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주변에는 아득한 고학번 선배들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아지트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뜨거운 젊음이 서로 둘러앉아 늦은 밤까지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한국외국어대학교 앞에는 재학생, 나아가 동문에게 사랑받는 ‘다산초당’이라는 찻집 겸 전통주점이 있다. 1997년에 문을 연 이곳은 2002년에 지금의 사장님이 친구에게 점포를 인계받았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영업해오고 있다.
낡은 나무문을 열었더니 맑고 가벼운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한발 더 나아가 낡은 나무 계단을 삐걱거리며 한 층 내려가면 넓지는 않지만 아늑한 공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흰 벽 위에는 깨진 도자기 조각들이 드문드문 인테리어로 활용되어 있었는데, 향토적이면서도 소박한 멋이 인상적이다. 유달리 낙서가 많은 벽에서 누군가가 써놓은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도 쏠쏠한 재미 중 하나.
"경만 씨에게 사랑한다고 대문짝만하게 적어놓았던 예심 씨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다른 손님들처럼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지만, 다른 공간을 취재해야 했기 때문에 대추차 한 잔을 주문하기로 했다. 온종일 추운 야외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따끈하고 달달한 대추차를 마시자 정신은 노곤해졌다. 주문하면 사장님이 뻥튀기를 원하는 만큼 퍼다 먹으라며 스테인리스 그릇 하나를 주시는데, 자리 옆 커다란 항아리에는 뻥튀기가 가득 들어있다.
건너편 두 개의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은 시끌시끌,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일 중 하나로 알려진 연예인 걱정(흔히 연예계 가십이라고 지칭하는)부터, 혀를 차며 늘어놓는 국내외 정치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에 대한 고민과 열띤 상담까지. 조금 떨어져 앉은 나에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이야기들을 느긋한 기분으로 흘려 듣고 있자니 친구들과 함께했던 대학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별 얘기 아닌데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시절이 머릿속에 스쳐 지난다.
내내 오래된 포크송이 흘러나왔다. 김광석의 ‘그날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도 청춘은 늘 한결같았던 모양이다.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모든 것이 과거로 흘러가는 지금도, 청춘은 한결같이 그곳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