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이라는 말은 요즘 시대와는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다. 하지만 반대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들이 찾았던 다방이라는 곳을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의 전유물이던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 나이가 되자 우리 시대에는 카페가 자연스럽게 익숙해졌고, 다방은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가끔 다방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를 보아도 왠지 칙칙하고 허름한 분위기 때문에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지나치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전주의 번화가를 걷던 중, 지하에만 있던 다방들과는 달리 조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삼양다방’을 보게 되었다.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는 다방이라니. 많은 다방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어떤 곳이기에 아직도 이 공간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들어선 그곳에서 다방을 꾸려나가고 있는 운영자를 만날 수 있었다.
다방은 어떤 공간인가요?
다방이라는 곳은 전쟁 직후에 생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방은 그 당시의 지식인들이나, 문화 예술인, 부유층 등 다양한 사람들의 문화 공간으로 이용이 되었죠. 전쟁 직후이다보니 놀이 공간이나 문화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다방이라는 곳에서 전시를 하거나, 시화전을 열기도 하면서 문화를 교류했었어요. 하지만 개인적인 전시 공간이라던지, 미술 공간이 생기게 되면서 다방을 이용하는 경우가 줄어들게 돼요. 요즘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는 건 카페가 더 익숙하기고 하고요. 그러면서 점차 다방이 사라지게 되었죠.
많은 다방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가운데, 삼양 다방은 어떻게 아직도 운영이 되고 있나요?
삼양다방은 1952년도에 생긴 전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에요. 하지만 2013년도에 건물주가 바뀌게 되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 삼양다방에 신문을 배달해 주시는 분께 문을 닫는 이유로 구독을 중지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그 소식을 들으신 그 분께서 신문사에 제보를 해서 삼양다방의 내용이 신문 기사에 올라가게 되었어요. 그러자 그 기사를 본 전주 동문예술거리의 문화예술인 분들께서 모여 새로운 건물주와 삼양다방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의논하게 되었고, 새롭게 리뉴얼해서 재오픈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은 개인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8명의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찾아주시는 분들의 문화 사랑방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가장 오래된 다방이니 만큼,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요. 삼양 다방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먼저 하나의 특징으로는 역사적 공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제 곧 66년째가 되는 삼양다방은 다른 어느 다방보다도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요. 삼양 다방을 찾는 손님들의 세대가 다양한데, 단골 손님들의 경우, 이곳을 찾으신지 기본 3-40년이 된 분들이세요. 그분들이 고등학생 때에는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던 공간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공유하는 장소가 된 것이죠. 그리고 지금의 청년들은 다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호기심에 오게 되고요. 가장 중요한 건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공간이 주민분들과 지역 사회의 노력으로 다시 운영하게 되면서 지역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오래된 소품들이 많이 보이는데, 전시되어 있는 소품들은 전부 기존에 사용하던 것들인가요?
실제로 삼양다방을 운영하면서 사용하던 소품들도 아직까지 사용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손님들께서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기증해주시는 걸 받다보니 오래되면서도 다양한 소품들을 전시해 놓게 되었어요. 그리고 운영위원회에 계신 분들 중 한 분이 추억박물관 관장님이 계신데, 많은 물건들을 기증을 해주셨어요.
삼양다방 지하에 전주영화 소품창고가 있는 걸 봤어요. 다방과 영화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이러한 공간을 만드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삼양다방이 전쟁 직후에 만들어 졌다고 말씀드렸는데, 전쟁 때 피난 온 영화 감독분들이 전주에 모여 첫 영화를 만들었어요. 또한 지금 가장 오래된 다방이 영화의 도시 전주에 있다는 것이 문화 예술적으로 합쳐져서 삼양다방이 재오픈을 할 때, 삼양다방x전주영화 소품창고로 함께 오픈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운영위원회의 한 분이 전주 영상위원회의 국장님이어서 그분을 통해 영화 관련 소품들을 기증 받아 전시를 해 놓고 있어요. 그래서 지하에 있는 소품들은 전부 실제로 옛날 영화에서 사용했던 것들이에요. 그리고 지하 공간은 영화 관련 소품을 전시해 놓는 공간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청년들을 지원해 주는 문화 공간으로도 사용을 하고 있어요.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공간이 없어서 시도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는 공간이기도 하죠.
삼양다방이 오래 된 공간이다 보니, 운영하면서 다양한 일들을 겪으셨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맡아서 운영하는 기간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삼양다방을 찾아오시던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래서 단골손님들이 자주 찾아오시는데 하루는, 원래 세 분이서 항상 함께 오시던 분들인데 오늘은 둘이서 왔다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그러시냐고 대답만 했는데, 알고 보니 한 분은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거였어요. 그렇게 여러 명이서 저희 다방을 찾아오시던 분들이 해가 갈수록 한 분씩 함께 오시는 분들이 줄어드는 걸 보면서 노년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젊은 사람들은 커피숍을 찾는 게 일상이지만, 그 분들은 소중한 하루하루라는 걸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 곳 삼양다방이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이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처음 삼양다방에서 선을 봤던 어르신께서 3-40년 만에 다시 찾아오신 일도 있어요. 너무 오랜만에 찾아오셔서 길을 헤맸지만, 이름이 그대로 삼양다방이었기 때문에 찾아올 수 있었다고 하시는 걸 보고 오래된 공간만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앞으로 삼양다방이 어떻게 운영되었으면 하시나요?
사람들이 단순히 얼마만큼 오고, 가게 수익이 얼마고. 이처럼 경제적인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문화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에요. 단골손님을 제외하면, 오히려 전주 지역에 있는 분들이 삼양다방에 대해 잘 모르시기도 해요. TV를 통해서 관광객 분들이 오시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역 주민들에게 삼양다방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의미를 공유해 나가고 싶어요. 다방이라는 장소가 문화 전시 공간, 문화적인 교류가 있던 공간이었던 것처럼 다시 삼양다방이 공연이나 전시와 같은 부분을 활발히 하면서, 문화 예술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될 수 있었으면 해요.
다양한 카페가 골목마다 자리 잡은 지금 시대에 다방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미미하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카페들 속에서도 아직 다방이라는 문구가 남아 있는 것은, 이처럼 공간에 담긴 소중한 기억을 지키려는 발걸음들 때문에 아닐까?
그 때 그 시절의 다방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방이라는 장소가 간직한 의미와 가치의 전부를 지금의 나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가 쌓아온 다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그 때. 나도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