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Local Gathering 다시보기 #5

제주 기반 로컬 비즈니스 그리고 로컬리지 -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

강필호|

전편에서 계속됩니다.

1편 링크 <클릭>

2편 링크 <클릭>

3편 링크 <클릭>

4편 링크 <클릭>


안녕하세요.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고선영입니다. 저는 어반플레이와 재주상회의 합작 프로젝트인 ‘로컬리지’를 소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먼저 두 회사가 어떻게 뜻을 모으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주상회와 어반플레이는 2015년 말에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어반플레이 강필호 팀장이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체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3개월 정도 제주에 머문 덕분이죠. 서로 지향하는 바와 종사하는 분야에서 접점이 있었던 덕분에 지금까지 친분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렇게 몇몇 프로젝트를 함께 해오다가 작년 11월에 로컬리지란 합작 법인을 만들었고, 지금은 ‘사계생활’이란 공간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반플레이의 로컬 스토어 '연남방앗간'에 전시된 <iiin> 매거진


본격적으로 로컬리지 프로젝트를 소개하기에 앞서 재주상회의 그동안의 행보를 되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콘텐츠그룹 재주상회는 2013년에 설립되었는데요. 당시는 제주도에 이주 붐이 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저희보다 먼저 내려와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작업하시던 작가님들이 계셨는데요. 처음에는 그분들의 작업물과 이야기를 더욱 널리 알리고 소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매거진 업계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할 줄 아는 게 매거진 콘텐츠를 만드는 것뿐이었거든요. 그래서 제주에서도 어김없이 매거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독립 매체에는 굉장히 가혹한 시기였죠. 메이저와 독립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매거진과 매체가 폐간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인 열 명 중 아홉 명은 매거진 창간을 만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어요. 

시기적으로 보자면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연간 수치가 1,000만 명을 돌파하던 시기였고, 그중 200만 명 정도가 외국인 관광객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런데도 제대로 된 로컬 매거진이 하나 없다는 게 저 나름대로는 고민이었고요. 그런 맥락에서 2014년 봄에 ‘살아보는 여행’이란 컨셉을 정한 뒤 매거진을 창간하였습니다.



ⓒ 재주상회


인(iiin)은 “I’m in island now”의 약자이기도 하지만, 제주 방언을 담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제주처럼 바람이 거센 지역에서는 말이 짧고 발음이 세거든요. 그래서인지 “인”이란 제주말로는 “있다”는 뜻을 담은 단어입니다. 즉, “제주가 이 안에 있다”는 뜻을 담아 만든 매거진인 것이죠. 



ⓒ 재주상회


처음에 재주상회는 매거진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출판사에 가까웠습니다. 이후 매거진 제작을 통해 자연스레 모은 콘텐츠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사업을 조금씩 확장해왔습니다. 기본적으로 재주상회는 인 매거진을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작가님들과의 협업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그분들과 함께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에이전시 업무를 담당하면서 작가님들이 조금 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작가님들과 함께 브랜드나 굿즈를 만들어보게 되었고, 그 결과로 제작된 상품을 판매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인스토어’란 편집숍을 런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을 조금 더 심층적으로 조명하고 소개할 콘텐츠가 필요했으므로 ‘제주에서(書)’ 단행본 라인도 만들었죠. 



iiinjeju.com


최근에는 온라인 미디어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희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는데요.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다 보니 종이 매체로 드러낼 수 있는 영역과 분야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를테면 ‘리슨 제주’란 프로젝트를 통해 수집한 제주의 소리와 영상 작업의 결과물을 나눌 채널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온라인 미디어를 런칭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2018년 초에 iiinjeju.com을 오픈했습니다.



2018 제주 컬러피커 [월령리 선인장 마을]

ⓒ 이니스프리


콘텐츠 그룹의 특성상 다양한 기업 및 브랜드와의 협업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 사례로는 뷰티 브랜드 ‘이니스프리’와의 협업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니스프리의 브랜딩이 제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는 협업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왔는데요. 대표 사례로는 2015년 김녕 마을에서 처음 시작한 ‘제주 컬러 피커’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가장 아름다운 색은 제주의 자연 속에 있다’는 컨셉으로 어떤 대상 또는 마을의 정체성이라고 할만한 컬러를 추출한 뒤 이를 화장품으로 구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재주상회는 대상을 꾸준히 관찰하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컬러의 컨셉과 구체적인 색을 기획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처음 만들었던 결과물 중에서는 ‘와랑와랑 김녕파도’란 컬러를 담은 매니큐어가 있었는데요. 반짝반짝하는 색감이 인상적인 제품이었죠. 그 컬러는 마을 이장님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저희가 이장님께 “김녕 마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게 언제인지”를 물었더니, “하늘이 굉장히 맑은 날,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쳐서 번질 때 햇살이 와랑와랑 쏟아진다”고 대답하시더군요. 그 표현이 인상적이어서 기획에 반영한 뒤 실제 상품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제주 컬러 피커 프로젝트는 원래 단기 프로젝트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상품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으면서 지금은 연 단위 프로젝트로 이어지게 되었고,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한 상황입니다. 이를테면 방콕의 모 이니스프리 매장에서도 와랑와랑 김녕파도 컬러의 매니큐어가 판매되고 있는 거죠. 물론 현지 고객들에게는 단순한 매니큐어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제품을 통해 김녕이라는 곳을 알게 되고 김녕의 파도가 이런 색이라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큰 감동으로 다가오더군요.




