인 것이다.


피터팬과 연희동은 오랜 친구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서울 내에서 연희동에 자리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30년 이상 연희동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하면서 있었던 연희동 주민들과의 특별한 추억이 있다면.

피터팬은 꾸준하고 한결같은 동네인 연희동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요즘처럼 변화가 잦은 시기에 지금까지도 연희동은 그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연희동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연희동의 모습은 피터팬과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연희동 주민 분들 또한 연희동을 잠깐 떠나시더라도 다시 돌아올 정도로 연희동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연희동에서 자라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또 그 자녀가 손주를 낳아 부모님의 손을 잡고 여러 세대가 함께 피터팬을 찾아주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회가 새롭다. 한 가족의 역사를 피터팬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감동적인 순간이자 추억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저는 피터팬이 단순한 동네 빵집이 아니라 서로의 삶과 추억을 나누는 '가족'이자 '친구'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2대 째 피터팬을 운영하다 보니 이따금 아버지께서 자전거로 빵을 배달하시던 모습을 기억해주시는 손님을 뵙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 느껴지는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피터팬이 앞으로도 여러 세대에 걸쳐 ‘추억’이라는 재료가 담긴 빵으로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빵집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피터팬의 인기 메뉴인 '장발장이 훔친 빵', '아기궁뎅이'를 보면 피터팬의 작명센스에 놀랐다. 독특한 작명에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피터팬'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피터팬의 빵에는 피터팬이 손님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피터팬에서 일하던 초기에 아쉬웠던 점은 다른 빵집과 다름 없는 이름, 재료, 가격으로 빵이 팔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고의 재료로 만든 피터팬의 건강한 빵이 차별화 없이 손님들에게 판매된다면 저희의 진심을 손님들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선보이는 빵에는 피터팬만의 이름을 지어주기로 결심했다. 마치 소중한 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듯이, 피터팬에서만 만들 수 있는 빵은 피터팬만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빵의 모양과 비슷한 대상에서 이름을 따오거나 빵을 먹었을 때의 인상적인 느낌에 착안하여 이름을 지었다.

예를 들어, '장발장이 훔친 빵'과 '행복바구니'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웃음) 장발장이 실제로 훔친 빵은 피터팬에 있는 '장발장이 훔친 빵'이 아닌 바게트였다. 그런데 내가 이 빵을 처음 맛보았을 때,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식감, 향, 재료가 주는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머리 속을 스친 생각이 ‘장발장도 이 빵을 맛보았으면 감옥에 갈 정도로 훔치고 싶지 않았을까?’ 였고, 결국 '장발장이 훔친 빵'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행복바구니'라는 빵에는 손님들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무화과, 호박, 치즈, 해바라기 씨 등등 풍성한 재료를 아낌없이 큼직하게 듬뿍 담아 만든 빵이 바로 ‘행복바구니’다. 손님들께서 이 빵을 맛보시고 진정으로 행복해지셨으면 좋겠다.


지금의 피터팬이 있기까지, 피터팬과 피터팬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직원들 간의 우정과 의리도 큰 기여를 했을 것 같다. 피터팬과 직원 분들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 직원 분들과의 관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나.

피터팬에는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부터 20년 넘게 함께 해오신 분도 있다. 현재의 총괄 셰프님이 피터팬과 함께 하신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피터팬과 직원 간 관계에 대해서 피터팬이 직원들에게 긍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종종 생각해보고는 한다. 피터팬은 피터팬과 함께 한 직원들에게 '다른 베이커리와는 차별화 된 시간과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피터팬에서 일하는 동안 이 분야의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챔피언이 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내공을 심어드리고 싶다. 이를 테면, 피터팬에서만 보고 배울 수 있는 레시피와 재료들을 부족함 없이 제공해드리고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가능성을 키워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피터팬과 함께하던 분들이 독립하더라도 피터팬에서 얻었던 긍정적인 요소들을 활용하여 또 다른 행복의 에너지를 많은 분들께 전달해 주면 좋겠다.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함께했던 모든 분들은 피터팬의 가족이자 얼굴이니까.


연희동 동장님은 피터팬의 팥빙수를 꼭 먹어봐야 하는 메뉴로 꼽았다. 피터팬의 개성 가득한 빵 중에서 특별히 추천하고 싶으신 메뉴가 있나.

