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land Story

1. Farmer's Market

최정윤|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놀고, 이웃들은 직접 재배한 과일을 나누면서 정겨운 저녁을 함께한다. 온몸으로 햇빛을 흡수하는 거리 위 사람들의 모습, 거기에 더해 모든 곳이 푸르른 이곳은 미국 포틀랜드다.

사실 처음 포틀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우울한 기분만이 가득했다. 이곳의 날씨가 연중 이렇게 흐린 탓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택시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난 뒤, 한 달 동안 이곳에 머무를 생각을 하니 기분이 갑갑해졌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자 창문 너머로 따스한 햇빛과 상쾌한 공기가 나를 반겼고 1년 중 3달정도 환상적인 날씨를 자랑하는 ‘포틀랜드의 여름’이 시작됐다.





킨포크 라이프, 여유롭고 소소한 삶

포틀랜드는 킨포크 라이프의 발상지다. 킨포크(Kinkfolk)의 사전적 의미는 친척,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을 가리키며, 그러한 기본적 의미에서 출발한 ‘킨포크 라이프’란 자연 친화적이고 건강한 생활 양식을 추구하는 사회현상 및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한다. 즉 ‘함께’ 그리고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 방식인 셈이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미국 포틀랜드의 라이프스타일 잡지인 <KINFOLK>로부터 출발했고 포틀랜드 특유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킨포크 라이프는 1인 가구의 증가와 경쟁 사회의 고도화로 발생하는 외로움을 해소하고 누군가와 함께하고자 하는 욕망이 삶의 형태로 발현되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는 다시 말해, 사회가 부와 명예로 정의하는 성공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내적 욕망이 라이프스타일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심리적인 요인을 반영한 킨포크 라이프의 실천적 행태로 나홀로족이 서로 모여 한 끼 식사를 해결하면서 소통과 교류를 하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과 가볍게 모여 취미 생활을 나누는 원데이 클래스(oneday class)등이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경험한 포틀랜드는 킨포크 라이프가 시작된 곳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다양한 요소가 갖춰져 있었다. 우선, 신선한 공기와 어디를 보아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녹지는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 오면,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느긋하게 밥을 먹고 대화를 즐기며 하루를 되새기는 여유를 많은 사람들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자연을 실천하는 삶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다니는 과정 속에서 낯선 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국적인 정취와 공기를 사랑한다. 특정 지역 내에서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분위기와 사람들의 발자취를 다양한 장소와 시간, 상황 속에서 느껴보는 과정은 은은한 쾌감마저 전달한다. 사실 그러한 지역만의 색채와 개성을 느껴보기에 시장만큼 좋은 곳은 없다. 지역 주민들이 방문하여 지역의 물건을 사고 팔며 교류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생활문화가 축적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포틀랜드에서는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 포틀랜드 사람들의 생활 양식, 나아가 킨포크 라이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포틀랜드의 지역 주민들은 자연친화적인 삶이 라이프스타일뿐만 아니라 먹거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신념 아래 각자의 조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유기농가게(Organic shop)에서 장을 본다. 거기에 더해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파머스 마켓 또한 개별 생산자와 시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이 확장된 형식의 로컬푸드 농산물직판장으로 기능하며 지역 사람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 준지 오래다. 지역 농산물 생산자와 함께 활기찬 지역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1992년 시작된 포틀랜드의 파머스 마켓은 현지 농부들이 직접 씨를 뿌려 거둔 소출을 가지고 나와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는 시장이다. 포틀랜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틀랜드 주립 대학교에서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파머스마켓을 필수적으로 방문해야만 했다.





파머스마켓에 들어서자마자 코 속의 모든 감각이 자극을 느꼈다. 향긋한 꽃 향기, 싱그러운 야채와 과일의 냄새부터 신선한 치즈와 맛있는 바비큐 그릴 냄새까지! 여기에 깨끗한 공기까지 더해 코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 코 끝이 간질간질 했다. 후각이 어리둥절하며 새로운 냄새를 탐험해 나가는 사이 눈과 귀도 열심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모습은 각자가 내놓은 농산품들에 애정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농부들의 모습과 신선한 식재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으로 블루베리의 재배 과정과 함께 블루베리에 대한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서울의 일반적인 수퍼마켓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동시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많은 한국인들은 ‘먹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할 뿐, 음식이 가정의 식탁까지 오게 된 과정을 궁금해 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다. 내 앞에 놓인 닭고기가 배터리 케이지 안에서 한 평생을 옴짝달싹 못하며 알을 낳는 기계로 취급되었는지, 혹은 자유롭게 뛰놀던 닭이었는지의 여부는 한국민의 일상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도 바쁜 일상으로 인한 것일 수도, 또는 효율성을 가장 시급한 우선 순위에 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식당의 인테리어와 청결함에 몰입한 사이, 정작 소화기관으로 들어갈 음식이 준비되는 과정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조금 넌센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파머스 마켓을 통해서 바라본 포틀랜드 사람들의 모습은 식생활에 있어 보다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파머스마켓의 매력은 그뿐만이 아니다. 음악적으로 뛰어나거나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흰 머리의 할아버지 무척이나 긴 나팔로 뱃고동 소리와 비슷한 정체 모를 소리를 마켓 전체에 퍼뜨리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덥수룩한 수염의 사나이까지, 파머스 마켓에서는 누구나 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 마켓의 한 켠에서 우주를 형상화 한듯한 티셔츠를 입고 우주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예술가는 타원형의 비행접시(UFO)의 모양을 한 ‘행’이라는 악기로 맑고 시원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눈으로는 싱싱한 채소들을 둘러보고 귀까지 즐거우니 마켓을 구경하는 그 순간 자체로 나는 킨포크 라이프의 일원이 된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kinfolk)에게 집중하는 삶

시원한 그늘 아래서 샌드위치를 먹던 중, 마음 한 구석에서 느끼고 있던 정체 모를 어색함의 이유를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일상에서는 가까운 듯이 멀기만 한 ‘가족적인 일상’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온 가족이 각자의 장바구니를 가져와 장을 보는 모습은 아버지와 제대로 나눈 대화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내게 작은 울림을 전해주었다. 꽃을 한 송이씩 사서 잔디에 앉아 있는 부자(父子)의 모습도, 함께 꽃을 고르는 노부부의 모습도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 곳이 참 부러웠다. 파머스마켓에서 느꼈던 따뜻함은 단지 따스한 햇살과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채워진 배부름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느긋하고 소소한 라이프 스타일인 킨포크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에는 혈연부터 같이 사는 친구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로 정의되는 가족(kinfolk)이 있었음을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경쾌한 라틴 음악에 맞춰 금발의 소녀가 자유롭게 춤을 춘다. 노련한 밸리 댄서 보다는 어리숙 하지만 꾸밈없는 아이의 춤에 더욱 눈길이 갔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휘이 팔을 젓는 모습, 그리고 그런 소녀를 웃으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미소는 그 자체로 포틀랜드였다.









'Portland Story' 연재글 리스트

1. Farmer's Market (현재글)
2. Portland Zine Symposium
3. Food Cart Pod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최정윤

아름다운 세상을 소소하게 보고, 담는