드디어 로컬리지를 소개할 차례네요. 로컬리지란 단어의 의미는 단순명료합니다. 로컬(Local)을 담는 창고(Storage)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죠. 저희는 로컬 기반의 라이프스타일 공간에서 로컬 거주민과 로컬 여행자, 로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함께 모여 소통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하고자 합니다.




로컬리지의 첫 프로젝트는 모슬포 근처 사계리란 작은 마을에서 시작했습니다. 사계리는 여느 시골 마을, 로컬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고령화나 인구 감소 등의 보편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마을입니다. 그래서 유휴공간이 매우 많고요. 어르신들도 아주 많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사계생활이란 공간을 런칭하여 운영하기 시작했고, 산방산아트북페어를 시작으로 올 상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굿즈 개발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사계생활이란 공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보죠. 사계리 주민들은 작은 마을에 농협을 유치하고자 40년 전쯤 땅을 기증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 농협 안덕면 사계분소가 생기게 되었고요. 1996년에는 지금의 모습으로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이후 2017년에 농협이 인근에 신축 건물을 지어 이전한 뒤로는 한동안 건물이 비어 있었습니다. 1층과 2층이 각각 80평 규모인데, 사실 작은 마을에 몇 안 되는 큰 규모의 공간인지라 누구도 입주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곳을 로컬리지가 작년에 임대하고 리뉴얼에 착수했죠. 

사계생활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을 어르신들의 이런저런 말씀을 경청하는 건 매우 중요했습니다. 시골에서 농협이란 공간은 단순히 금융 업무만을 보는 공간이 아닙니다. 농협에 들른 주민들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농사 정보를 나눴습니다. 즉, 농협은 지역 안에서 2~30년 동안 커뮤니티 기능을 수행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저희가 무엇을 하든 간에 그런 시간과 기억을 공간 안에 살려 뒀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1층에는 여행자와 마을 분들이 함께 어울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라운지를 만들었고요. 2층은 상반기 중으로 공사에 착수하여 공유 오피스를 만들 예정입니다.




사계생활 라운지


1층 라운지에는 콘텐츠 숍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재주상회의 상품과 어반플레이의 상품을 비롯하여 로컬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합니다. 또한 기존에 있던 농협의 테이블과 창구를 그대로 살린 콘텐츠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식음료는 대부분 마을에서 나고 자란 재료들을 활용하고 있고요. 농협 건물 안에 있던 금고 공간을 그대로 살려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2층은 향후 로컬리지 오피스, 재주상회 오피스, 공유 오피스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최근 리모트 워커들이 제주를 방문하는 빈도가 늘고 있는데, 여러 인프라가 제주 시내에 집중되어 있어 이들 대부분이 제주시에 머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제주다움을 제대로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사계리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마을 곳곳에 있는 스테이를 활용한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쏘카존, 전기자전거 등을 활용하여 교통 편의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특히 사계리는 서핑 스쿨로 굉장히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서핑을 비롯한 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오피스 이용객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 재주상회


2019년 하반기를 시작으로 로컬리지는 사계리에서 다양한 공간을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로컬 푸드를 활용하여 ‘할망밥상’이란 콘텐츠를 개발한 뒤 이를 활용하여 ‘할망반찬가게’를 운영할 예정이고요. 양조장, 베이컨 공방, 목공소 메이커스 등의 서비스 공간을 운영할 계획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베이커리, 심야식당 등도 기획하는 중입니다.

20~30년 전만 해도 모두가 지방 소멸의 시대를 우려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놀랍게도 ‘로컬 지향의 시대’에 들어선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로컬전성시대’를 만들기 위해 많은 분이 노력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발표를 듣고 계신 분들이 로컬전성시대를 향해서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어반플레이의 행보에 많은 관심과 성원 보내주시길 바라고요. 그 길에 저희 재주상회도 언제나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습니다. 긴 발표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bout 로컬 게더링

도시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의 쇼케이스 프로그램인 ‘로컬 게더링’은 로컬 비즈니스 분야의 현주소와 전망,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콘퍼런스입니다. 첫 번째 로컬 게더링에는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와디즈’, ‘뮤렉스파트너스’ 등 협력 그룹이 참여하여 로컬 비즈니스와 로컬 크리에이터의 활동 지속성을 다각도로 점쳐보았습니다.   

<아는동네> 미디어는 로컬 게더링에서 진행된 발표 내용을 요약하여 연재합니다. 로컬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 영감과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길 기원해봅니다.

에디터

강필호

stopkang108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