나는 특정 메뉴를 추천해드리기 보다는, 피터팬의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는 궁금해하실 수도 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재료를 구하고 오랜 과정을 거쳐 빵을 만드는지.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피터팬은 행복과 건강을 전할 수 있는 빵이 손님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에서 건강한 재료들을 구해오고, 아침 일찍 만들기 시작해 오후 2시가 지나서야 겨우 나오는 빵을 만드는 수고로움조차 피터팬의 철학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당연한 과정이다. 팥빙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팥빙수에 들어가는 재료인 팥은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아침부터 오후까지 몇 시간에 걸쳐 직접 쑤시는 팥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노력에 더하여 오랜 시간 피터팬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새로운 빵을 소개해드리기 위해 새로운 제품 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계절마다 구할 수 있는 제철 과일과 다양한 지역에서 공수해오는 재료들을 활용해서 빵에 새로운 색깔과 개성을 입히는 방식을 연구한다.




어반플레이의 <2016 연희, 걷다> 프로젝트에 참여해 줘 감사하다. <연희, 걷다> 축제에 함께한 소감, 그리고 덕담 한 마디 부탁드린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처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관심을 갖는 애정 있는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사람 사이에 경쟁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좀처럼 갖기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2016 연희, 걷다> 축제의 취지를 알게 되었을 때, '함께 하는' 동네를 꿈꾸는 피터팬도 참여해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 축제를 통해 연희동 주민들이 더욱 가까워지고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인터뷰를 위한 조사를 하다가 피터팬은 연희동의 '보물같은 빵집'이라는 댓글을 볼 수 있었다. 연희동은 피터팬에게, 피터팬은 연희동에게 어떤 의미일까?연희동에서 그리는 피터팬의 꿈은 무엇인가.

연희동은 'THE 연희동(고유명사)'이다.

연희동은 연희동만의 분위기와 문화를 가진 고유명사, ‘THE 연희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피터팬은 연희동에서 연희동과 함께 살아온 동네빵집이다. 피터팬이 지금까지 연희동의 품에서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연희동 주민 분들이 피터팬에 주신 꾸준한 관심과 사랑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피터팬을 찾아주신 주민 분들 덕분에 나 또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행복한 가정과 삶을 꾸려나가고 있으니까. (웃음) 그래서 피터팬은 우리가 받았던 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 전달하고 베풀면서 계속 꿈꾸어 나가는 피터팬이 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함을 열심히 '빵'에 담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이 피터팬의 빵을 드시고 건강과 행복을 한아름 가져 가면 좋겠다. 우리가 연희동으로부터 행복과 사랑을 선물 받았듯이 말이다.

반대로 피터팬이 연희동과 주민 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연희동과 함께 많은 시간과 추억을 쌓아온 피터팬은 주민 분들 개개인의 삶 속에서 '한 조각의 또렷한 기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피터팬을 찾았을 때, 가장 행복하고 소중했던 '추억의 퍼즐'을 찾게 된다고 생각한다. 피터팬의 빵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피터팬의 빵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며 나누었던 추억,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 누군가의 삶 속에서 피터팬은 '보물같은 빵집'이라는 감사한 표현처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보물상자' 같은 곳이라고 조심스레 표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피터팬이 그리고 싶은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피터팬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지친 삶 속에서 '회복'의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사람, 상처받은 사람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분들이 피터팬을 찾았을 때, 다시 할 수 있다는 기운과 다짐을 얻고 돌아갈 수 있는 회복의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 About 연희, 걷다

‘연희 걷다’는 개인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형성된 커뮤니티를 통해 보다 유쾌한 방식의 마을 콘텐츠를 생산하며, 나아가 마을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연희, 걷다의 목표는 마을의 문화활성화이며, 마을의 상업화가 아니다. 마을의 무분별한 상업화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안하는 프로젝트이며, 콘텐츠의 가치가 부동산의 가치로 쉽게 변질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개개인의 스토리와 콘텐츠에 기반한 커뮤니티를 통해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데 목표를 둔다.

어반폴리 매거진을 기획-운영하고 있는 (주)어반플레이는 경험이 누적되고 커뮤니티가 모여 생성된 콘텐츠들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신념 아래 도시의 물리적 공간이 아닌 지역의 콘텐츠가 인정받고 가치화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런 의미에서 ‘연희, 걷다’ 프로젝트가 단기적인 행사를 넘어 지속적으로 지역만의 소규모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는 기반으로 자리하고, 자생적으로 연희동 지역의 커뮤니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연희동만의 정체성을 누적시켜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2016년 봄의 연희동을 ‘공예’를 통해서 담아냈다.

어반폴리 매거진은 2016 연희, 걷다의 봄 에디션 ‘공예, 있다’에 참여한 공간들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연희동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문화공간들이 연희동, 그리고 지역의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소개하는 이번 연재를 통해서 독자들이 오늘날의 서울이라는 도시, 나아가 대한민국의 도시 속에서 ‘마을’과 ‘문화’가 지닌 의미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에디터

강필호

경직된 사고 방식을 물흐르듯 피하는 그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